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 느껴지는 무능함에 대한 사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일 아침이었다. 아침밥 해서 먹이고, 약 챙겨 먹이고, 최대한 기분 좋은 아침을 만들어주기 위해 육체적, 심리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후 아이를 성공적으로 등교시켰다. 등교시키고 나면 이제 내가 해치워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하나씩 해치우고 얼른 일 보러 나가야지 하는 와중이었다.
등교한 지 20분도 되지 않았는데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머니, OO이가 갑자기 배가 많이 아프다고 해서 보건실에 보냈어요."
갑자기 배가 아프다니? 분명 몇 십 분 전까지 기분 좋게 밥 먹고 별 탈 없이 등교한 녀석인데 왜 갑자기 배가 아플까? 보건선생님 보시기에도 애가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인다고 하기에 일단 바로 조퇴시켜 달라고 했다. 밖에 있던 나는 급하게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만났다.
과연 아이는 얼굴이 하얗게 떠서 창백해져 있고, 입술도 새파래진 채로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못 걷겠다며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정말 많이 아프긴 아픈가 보구나. 지금껏 키우면서 종류별로 유행하는 전염병들은 꼭 다 놓치지 않고 걸려서 병원에 자주 가보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복통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한쪽 옆구리를 잡고 자꾸 쿡쿡 쑤시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너무 아파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진료를 기다리는 중에도 아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되는 아픔에 고통을 호소했다. 평일 오전인데도 소아과 대기 시간은 기본 1시간이었다. 다른 응급실을 가봐야 하나? 아이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소아과에서 볼 수 있는 병이 아니면 어쩌지? 대기하면서 기다리는 내내 온갖 걱정과 잡념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몇 달 전 혈뇨 검사를 했을 때 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했어야 했나. 그때 괜찮다고 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결국 신장 쪽에 문제가 생겨버린 걸까? 아니면 요로감염 같은 급성 감염 같은 걸까. 당장 내일 부산 여행도 잡혀 있는데 아무래도 취소해야겠구나.
아이는 왜 이렇게 대기 시간이 기냐고 투정을 부리면서도 힘이 너무나 없는지 엎드려서 흐느끼고 있었다. 나도 결국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같이 울어버렸다. 길었던 대기 시간도 드디어 끝이 나고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아이는 도저히 못 걷겠다고 했다. 9살이나 되는 아이를 등에 업고 쩔쩔매며 의사 선생님을 마주했다.
"복통이 너무 심해서 걸을 수도 없다고 하는데 어쩌죠?"
바로 아이를 누워보라고 하더니 배를 여기저기 매만져 주신다. 그러면서 통증부위가 어디인지 정확히 확인하는 것 같았다. 엑스레이를 찍으라고 해서 찍고 또다시 결과를 듣기까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의사 선생님이 배 좀 만져준 게 효과가 있었는지 십 분 정도 지나니 아이가 좀 괜찮아졌다고 한다.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향할 때는 이제 걸을만한지 스스로 걸어가겠다고 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원장님이 던진 한마디.
"아까랑 너무 다른데? 모세의 기적을 보는 것 같네?"
엑스레이 검사 결과 복통의 원인은 숙변이었다. 바로 변비..
며칠간 똥을 못 싼 것도 아니고 이틀 전에 분명히 싼 것 같은데 변비라니? 평소에 화장실에 다녔어도 찌꺼기가 계속 쌓여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 이 숙변이 원인이 되어서 복통을 일으키고 아이들이 많이 아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유소아기 때 겪는 온갖 종류의 병은 다 거쳐왔다고 생각했는데, 변비는 또 처음이다. 다행히 관장할 정도는 아니라고 해서 약 처방만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이상하게도 약을 복용하지도 않았는데 진료만 받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의 복통의 말끔히 사라졌는지 평소처럼 말짱하다.
남편한테 큰 병 아니냐고, 애가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워한다고 어떡하냐고 징징댔던 나 자신도 순간 우스워져 버렸다. 아이가 아파서 쓰러질 것 같았을 때는 정말 건강 말고 다른 건 바라는 건 없다, 오로지 아프지만 말아다오 기도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말짱한 모습으로 게임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너 숙제부터 해"라며 으름장을 놓게 된다.
