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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n 28. 2023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아이의 유일한 친구 이야기 2

저번 글도 아이의 친구 이야기이고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과 고민들인데 이걸 어디엔가 풀어놓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기 힘들었다. 고민 끝에 아이 친구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쓰다 보니 쓸 말이 너무 많아서 분출되는 통에 나 자신도 꽤 놀랐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몇몇 분의 진심 어린 조언도 찬찬히 읽고 마음속에 새겼고, 결국은 내가 확실하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아무리 아이의 사회성 발달이 중요하고 친구 하나가 아쉬운 입장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견뎌내야 한다면 결국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별로 득 될 게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아이의 의사도 물어본 후 그 친구는 일주일에 딱 한번 한 시간 정도만 집에 와서 놀 수 있게 하기로 정했다. 주 1회 한두 시간 정도는 집이 난장판이 되고 쿵쿵 뛰어다녀서 아랫집 민원 전화에 대한 걱정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라고 여겼다.


밑도 끝도 없이 전화가 오고 집 앞에 찾아온다고 해도 학원이나 다른 스케줄이 있다는 구실을 만들어내서라도 거절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주말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아이와도 합의를 했고, 그렇게 다가오는 새로운 주를 맞이했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주가 시작되자 하교 후에 그 친구에게서 전화벨이 울렸다. 늘 시끄러운 복도나 학교 주변에서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해서인지 아이가 하는 말이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데, 얼마간의 훈련 아닌 훈련으로 나도 이제 아이 친구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결론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나는 때는 이 때다 싶어 마음속에 준비해 놨던 말을 책을 읊듯 최대한 분명한 발음으로 잘 알아듣게 설명했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만 올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아이가 학원 스케줄이 있으니 어렵겠다고 말이다. 학교 앞에서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리다가 통화 끝에 결국 만나게 되었다. 아이 친구가 내 말은 안중에도 없이 무조건 또 놀러 오면 안 되냐고 하기에, 내가 마음대로 허락할 수 없는 일이고 너희 엄마에게 전화해서 허락을 받으라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친구의 엄마가 허락을 안 해줄 거라고 예상했다. 저번 주에도 삼일 연속 와서 놀다 갔고 조금 지나치다 싶다고 느끼셨을 것 같았다. 처음 통화에선 그 엄마도 아이를 달래는 듯했다. 오늘은 좀 참고 바로 학원으로 가라고 말이다. 그 전화를 끊고 친구는 길에서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너무너무 가고 싶다면서. 가면 안 되냐고 세 살 애가 생떼를 부리듯이 주저앉아서 대성통곡을 했다. 너무 난감했다.


이렇게까지 우리 집에 오고 싶다는데, 그냥 받아줘야 하나 싶고 마음이 약해졌다. 우리 애한테도 친구가 저렇게 우는데 오늘은 초대해서 놀까라고 물어보니 싫다고 했다. 오늘은 별로 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길에서 너무 크게 울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 아이도 상당히 놀란 듯했다. 울고 떼쓴다고 해서 그 친구 엄마의 허락도 없이 또 집에 데려 오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엄마에게 다시 한번 전화해서 허락을 받아보라고 했다.


친구 엄마는 "오늘 참으면 내일은 OO이 집 가서 노는 것 허락해 줄게. 내일은 가서 맘껏 놀아도 돼. 약속해 줄게."라고 하며 아이를 달랬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우리 집에 오는 건 내가 허락해야 할 일인데 왜 이 친구 엄마가 이렇게 말하지? 뭐, 아이 달래느라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치지만 뭔가 기분이 나빠졌다. 우리 집에 오는 걸 가지고 아이와 모종의 거래를 하는 구실로 삼고 있다는 게 조금 불쾌했다.


