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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n 30. 2023

학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

매일 방학 며칠 남았는지 세는게 일입니다

3월 중순부터인가 아이는 여름 방학이 언제인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두 달여간의 긴 겨울방학을 지내며 방학의 달콤함을 느낀 것 같기도 하고, 학교를 다닌다는 게 고역이라는 인생의 명제를 깨달은 까닭도 있는 것 같았다. 유치원에서 초1 때까지만 해도 학기중과 방학에 대한 구분을 크게 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유치원이야 조금만 아프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비교적 쉽게 자주 결석할 수 있었고, 방학 기간에도 방과 후 과정을 신청해서 오전에는 등원시켰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학기 중이니 방학이니 하는 개념이 크게 잡히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1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고 새 학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반에, 새로운 친구들 그리고 특히나 1학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조금 엄격하고 무서운 성향의 담임선생님에 아이는 적응해야만 했다. 학기 초에는 아이도 나도 새로운 담임선생님께 적응하느라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마다 교육자로서 교육 방식과 성향이 극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내 아이의 담임 선생님의 성향이 작년과 올해 상당히 다르신 분을 만나게 되니 나조차도 적응하기 힘들어서 허우적거렸다. 자꾸 작년 선생님과 마음속으로 비교하면서 혼자 서운해하기도 하고 그 마음을 글로 토해내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우리에게도 들어맞는 듯했고, 아이는 천천히 조금씩 2학년 학교 생활에 적응해 가는 듯 보였다. 아침에 등교 준비를 마치고 학교에 가는 아이의 모습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가 않았다. 작년에는 학교에 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뭔가 기대감과 설렘이 보였다면 올해에는 무거움이 아이의 작은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자주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고, 딱히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다든지 하는 교우관계 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이런 아이가 걱정스럽고 안쓰러워 5월에는 친정식구들 해외여행에 뒤늦게 합류해서 따라간다는 핑계로 교외체험학습을 내고 일주일간 합법적으로 학교를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여차저차 1학기를 잘 마무리한다 싶었는데 최근 들어 또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면서, 등굣길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루 종일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학교에서도 엄마 생각만 나."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고 손으로 닦아내며 등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등교시켜 놓고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학부모 공개수업에 간 날 아이는 수업 내내 수업에 집중하지는 않고 뒤에 서있는 나를 돌아보며 방실방실 웃었다. 한 시간의 수업이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나고 인사하고 나오려는데 아이는 나를 붙잡고 안더니 눈시울이 또 붉어졌다. "엄마가 학교에 와줘서 너무 좋았어요. 계속 같이 있고 싶어요." 9살,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하지만 아직 한없이 어린애라서 그런지, 아니면 학교 생활이 긴장감의 연속이라 그런지 자신의 공간에 엄마가 와주었다는 게 큰 안도가 되었던 것 같다.


ADHD 약물 복용의 부작용 중 하나인 불안장애의 대표 증상으로 여겨진다. 계속 마음이 불안해서 끊임없이 기댈 곳과 안정감의 대상을 갈구하게 된다.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 그 이상의 수준으로 여겨진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요구하는 학습과 규칙 지키기와 같은 일들은 약의 효과로 그런대로 해낼 수 있게 되었지만 반대급부로 불안장애라는 부작용을 얻게 되었다.


약을 복용하면 그동안 아이에게 결핍되어 있었던 청각적 주의력을 급격하게 상승시켜 줘서 아이는 소리에 굉장히 예민하고 민감해진다. 약물 복용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남들이 이야기하는 대화나 목소리가 이제 원래의 것보다 더 크게 귀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게 사람 목소리만 잘 들어오면 좋은데, 기계음이나 예상치 못한 공사장의 소음이나 학교 방송 시설 소리 같은 게 아이를 괴롭힐 정도로 크게 들리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아이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반 학생들을 조용히 시킬 때 선생님께서 내시는 큰 고함소리다. 아무래도 학기가 거의 끝나가기도 하고 요즘 장마철이라 비가 자주 와서 그런지 학생들이 많이 풀어지고 자세도 흩트러진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쉬는 시간 끝나고 특히 수업 시작할 때 선생님이 크게 소리를 지르시는데 그 소리가 너무 무섭고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아서 힘들다고 한다.


학교에 가기 싫은 주된 이유가 "친구가 없고 외로워서"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긴 하나 그래도 걱정이다. 마땅히 친한 친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쉬는 시간에 혼자 종합장에 그림 그리고 놀며 시간을 보내는 법도 터득한 것 같고, 가끔 짝꿍이나 주변 모둠 친구들과 한 두 마디 나누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약물 부작용 때문에 약을 안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진퇴양난이다. 아이가 가엾어서 이번 주에 하루는 교외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집에서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딱히 여행 계획도 없지만 같이 도서관도 가고 외식도 하면서 편히 하루를 보낼 계획이었다. 그나마 그 주에는 하루 쉴 수 있다는 설렘에 들떠서 아이는 군말 없이 학교에 나가주었다. 이런 교외체험학습 제도라도 있어서 등교를 힘들어하는 아이에게는 한줄기 희망이 되어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그래도 학교는 꼭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곳이야."라는 말과 "너 학교 안 가면 엄마, 아빠 감옥 가야 돼."라는 반협박성의 말밖에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육아서를 읽다 보니 감옥 가야 된다는 말은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많은 육아서를 읽었어도 아직 실천에 옮기기가 어려운 나다.


매일 달력을 보고 방학이 며칠 남았는지 세고 있는 아이를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남은 학기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교외체험학습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서 여름방학이 와서 아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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