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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n 24. 2023

그래도 아이의 유일한 학교 친구인데

사회성 부족한 아이가 사귄 학교 친구 이야기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내가 간절히 바란 한 가지 꿈이 있었다. 제발 같은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 단 한 명이라도 생기기를. 한 명이라도 마음 맞는 친구가 있으면 학교 생활이 외롭지 않고 아이가 가진 여러 가지 힘듦에도 불구하고 교실에서의 시간을 견뎌내 주는데 커다란 힘이 되리라고 믿었다. 그것 한 가지를 바랐다. 아이와 성향이 맞는 친구, 딱 한 명.


내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초등 1년을 거의 다 보내고 겨울방학을 맞이할 즈음, 하굣길에 내 아이와 정답게 나란히 서서 하교하는 반친구가 생겼다. 작고 귀여운 인상을 가진 친구는 외모만큼이나 애교도 많고 늘 밝고 명랑한 모습이었다. 우리 아이만 보면 어찌나 반갑게 인사를 해주는지 나는 그 모습이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웠고 가히 감동적이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초1에 이르기까지 보통 같은 반 친구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음.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데, "아는 사이이긴 하지만 딱히 말을 걸거나 친해지고 싶지는 않아. 쟤랑은 재미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걸."과 같은 눈빛으로 내 아이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고 나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과대해석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러했다.


또래 아이들의 그런 눈빛 사이에서 무덤덤하게 다니던 내 아이에게 그토록 반갑게 다가와 인사해 주는 그 친구가 사랑스러웠고 고마웠다.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될 무렵, 하굣길에 그 친구는 우리 집에 한 번 놀러 오고 싶다고 해서 나는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초대했다. 물론 그 친구 엄마에게 전화 통화로 허락을 받고, 학원 가기 전에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짧게 집에서 놀다 가도록 했다.


친구는 조금 혀가 짧아서 발음이 약간 뭉개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의사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어떤 질문을 하면 맥락에 맞게 잘 대답했으므로, 생일이 늦어서일 수도 있고 단지 조금 늦된 아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교실에서도 수업시간에 조금 산만한 행동을 하다가 몇 번 혼난 적이 있다고 하기에, 그냥 그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렴 어떠랴, 친구 하나 없는 내 아이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다정하게 아이 이름을 불러주면서 만나면 반갑다고 온몸으로 표현해 주는 그 친구가 고맙기만 할 뿐이었다.


2학년이 되고 내 바람과는 다르게 아쉽게도 다른 반이 되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같은 학원에서 만날 수 있었고, 복도나 급식실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듯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가 조금 일찍 끝나는 날이면 다음 학원을 가기 전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는지 우리 집에 놀러 와도 되냐고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기꺼이 와서 놀다 가라고 했고, 간식도 챙겨주고 아이와 둘이 잘 놀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친구의 엄마는 직장을 다녀서 핸드폰으로 아이에게 자주 연락을 했고, 맨 처음에 학원으로 바로 가지 않고 우리 집에 와 있다고 하니 아이에게 화를 내는 목소리가 핸드폰 건너 나에게도 들렸다. 직장에 있는데 아이가 정해진 학원 루트대로 가지 않고 잘 모르는 친구네 집에 가 있다고 하니 굉장히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전화를 건네받아서 작년 같은 반 누구의 엄마이고 우리 집 주소를 알려주며 우선 그 엄마를 안심시켰다.  아이가 어디 이름 모를 집에 가서 있을까 봐 걱정하실까 봐  집에서 아이들이 노는 사진도 보내주고, 영상통화도 해드렸다. 한 시간 정도 놀고 나서는 그 친구 학원 앞까지 아이와 함께 걸어서 데려다주었고, 그 엄마에게 학원에 들어가는 그 친구의 뒷모습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드렸다. 그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답장은 짧게 한마디가 왔다. "감사합니다."라고.