친구 엄마가 전화기 너머로 애써서 달래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아이 친구는 더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댔다. 결국 그 엄마는 그럴 거면 너 알아서 하라고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도 더 이상은 마음이 불편해서 내 아이도 설득하고 아이 친구도 달래서 오늘은 와서 놀아도 된다고 허락하기로 했다.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울고 있는데 모양새도 좋지 않았다. 너무 눈이 빨개지고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는 아이 친구를 지나가는 애어른들 모두가 쳐다봤다.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때부턴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데려오는데 집중했다. 자기 기분 상했다면서 삐져버린 아이 친구를 겨우 달래서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


우리 집에 들어오니 갑자기 돌변해서 기분이 엄청 업되는 듯하더니, 여느 때처럼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였다. 마음껏 뛰어다니고, 우리 집 냉장고 문을 수십 번 열고 닫으며 간식을 빼서 먹고, 온 방문을 쾅 닫고 안에서 잠그며 안방과 작은방 침대 위에서 점프를 하며 놀았다. 온갖 초콜릿과 젤리가 든 간식통이 있는 서랍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서 그 서랍장을 열고 마음대로 빼서 먹으려고 하는 걸 제지하느라 바빴다. 예전에는 귀엽고 애교스럽게 보였던 행동들이 더 이상 그렇게 봐지지 않았다. 그냥 우리 집을 마음 편하게 먹을 것 먹으면서 쉬어가는 공간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내가 너무 저항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지, 그냥 아직 어린 애일뿐인데 과민반응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울고 떼쓰면 무조건 다 들어준다는 것도 학습이 된 것 같은데 더 이상 호구 취급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친구 엄마도 아무리 아이가 말이 안 통하고 떼를 쓴다고 그냥 너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다니, 조금 무책임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직장생활을 할 때에만 겪는 거라고만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저 주부로 육아와 살림이 나의 주 업무가 된 후로는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무할 때 같은 사무실서 운 좋게 마음 맞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지만, 일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 말고도 인간관계에서도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나와 맞지 않는데, 매일 아침 그리고 거의 하루 종일 근거리에서 잘 안 맞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은 때론 고역처럼 느껴졌다.


아이케어에 집중하면서 집에 있으면 동네엄마들과의 관계에서 이런 스트레스는 없을 줄 알았다. 실제로 근 몇 년간 크게 스트레스받은 적도 없다.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마음 맞는 몇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있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직장생활을 하지 않아도 저마다 바빠서 아주 가끔 놀이터나 커피숍에서 수다 떠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람 만날 일 많이 없는 내 일상에 활력소가 되는 정도의 인간관계다.



그런데 이 아이 친구의 엄마로 인해서 처음엔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다가 최근 들어서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신경 쓰는 중이다. "왜 자기 아이가 남의 집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날락하는 걸 그냥 방치할까? 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내게 하지 않는 걸까? 왜 아이에게 남의 집에 가면 지켜야 할 예의범절 같은 건 가르치지 않았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고, 결국 마지막에 떠오른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그렇다. 이게 지금 내 마음과 상황을 정확히 대변해 주는 말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지 했는데 찾아보니 영화 <부당거래>에서 검사역을 맡은 류승범이 한 명대사였다. 경찰 눈치 보느라 검찰이 조사하는데 조금 어렵다고 수사관이 하소연하자 직원들에게 화내고 성질부리다가 마지막에 던진 말인데, 굉장히 유명한 명대사가 되었다.


물론 영화 속에서 경찰과 검찰 간의 권력 신경전의 상황 속에서 나온 이 대사가 지금의 내 상황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지만 왠지 모르게 이 말이 찰떡같이 달라붙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호의만 베푼 건지도 모른다. 호의를 베풀 거면 내가 당장 손해를 보게 되고,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끝까지 쿨하게 테레사 수녀의 마음으로 계속 베풀든가 해야 하는데 내 배포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다.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내 인간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그것도 마음에 자꾸 걸린다.


나의 사람됨의 수준을 솔직히 인정하기로 하고 그냥 선을 긋기로 했다. 일단은 내가 남에게 바라는 것 없이 계속 베풀기만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수양을 더 쌓은 후에 호의를 주기로 마음먹어 본다. 지금은 우선 나부터 살아야겠어서 끊어내야겠다.


미안하다, 아들아. 하나밖에 없는 너의 학교 친구지만 엄마가 끝까지 받아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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