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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발달의 문턱에라도 닿을 수 있다면

ADHD 아이 키우기

by 레이첼쌤

아이가 언어발달지연 진단을 받고 센터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서 나의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느린 맘 카페에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메뉴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하루도 수십, 수백 번도 넘게 카페를 들락날락하며 특히 이 메뉴의 몇 년 전에 올라온 글까지도 다 찾아보는 게 내 일이었다.


나는 발달에 어려움이 있던 아이가 나아져서 결국 치료를 받지 않을 만큼 좋아진 사례를 최대한 많이 알고 싶었고, 그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서 어떻게 좋아진 건지 아주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그 선례를 알 수 있는 곳으로는 카페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메뉴만큼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곳이 없었다.


대치동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주 가는 블로그가 있는데,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교육 특구인 대치동에 거주하면서 대치동 교육과 학원에 대한 정보와 느끼는 단상들을 이야기하는 블로거인데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져서 꾸준히 방문하는 편이다. 나는 서울에 살지도 않고 지방에서도 학군지에 거주하고 있지도 않고, 무엇보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발달 지연까지 겪고 있어서 솔직히 말해서 학군지로 갈 필요도 없는 슬픈 처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치 거주민이 전하는 대치동 이야기에 관심이 가고 알고 싶다. 대치동 부모들은 어떻게 자녀 교육을 시키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한 건 죄가 아니니까.


그분의 블로그 글 중 유독 내 눈에 들어와서 쉽사리 잊히지 않는 글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일반인의 성공 공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일반인이 자기가 목표하는 바를 이루고 성공하려면 그 이전에 비슷한 방식으로 성공을 이뤄낸 성공자의 트랙을 따라가는 게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는 것이었다. 요지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대치동 학원의 존재 이유와 좋은 입시 결과를 낸 사람들을 자주 접하면서 배우고 내 아이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는 내용이었다. 굉장히 큰 공감이 가는 글이었고 두 번, 세 번 읽어 보았다.


나도 인생을 살면서 나도 모르게 실천하고 있는 스킬이 아닌가 싶었다. 특히 임용고시 공부를 할 때에 나는 수시로 임용 카페에 드나들며 합격수기를 읽었고 나중에 읽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마음에 드는 합격 수기 몇 개를 프린트하고 정리해서 나만의 공부 계획을 세우는데 참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도 보란 듯이 합격해서 이런 합격수기를 꼭 써보리라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며 열심히 노력했고 운도 좋았기에 수험생활을 짧게 끝낼 수 있었고 이후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즐기면서 사느라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합격을 원할만한 중대한 인생 목표는 세워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낳은 내 아이가 발달이 느려 어려움을 겪게 되니 아무런 계획과 목표 없이 아이에게 도움을 주기만 하는 건 뜬구름 잡기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확실한 목표를 세웠다.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과제이자 프로젝트는 "아이를 정상발달로 키우는 것"이다. 소아정신과 전문가들이나 발달 장애를 이미 겪은 수많은 부모들은 이런 나의 목표를 보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아이의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고 정상이라는 범위에 아이가 도달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는 건지. 그래도 나는 내 목표를 저버릴 생각이 없다. 아이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좋아져서 결국 또래 수준이 될 거라는 이 목표마저 없으면 내 삶의 의미가 없어질 것 같고 엄마로서 나라는 사람의 자아가 쪼그라들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다 보면 도저히 현실에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기적 같은 일은 종종 일어나기도 하니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정상발달과 비슷해지는 게 목표이긴 하지만.


수년간 느린 맘 카페에서 발달상 많이 좋아진 사례들을 탐독한 결과 발달이 느린 아이에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노력들에 대해 모르는 거 빼고는 다 알고 있는 기분이다.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아이에게 잘 맞는 센터에 좋은 선생님을 찾아 꾸준히 치료를 받도록 할 것.

- 느린 아이들은 대근육, 소근육 발달도 함께 지연된 경우가 많으니 등산, 수영, 줄넘기, 태권도 등 꾸준히 운동을 시킬 것.

- 매일 꾸준히 엄마가 소리 내어 읽어주며 독서를 할 것.

- 유튜브, 게임과 같은 미디어 노출 최대한 차단하거나 자제시킬 것.

- 건강 식단을 제공해 주려고 노력할 것.

- 화목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의 불안감을 낮출 것.(남편과 사이가 좋아야 함, 가장 어려운 부분인 듯)

- 수시로 몸놀이를 하며 신체 접촉하고, 많이 안아주면서 신체 감각을 자극해줄 것.

- 매일 놀이터에 나가 또래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

- 시댁, 친정, 사촌집 자주 다니면서 대가족이 함께 하는 분위기에서 가족들로부터 다양한 언어 자극을 받게 해주는 것.

- 캠핑이나 여행 자주 다닐 것.

- 아빠의 육아 참여를 늘릴 것.


이외에도 나열할 수 있는 목록들은 더 많지만 내 일상에 접목하면서 꾸준히 실천 가능한 목록들은 이 정도다. 아이 발달을 위해서 아무 반응도 없는 아이 옆에서 끝없이 이야기하고 상호작용하면서 놀아주느라 편도염이 오고 목에 이상이 와서 수술할 지경까지 되었다는 엄마들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아이에게 화내거나 짜증을 내버릴 때도 많았다. 이렇게 다방면에서 발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십분 노력해도 아이가 보여주는 아웃풋은 아주 미미하거나 실망스러운 정도일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오은영 박사의 말처럼 백번, 천 번 일러주고 알려주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수년간 느린 아이를 키워본 아이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를 위한 노력 중에서 가장 으뜸은 엄마가 우울증이 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노력들의 주체는 바로 아이의 주양육자인 엄마다. 엄마 자신이 지치고 힘들어서 끈을 놔버리면 모든 게 끝난다. 나도 이 사실을 최근에 깨달아서 관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카페글을 보다 보면 느린 아이를 키우다가 결국 엄마 자신들도 우울증 약이나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엄마가 힘들고 우울하면 그 우울함은 아이에게 전염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발달이 뒤쳐져서 아이 스스로도 어느 정도의 불안감을 안고 사는데 엄마까지 무너지면 안 된다.


우울증이 오지 않도록 엄마가 설레고 기분 좋을 이벤트들을 자주 만들어서 해주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주말 밤에 마시는 맥주, 야구장 가서 열나게 응원하기, 책 읽기, 혼자 걷기, 센터 엄마들과 수다 등으로 주로 하고 나면 힐링되고 내 기분이 좋아지는 일들을 수시로 하려고 노력한다. 주로 아이와 떨어져서 혼자 있는 시간들에서 힐링됨을 느끼는 게 웃프다.


아무튼 이런 노력들로 나는 결국 목표를 이루고 말 것이다.

다른 정상발달 아이들은 우아하고 고고 하게 백조처럼 편하게 물 위에서 헤엄치는데, 나와 아이는 물 밑에서 미친 듯이 발길질하며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아가고자 눈물 나게 노력하는 미운 오리 같아서 우울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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