주위에 이야기해 보니 유치원에서 초등 저학년 시기에 변비로 복통을 호소해서 관장까지 하게 되는 아이들이 꽤 많다고 한다. 내 주변에도 다 한 번쯤은 겪었던 일이었다. 겪고 나니 나도 웃으면서 결국 "변비"였다며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가 고통스러워할 때에는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아이가 좀 아프면 이제 의연하고 좀 더 차분하게 대처할 때도 됐는데 아직도 그게 잘 안된다. 뭔가 엄청난 큰일이 일어난 것 같고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면서 머릿속이 정지가 된다. 어딘가 많이 아프게 돼서 병원 입원실이 집이 되어 살아가는 아이와 내 모습이 상상이 되고, 여러 가지 엉터리 시나리오들이 솟구쳐 올라오면서 괴로움을 느낀다. 이제 좀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참 안된다. 아이 둘셋 키우는 엄마들은 배로 더 이런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 텐데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직 부모로서 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가는 날이었다. 이번 달에는 대체공휴일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향했다. 왠지 혼자 갈 때보다 더 긴장되기도 하고 걱정스러웠다. 한 달에 한 번 약 처방을 위해서 가는 병원이지만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기분이다.
원장님은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아이와 몇 가지 대화를 나누었고 주로 학교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셨다. 아이는 만족할만한 수준의 답변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맥락에 맞게, 길지 않은 답변을 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아이를 관찰하면서 느낀 "피해의식"에 대해서 의논드리고 싶었다. 사소한 장난이나 신체적 부딪힘에도 아이가 아주 예민하게 굴고 자기가 아주 큰 피해를 입은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했다. 원장님은 친구라는 자극에 대처하는 능력이 약한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주변 친구들이 하는 말장난이나 친하자고 건네는 이야기들이 아이는 장난인지, 진심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고 마음속에 해소되지 않은 채 쌓아두기 때문에 그런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피해의식이 큰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그럴 때는 아이를 비판하지 말고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공감하면서, 그래도 친구의 의도는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저 장난이기도 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해 주면서 상황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 주라고 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아이에게 너 변태야라고 했는데 아이를 공격하고 자극하려는 의도가 아닌 것 같은데, 아이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그럴 땐 그냥 "너도 변태야"라는 식으로 적당히 받아치고 넘어가도 되는데 그게 잘 안되는 거다.
틱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말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멈추기로 했고, 원장님은 이번 달부터 기존에 먹던 약이 수입 중단되어 다른 약으로 바꿔보자고 하시면서 약에 대한 설명을 길게 해 주셨다. 새로운 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하느라 진료 시간이 여느 때처럼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처방전을 받고, 다음 달 진료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언제까지 약을 복용시켜야 하며, 언제 이 모든 게 끝이 날까.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발달장애와 ADHD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고 신경발달장애는 유전적 원인이지 육아 환경 탓이 아니라고, 부모가 자책해서는 안된다는 말들을 매번 확인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힘들다. 내가 뭘 잘못해서, 임신이 된 순간부터 처음 소아정신과에 발을 디딛게 된 그 순간까지 내가 잘 못한 게 무엇인지 대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애를 잘 못 키웠기에 나는 결국 아이를 데리고 정신과에 와야만 하는 엄마가 되었는지 후회하고 참회하는데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냈다. 지금은 그 모든 게 결국 에너지 소모만 크고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에 많이 줄어들었지만, 가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쿵 내려앉는듯한 무거움에 압도되곤 한다.
센터 사회성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 수업하는 동안 대기실에서 같이 센터 보내는 엄마와 대화 중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비슷한 어려움을 마음 편히 공유할 수 있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의 엄마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이 나에겐 위로가 되고 힐링 그 자체다. 지난 한 주는 아이 때문에 어떤 속상한 일들이 있었는지, 병원 진료는 어떠했는지, 약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소소한 정보도 얻는다.
