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약물 복용에 대하여
풀 배터리 검사와 대학병원 진료 후 약물 복용 권유를 받고도 나는 몇 달을 고민했다.
과연 약을 복용시키는 것만이 최선인가. 이 약이 성장하는 아이의 몸에 투여되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ADHD 약물에 대해 검색해보면 "향정신성의약품" 또는 "신경계 감각기관용 의약품"이라고 나온다.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이 복잡했고 약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관련 서적을 보다 보면 제약회사 왕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의학계 내에서도 ADHD 약물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명망 있는 정신의학과 의사들도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쓴 책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약이 부작용을 수반하는 건 당연히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ADHD 약물들도 심혈관질환, 고혈압, 당뇨병뿐만 아니라 공격성과 자살 성향까지도 유발할 수 있는 부작용들이 무섭게 나열되어 있다.
사회성 그룹수업도 받고 있고, 보드게임도 종류별로 사놓고 자주 하면서 상호작용 연습도 시키고 책도 많이 읽어주고 매일 퇴근 후 시간 날 때마다 또래 친구들이 있는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한 시간 이상은 놀 수 있도록 하고 유제품, 글루텐, 인스턴트 음식 최대한 줄이면서 식단에 신경 쓰는 등 나름대로 엄마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왔다.
아이와 단 둘이 제주도 여행을 장기로 다녀오면서 나는 마음먹게 된 것 같다. 약 복용을 해서 아이에게 도움을 주기로. 환경적인 면에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하고 있어서 아이가 조금씩 나아지고 발전하는 모습도 눈에 띄긴 한다. 하지만 성장은 우리 아이만 하는 건 아니다. 다른 또래 아이들 보면, 아, 아직 멀었구나 싶고 격차를 확연히 느낀다.
청각적 주의력이 태생적으로 약한 것 같은 우리 아이는 어떤 말을 하면 한 번에 못 듣고 두세 번 옆에서 강조해서 크게 말해주거나 반복해서 말해줘야 반응한다. 청각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주의력이 약한 것이다. 양육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뇌가 발달하면서 우리가 확신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그 부분이 취약해진 것이고 이게 아이 발달의 걸림돌이 되어 언어발달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사회성 발달에 발목을 잡고 있었다.
사회성 발달이 더뎌지니 7세부터는 또래 관계에서 많이 위축되고 자존감 저하라는 문제까지 이어지게 된다.
학교나 기관 안 보내고 집에서 홈스쿨링 하면서 키우겠다고 하면 이는 약물 도움 없이도 내가 그냥 안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찌 됐건 아이는 제도권 내에서 학교를 다니게 될 것이고 일반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도 한 두 개는 시작하게 될 텐데, 가장 걱정되는 건 원만한 학교 생활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주의 집중해서 잘 듣고, 알림장을 써오고, 크고 작은 규칙들을 잘 듣고 습득해야 할 것.
스스로의 힘으로 친한 친구도 만들어보고 갈등이 생겼을 때 자기 의사 표현도 하고 중재도 하고 사과도 하는 그런 일련의 것들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관련 전공인 남편조차 약물에 대해 나만큼이나 우려를 많이 하고 다소 부정적이었지만 나는 바로 다니는 병원에 예약을 잡고 뇌에 주는 영양제라고 생각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처방받아 약 복용을 시작했다.
처음이라 아주 아주 소량으로 시작한 거지만 아이를 세심하게 하루 종일 관찰했다.
그런데 같이 사회성 그룹수업을 받는 아이 친구 엄마는 풀 배터리 검사 결과에서 아무런 진단이 나오지 않아서 서울에 다른 유수한 대학 병원들을 예약해서 또 다른 여러 검사들을 추천받아 신청했다고 한다. 그 아이도 사회성이 부족하니 자폐든, ad든 어떤 진단명이 나올 거라고 엄마도 각오 아닌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에게 진단명이 나오지 않았다는 건 어찌 보면 반가워해야 할 일이다.
느린 아이들이 흔히 받는 경계성 지능, 인지저하, 자폐, ADHD 아니면 강박증이나 불안증 등등 이런 진단명을 내릴 요건을 만족시키지 않는다는 건 아이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이 엄마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당장 다음 달에 초등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니 갑자기 약을 복용시켜서라도 아이에게 도움을 줘서 학교에 잘 적응시키고 싶은데 아무런 진단이 나오질 않으니 약도 복용시킬 수가 없다며 차라리 내가 부럽다고 했다. 약물 복용시킬 수 있는 자격이 되어 떳떳하게 의사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 약을 처방받아 아이에게 먹인다는 사실이 부럽다니. 마냥 기뻐하기도 애매한 뜻하지 않은 부러움을 받게 되었다.
AD약이 부작용도 있긴 하지만 그만큼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부분이 크다. 뇌에 활성화되지 않은 부분에 자극을 주면서 아이의 주의력과 집중력을 올려주게 되고 그러면 백 퍼센트 좋아진 건 아니어도 많은 부분에서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엄마도 그런 도움을 받고 싶은 거다.
처음 약을 먹일 때 나는 자괴감으로 괴로웠다. 세브란스 의사도 양육 환경으로 인한 원인이 아니라고 단언해주었지만 자꾸 나는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얼마나 못 키웠으면 결국 무시무시한 부작용을 초래할지 모르는 정신과 약을 먹이는 엄마가 돼버렸는지, 애 하나도 제대로 못 키울 거면서 왜 무턱대고 자식을 낳았는지 이런저런 생각에 힘들었다. 엄마로서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도 끝도 없이 몰락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나를 부러워한다니 이걸 우쭐해야 할지 감사해야 할지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들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약이라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