내 아이가 남의 친구 집에 가서 놀다가 친구네 엄마가 학원 앞까지 데려다주고 했다면, 나는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 몰랐을 것 같다. 정말 감사하고, 폐 끼쳐서 미안하다고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은 다 했을 것 같은데, 사람 마음이 다 똑같지 않을 수 있고 일하느라 바빠서 문자에 제대로 답장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아니면 원래 성격이 필요한 말만 하는 분일 수도 있고.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하교 후에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게 관례가 됐다. 아이 친구는 늘 나에게 우리 집 와도 되냐고 전화를 했고 나는 흔쾌히 오라고 해서 간식도 챙겨주고, 내 아이랑 잘 어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드게임이나 놀거리를 챙겨주기도 하고 둘이 잘 못 논다 싶으면 내가 술래가 되어 잡기놀이나 경찰과 도둑 놀이를 열심히 해주었다.


친구 엄마는 매주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자신의 아이가 좀 민폐다 싶었는지 나에게 연락이 와서 우리 아이는 왜 학교 끝나고 바로 학원에 가지 않고 집에 늘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마 내 아이가 집에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 자기 아이가 계속 놀러 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신경 쓰이는 듯했다.


내 아이는 학교가 끝날 시간쯤에 약효가 떨어질 때가 되어서 예민해지기도 하고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약물 복용으로 잃어버린 식욕이 오후에 돌아온다. 학교 급식도 거의 못 먹고 오기 때문에 3-4시쯤 되면 밥을 차려서 먹여야 학원을 보내든, 다른 스케줄을 소화할 에너지가 생긴다. 안 그래도 바짝 마른 아이라서 약물 복용 이후 더 말라가는 게 안쓰러워서 어떻게든 입맛 돌 때 먹을 것을 챙겨주고자 하교 직후에 학원을 보내지 않게 되었다.  


그런 속사정을 그 엄마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도 싫고, 그럴 이유도 없으니 그냥 이게 습관이 돼서 늘 좀 집에서 쉬었다가 학원 가는 걸 좋아한다고만 이야기했다. 내 아이와 내 상황과 스케줄에 맞춰서 하는 건데 왜 바로 방과 후에 왜 바로 학원에 가지 않느냐는 그 질문이 기분 나쁠만한 건 아니지도 그렇다고 기분이 좋지도 않았다.


한 번은 전날 만났던 그 친구가 다음날 우리 집에 놀러 와도 되냐고 물어보기에 별일 없으니 오라고 말해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계속 감기 기운이 있던 아이가 그다음이 되니 증상이 더 심해져서 하교 후에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상태에 이르렀다. 친구가 놀러 오기로 한 약속은 미처 기억하지 못하고 아이를 차에 싣고 주차장에 빠져나오는데 아이 친구가 우리 집 앞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기억이 나서 차에서 내려 아이 친구에게 지금 아파서 병원 가야 하니까 미안하지만 다음에 꼭 놀자고 초대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름대로 달래 가며 잘 설명해 주었다.


환절기라 그런지 병원에선 대기 시간도 길고 한참 기다렸다 겨우 진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우리 집에 놀러 가는 줄 알고 있다가 많이 실망했다며 애는 어디 아프냐고 괜찮냐고 물어보길래 갑작스럽게 병원에 오게 되어 미리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 말에 "애가 좀 자주 아프네요." 하더니 "우리 애가 친구집에 놀러 못 간다니 너무 실망해서 펑펑 울면서 학원에 갔더라고요.."라고 답장이 왔다.


나는 적잖이 당황해서 그 답장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우리 집에 오겠다고 미리 말한 건 맞지만 일방적으로 그 친구가 오겠다고 한 거였고, 사정상 애가 아프거나 일이 생기면 다음으로 충분히 미룰 수도 있는 약속이라고 생각했고, 그리고 요즘 같은 때는 코로나며 독감이며 민감한 시기라 내 아이랑 집에서 붙어 놀다가 전염이라도 되면 더 큰 일 아닌가. 노는 것도 좋지만 서로 아프지 않은 건강한 상태로 만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인 아이가 너무 실망해서 울었다고 하니 그게 좀 마음에 많이 걸린 모양이었다. 대충 둘러대고 카톡 대화를 마무리했다.


점점 우리 집을 학원 가기 전에 들르는 돌봄 센터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아이가 사회성이 워낙 부족하고 숫기가 없어 교우관계에 어려움이 있으니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갖는 건 나나 내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고 손해는 아닌 건 확실했다.