그런데 한창 수업을 들어야 할 타이밍에 아이가 치료실 문을 박차고 나온다. 눈이 빨개져서는. 정수기 앞에서 물을 마신다고 서있는 아이는 너무 울어서 눈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상황 파악을 하려고 가서 이야기해 보니 이미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다. 아이는 너무나 흥분해 있고, 자신의 억울함만을 호소하면서 이 센터 다니기 싫다면서 악을 쓰고 막무가내를 떼를 쓴다. 어르고 달래서 다시 치료실로 데려가보려고 했지만 아이는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이 수업하고 있는 치료실 문을 한 번 열더니 센터가 다 울릴정도로 문이 떨어져 나갈 듯이 세게 닫아버리고는 계속 울기만 했다.
울면서 자꾸 같은 말만 반복한다. 센터 선생님은 나를 싫어해, 자꾸 나한테만 뭐라고 해, 나 여기 안 다닐 거야, 선생님이 나한테 심한 욕했어, 나 오늘 학원 5개나 가서 너무 힘들어(실제로 2개 갔음) 등 감정 조절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는 머리에 떠오르는 이상한 말을 내뱉는다. 나도, 대기실에 함께 있는 엄마들도 당황한 채로 아이를 달래 보려 했지만 결국 그날 수업은 그 상태로 끝이 나버렸다. 수업이 끝난 후에 따로 아이는 선생님께 불려 가서 상담 시간을 가졌고 아이와 상담한 후 선생님께서 나에게 따로 또 상담을 해주셨다.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말은 몇 년째 비슷한 내용이다.
아이가 게임에서 졌을 때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또 울려고 했고 감정이 한 번 터지면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주제 유지가 되지 않고, 화가 났으면 화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매끄럽게 설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집에 돌아가서 아이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에는 오늘 센터에서 있었던 일들을 글로 함께 정리해 보면서 자신이 오늘 왜 울었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런 행동을 했을 때 선생님들과 다른 친구들 기분은 어땠을지 생각해보게 하면서 자기 객관화 연습을 시켜주어라, 게임에서 지면 화만 낼게 아니라 다음번에는 어떤 전략으로 이길지 생각해 봐야지 울기만 해서는 안된다라는 사실을 차분히 설명해 주라고 하셨다.
그래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이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는 아니고 불안과 긴장도가 높아서 상황 대처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하신다. 열정적으로 아이의 현주소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해 주시는 선생님의 말을 받아 적고 있다 보니 문득 현타가 온다.
눈과 귀로는 열심히 듣고 있지만 갑자기 내 영혼과 정신은 저 세상으로 가버린 느낌이다. 왜 나는 여기에 이렇게 앉아서 제 자식 하나 제대로 못 키운 죄로 매번 센터 선생님께 아이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며 조언을 구하고 있는 걸까. 내가 뭐가 못나서, 뭣 때문에 이지경까지 와버린 걸까. 또다시 자책감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나는 실패한 부모일까.
ADHD, 사회성 발달 저하, 의사소통 능력 지연, 그에 따른 불안장애와 틱을 앓고 있는 아이를 키우는 나는, 어떻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이에게 주어지는 의학적 진단명이 부모로서의 나도 실패했음을 입증해 주는 증거가 되는 걸까. 부모가 아닌 인생의 다른 면에서는 뭐 얼마나 잘한 것도, 이렇다 하게 자랑스럽게 세상에 내놓을만한 이력도 없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아이는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잔뜩 부었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할 일을 해냈지만 일에 지쳐 퇴근한 남편을 또 죽상으로 맞는 내 모습이 싫다. 그런 내가 싫어서 그러지 않기로 했는데, 어김없이 또 우울함을 온몸으로 내비치고 만다.
주말에 아이 데리고 지인들과 함께 여행 가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왔는데, 장거리 운전과 끝없는 물놀이로 온몸을 불태우면서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려고 노력한 남편은 또 뭔 죄인가.
시간이 약이라고 하루, 이틀 지나니 감정은 좀 나아졌지만 우연히 책에서 본 저 문구가 자꾸 내 가슴에 사무친다.
당신은 부모로서 실패했습니다.
성공했다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실패만은 아니길, 아이의 장애가 나와 우리 가족 전체의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기를 바래본다. 나에게 주어진 이 어려움을 조용히, 그리고 굳건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내 안에서 찬찬히 키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