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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ug 14. 2023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

adhd 아이 잘 키우기

요새 아이에게서 발견되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자꾸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럴듯하고 교묘하게 꾸며서 넘어갈만한 거짓말도 아니다. 엄마 눈에 다 보이는데, 자꾸 아니라고 부정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사실 아이가 하는 거짓말은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상황을 확대해석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한 침소봉대식의 표현에 더 가깝다.


“피아노학원 원장님이 화내면서 때렸어요.“

“담임선생님은 맨날 잘못도 안했는데 나만 혼내고 뭐라고 해요.”

“저번에 친구가 나한테 욕하고 괴롭혔어요.”

“숙제 다 하고 학습지도 풀었어요.”


이런식의 말들을 늘어놓는데, 실상을 알아보면 전부 다 사실이 아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학원 원장님이 아이를 때리면서 지도했을리가 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학원 평판에도 악영향을 미칠테고 이미 소문이 돌았을거다. 나도 원장님과 지도 선생님을 자주 뵈었는데,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때리면서 가르칠 분들은 아니었다. 설사 때렸다고 해도, 반장난식으로 더 잘해보라는 느낌으로 “땍땍” 하신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아이는 자꾸 선생님이 자기한테만 혼내고 때리기까지 한다면서 나를 속이려고 한다.


담임선생님 이야기도 그렇다. 학기중에 자꾸 학교 가기 싫다면서 선생님이 너무 무섭고 자주 화를 내는게 그 이유라고 했다. 게다가 친구가 잘못했는데 자기만 혼낸단다. “설마 그럴리가..” 처음엔 조금 혼란스러웠다. 정말 내 아이만 혼내나? 선생님이 조금 엄하게 아이들을 통제하는 스타일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유독 내 아이만 그랬을리가 없다. 아이 말만 듣고 연락해보는것도 섣부른 행동인것 같아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1학기 말 종합의견란에 선생님은 아이에 대해 “순하고 마음이 착하며 양보를 잘한다”라고 써주셨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보건대 이 정도로 쓰셨다는건 아이를 말 그대로 순하고 마음 약한 성향으로 인식하셨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똑같이 친구들이랑 놀다가 혼날 일이 생겼어도 내 아이만 유독 혼냈을 리도 없고 앞뒤상황 봐가며 지도하셨을게 틀림없다.


평소에 순한 아이라고 여겨지는 학생에게는 설사 혼낼 일이 생겨도 “원래 저런 아이가 아닌데”하면서 한 번은 봐주게 되는거나, 살짝 당부의 말만 하고 넘어가주는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므로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분석에 따르면, 아이가 하는 말은 과도한 과장이거나 거짓말임이 확실하다.


방학을 맞아 아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사촌 형아들집에서 며칠 지내게 해주었다. 외동의 태생적 외로움을 벗어난 행복감에 도취해서 엄마 없으면 못 자는 녀석이 나 없이도 조카네 집에서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잔다. 나도 간만에 허락된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아이가 또 억울해하며 엉엉 우는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이모가 나한테만 짜증내고 화내고 욕까지 했어..엉엉..“


자유롭게 놀기 시간 전에 형아들이랑 같이 앉아서 공부하다가 이모가 좀 평소 분량보다 많이 시키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이모가 저한테만 화내고 욕을 했을리는 더더욱 없다. 자기 감정에 취해서 아이는 또 상황을 확대해석하고 있었다.


아이의 뭐든지 억울해할때가 참 많다. 저번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남들보다 강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상황인지능력이 떨어지기에 남들은 별거 아닌 일에도 못내 더 억울해하고 자기 기분을 조절하지 못해서 힘들어한다.


언어발달과 사회성 발달이 늦어지다보니 부차적으로 따르는 부작용이다. 그 놈의 언어발달이 뭔지, 한 번 지연되니까 다른 영역의 발달에 발목을 잡고 있어 아이를 괴롭힌다. 여차저차 또래 수준을 더디게 따라가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기 어렵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아이가 거짓말 하는 순간들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에 주로 한다. 학교 가기 싫을 때, 학원에 가기 싫을 때, 숙제 하기 싫을 때, 방과후 수업에 가기 싫을 때. 뭔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 할 때에 상황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거짓말도 발달 과정에서 아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흔한 실수 중 하나라고 여기기도 한다. 나도 어렸을 적에 안 혼나려고 숨기거나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몇 번 하고 이게 통하지 않는다는걸 금방 깨달았다. 그런데 내 아이는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거짓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자신의 피해의식에 대한 방어기제로

사용하기로 선택한걸까.


항상 그랬듯 몇 개월간 지속되던 문제행동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행동이 사라지기보다 이 유형의 문제는 사라지고 다른 유형의 문제가 다시 수중에 떠오를거다. 반복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수밖에 없다. 네가 하고 있는 건 거짓말이고, 그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걸. 그래도 넌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하고 거짓말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글로는 잘 써지는데 막상 왜 실전에서 아이랑 맞대고 있으면 왜 감정부터 먼저 터져나와 화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참고, 또 설명하고, 또 한 번 참고 또 반복 설명해주자.


에어컨 없이 살 수 없는 찌는듯한 무더위가 계속 되고 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이 고민 또한 언제 그랬냐는듯 무더운 여름과 함께 거짓말처럼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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