아이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노는 것 가지고 예민하게 구느냐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나는 기본 성향이 남이 우리 집에 오거나 내가 남의 집에 가는 일 자체는 좀 격식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갈 거면 미리 약속을 해서 시간을 잡고, 음료수 하나라도 사서 가는 게 예의라고 여긴다. 아무리 아이 친구이고 어리다고 해도 온다고 하면 미리 청소도 하고 집 정리라도 해야 하니 신경이 쓰인다. 고학년쯤 되어서 자기들끼리 만나는 거라면 그렇다 치지만 아직은 어리고 보호자가 함께 있어줘야 하는 나이의 아이들이다.


처음엔 그저 귀엽고 해맑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 친구에게서 문제 행동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남의 집 냉장고나 서랍장을 함부로 열고 간식거리를 빼서 먹는다던가, 방문을 온 집안이 울리도록 세게 닫고 방 안에 들어가 문을 잠가버리고 안 열어줘서 내 아이를 놀린다던가, 기분이 좀 나쁘면 아무 데나 침을 뿌리는 행동을 했다. 가장 심각한 건 가끔씩 중고생들이나 할법한 욕을 하는 거였는데 아주 가끔이고 내가 따끔하게 말하면 무안했는지 우리 집 안방 침대에 누워 나오지 않고 한참을 울었다. 그걸 또 달래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렇다고 욕을 쓰는 아이의 친구를, 그것도 우리 집에서 놀고 있는 상황인데 그대로 방관하는 건 어른이자 보호자로서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조용히 달래면서 이야기했는데 많이 무안한 모양이었다.


같은 학년의 다른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 친구는 학교 수업시간에도 방과 후 시간에도 문제 행동을 많이 해서 선생님한테 자주 혼나고 굉장히 산만해서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했다. 내 아이도 센터 수업받으러 갈 때마다 피드백 시간에 엄청난 문제행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뭐 내가 그 아이의 행동에 대해 판단할 자격도 위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식도 부족한데, 남의 자식 행동까지 걱정해 봤자 뭐 하겠나.


이건 다른 9살 아이들도, 그리고 내 아이도 고치기 어려운 습관인데 놀고 나면 정리도 전혀 하질 않아서 그 친구가 한 시간 놀고 가면 그야말로 온 집이 초토화가 돼버린다. 그걸 치우고 정리하고 쓸고 닦는데 한참이 걸린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해봐야 한 두 시간 정도 놀다 가지만 그 친구가 왔다간 날에 나는 심신이 피곤하고 지쳐서 밤이면 침대에 눕기가 무섭게 잠이 들곤 했다.


내 아이가 좋아하는 보드게임이나 숫자게임, 체스 같은 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오로지 잡기 놀이나 숨바꼭질, 집에 있는 자동차 타고 돌아다니며 놀기만 하다 보니 집안은 순식간에 엉망이 돼버렸다. 간식을 먹을 때에도 흘리고 묻히는 일이 다반사라 아이 친구가 다녀간 자리를 쫓아다니며 치우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 친구를 고맙고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다짐하고 채찍질했다. 사회성 없는 내 아이가 겨우 학교에서 친해진 귀하디 귀한 친구 한 명인데 무조건 감사히 여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나에게 그 친구 너무 자주 오는 것 같다고, 걔 엄마도는 애를 너무 방치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래도 유일하게 학교에서 우리 애가 사귄 친구고, 우리 애한테 얼마나 반갑게 인사해 주는데. 그런 친구라도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몰라."라고 응수했다. 그건 내 진심이었다.


하지만 아이 친구의 엄마는 딱히 이런 나의 배려에 대해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 늘 우리 집에 왔다고 하면 아이를 통해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학원 앞에 데려다줬다고 하면 알겠다고 하는 정도였다. 뭔가를 바라고 한 행동은 전혀 아니지만, 내가 가진 상식과는 조금 안 맞다는 생각은 했다. 꼭 인간관계가 기브 앤 테이크는 아니지만, 나라면 내 아이가 남의 집에 자주 가면서 친구 엄마가 챙겨주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 깊은 감사의 표시를 했을 것 같다. 사람 마음이 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거고, 내가 아이 친구 엄마랑 인간적인 관계로 긴밀히 얽힐 사이도 아니니 크게 마음 쓸 필요는 없다고 자위했다. 그저, 부족한 내 아이가 어울리는 친구 하나가 생겼음에 무조건 감사하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나를 지배했다.


