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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03. 2023

정신과약 먹는 사람이 주변에 이렇게 많다니

요즘 시대에 안 먹는 게 대단한 건가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아니면 요즘 세상이 이상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번에 친정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말하듯이 몇 년째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말을 하셨다. 짐짓 놀랐는데, 그냥 밥 먹었냐는 말 물어보듯이 편하게 말해서 나도 놀란 내색은 크게 할 수 없었다.


엄마는 갱년기를 지나면서 성격이 좀 많이 예민해지셨는데, 그 정도가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은 받은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정기 진료를 받을 정도인 줄은 몰랐다. 자식들도 나름대로 시집, 장가가서 열심히 제 역할하면서 살고 있고 몇 가지 걱정거리가 늘 있는 줄은 알았지만 약에 의존해서 해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후에 한창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야 강박증과 신경과민증 같은 증상이 있어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는 가족들도 있다. 그럼 이건 어렸을 적부터 타고난 정신과적 질환이 아니라는 말인데 살면서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얻게 된 증상을 약에 의존하게 된 사례들이다.


생각해 보면 어른 가족 말고도 조카 중에 한 명도 불안 장애와 수면 장애가 있어서 진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발달장애 관련 문제는 아닌데, 육아 환경 탓인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 탓인지 여러 원인들이 한데 버무려져 나타난 증상이고 열심히 치료도 받고 가정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명,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인 내 아이도 발달장애로 인해 ADHD 약을 복용 중에 있다. 친척들을 포함해 우리 가족 내에서만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다섯 명 이상이다.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한 명도 결혼하고 잘 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며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저 예쁘고 귀하게 자랐고, 능력 있고 다정한 남편 만나서 SNS에서 간간이 봐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실상은 그와 멀었던 것이다. 걔는 삶에서 걱정할게 뭐가 있어서 공황장애가 왔을까? 진심으로 궁금했지만 그런 걸 연락해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근원적인 궁금증이 생긴다. 요즘 세상이 미쳐가서 사람들도 제정신으로 살기 어려워진 걸까. 아니면 내 주변 사람들만 유독 삶이 힘든 사람들이 많거나,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이 많은 걸까?


느린 맘 카페에 들어가 보면 아이 약물 치료를 시키느라 병원에 다니다가 본인도 약물 복용을 시작하게 된 엄마들이 정말 많다. 나는 그 글들을 보면서 끝까지 내 정신을 지켜야지, 절대 약은 먹지 말아야지 다짐하곤 했다. 나만이라도 정신 똑바로 붙들고 살면서 내 아들 하나 제대로 키워내는 게 내 인생의 절대적 숙명처럼 엄숙하게 다짐하곤 했는데, 어찌 보면 인생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없다.


가끔 어떤 불행이나 행운은 "절대" 내 인생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지만, 거짓말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정신과 약을 복용한다는 게 불행이라고 볼 순 없지만, 나라고 약의 도움을 받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약으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인 일이고 어찌 보면 행운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먼 과거에는 약의 도움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냥 복에 겨워서 그런다던지, 심각하면 정신병 취급받으며 고통에 그대로 놓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내가 약에 도움을 받지 않고 여기까지 버텨온 것은, 내가 의외로 멘탈이 강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정신력은 너무 나약하고 연약해서, 아이의 말 한마디에 간담이 서늘해지고 심장이 쿵 내려앉고 마는 유릿장 같은 그것이라고만 여겼는데 어쩌면 나를 너무 과소평가했는지도 모른다.


약 없이 버티고 내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내가 짐짓 자랑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발달이 느린 아이를 키운다는 건 보통 이상의 멘탈이 필요한 일이다. 언젠가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할 날이 온다면 의연하게 받아들이련다.

그리고 약에 도움을 받고 있는 가족들을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점점 더 나아지기를, 의존도를 줄여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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