몇 달을 정기적으로 친구가 우리 집에만 놀러 오다 보니 아이도 친구의 집에 한 번 놀러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친구 엄마의 허락을 받아서 내 아이도 친구 집에 주말 저녁에 가서 두어 번 놀고 왔다. 그때에는 내 마음도 상당히 풀렸다. 우리 집에 온만큼은 아니지만 내 아이도 친구집에 가서 놀고 저녁밥까지 챙겨주셨다고 하니 고마움이 컸다.


우리 아이는 사회성은 부족하면서도, 무턱대고 다른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걸 너무 좋아한다. 외동이라 혼자 있으면 외롭기도 하고 친구 집에 가서 놀면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 되는지 항상 놀러 갈 연구를 한다. 막상 친한 친구가 없는데, 친구 집에 가는 걸 좋아한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아이 친구가 우리 집에 오는 만큼은 아니어도 내 아이도 몇 번 가서 놀기도 하고 왕래를 했고, 그 엄마에게 좀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원래 그분의 성향이기도 하니 내가 맞추면 될 문제라고 여기기로 했다. 모든 사람이 내 맘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면서.


그런데 문제는 얼마 전부터 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횟수가 이제 주 1회가 아니라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 모자란 지 저번주에는 삼일 연속 전화가 와서 우리 집 놀러 와도 되냐고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다 와서 전화를 한다. 집 앞에 와버린 아이를 두고 매몰차게 안된다고 할 수도 없고 올 때마다 받아주긴 했다.


아이 학원 스케줄을 조정하면서 매주 그 친구가 놀러 오는 날에 학원을 한 시간 추가하게 됐다. 그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수업이었고, 우리 집에 자신의 아이가 매번 오늘걸 그 엄마도 불편해하고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 나도 좋은 구실 하나 만든다는 의도도 아주 조금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학원에 나가려고 하는 찰나에 아이 친구가 또 집 앞에 찾아왔다. 10분 후에 학원에 가야 한다고 하니 또 울상이 되어서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학원 스케줄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아이 친구 엄마도 알게 되었다.


또 한 번은 아이랑 서점에 책 반납하러 가기로 한 날이라 어쩔 수 없이 거절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날 아이 친구는 대단히 실망한 목소리로 계속 왜 안되냐고 꼭 가고 싶다면서 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듯했다. 미안하고 아쉽지만 반납 날짜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그 아이 받아주자고 우리가 스케줄을 맞춰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아이 오후 스케줄을 조금 빡빡한 날에도 기어이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학습지 선생님이 10분 후에 오기로 되어 있으니 이제 그만 놀고 학원에 가라고 말해도 아이 친구는 못 들은 척하면서 하고 싶은 놀이를 이어갔다. 나는 인내심을 발휘해서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이제 정말 선생님이 곧 오시니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점점 스트레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 아이 하나 컨트롤하고 다잡기도 힘든데 아이 친구마저 내 말을 잘 듣질 않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다고 귀하디 귀한 남의 집 자식인 아이 친구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학습지 선생님이 집에 오고 나서야 아이 친구는 겨우 양말을 챙겨 신고 풀이 죽은 표정이 되어 집을 나섰다. 그 순간에는 더 이상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이건 좀 아닌가? 끊어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아이가 그 친구와 잘 놀면 모르겠는데 서로 좋아하는 취향이 워낙 다르다 보니 한 시간 논다고 하면 같이 어울려 노는 건 십 분도 채 되지 않는다. 아이는 체스나 보드게임, 또는 수수께끼 퀴즈 같은 걸 하고 놀길 좋아하는데 그 친구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아이 친구에게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내가 뭔가 속물이고 마음이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조금 괴롭다. 이제 2주일에 한 번 정도만 와주었으면 좋겠는데,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 친구가 어떻게 반응할지, 또 친구 엄마는 뭐라고 할지 조금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내 아이가 친구가 없어서 고민이라고 해도, 내가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이걸 다 받아주어야 하는 건지 조금 의문이 들고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그래도 학교에서 사귄 유일한 친구인데. 무한한 배려의 마음을 발휘해야만 하는 건지. 사회성 늘리는 데는 아이와 성향 맞는 친구 한 명을 집에 초대해 같이 어울리게 하는 거라는데, 내 아이에게서 그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건 아닌지 조바심도 든다.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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