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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10. 2023

1992년도의 나를 떠올리다

아이 달래려다 내가 통곡한 사연

주말이 다 끝나가는 일요일 밤,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끄고 이제 잘 시간이라고 말했더니 아이의 표정이 울상이 된다. 거실의 불을 끄고, 집안에 창문이 닫혔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침대로 돌아가니 아이가 숨죽여 울고 있었다.


"엄마, 나 내일 학교 가기 싫어.."


주말에 특별히 멋진 곳으로 놀러 다녀온 것도 아니고, 그저 시간 때우듯 외식 한 번 하고 마트 쇼핑에 데리고 다닌 게 다인데 주말 내내 아이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다가오는 월요일의 등교가 두렵고 버거운지 울기 시작하더니 좀처럼 그치질 않는다. 남편에게 애 또 학교 가기 싫다고 운다고 SOS 쳐봤지만 잠깐 와서 달래 보더니 은근슬쩍 나에게 미루고 자리를 뜬다.


일단 잠은 재워야 하니 불을 껐다. 불 끄고 나면 또 한참을 울고 흐느끼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가 울다 지쳐 잠들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려한다는 각오와 함께.


학교 가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담임선생님이 무서워서다. 자주 화를 내고, 악을 지르고, 목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자주 깜짝 놀라고, 친구를 혼낼 때도 같이 혼나는 것 같아서 무섭다고 한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정말 못됐어.."


학기 초에는 나도 같이 좀 더 친절하게 해주지 않는 선생님이 못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언제나 다정하고 부드러운 선생님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1년간 함께할 담임선생님의 성향이 어떨 땐 유한 분이실 수도 있고, 어떨 땐 조금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실 수도 있다. 전학을 간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당장 해결방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가 일단 적응하는 수밖에는.


"작년 선생님은 친절하고 화를 잘 내지 않으셨지만, 이번 선생님은 학생들이 장난치고 시끄러운 걸 싫어하셔서 그래. 너희를 정말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야. 어떨 땐 다정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지만, 어떨 땐 목소리도 크고 엄한 선생님이 너의 담임이 될 수도 있어. OO이가 조금씩 적응해야지. 선생님이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야."


오은영 박사님 책이나 육아서 어디선가 본 듯한 말들을 생각해 내서 한 말이었는데, 나 스스로는 꽤나 만족스러운 설명이었지만 아이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싫어, 무서워 안 갈래."만 무한반복 되었다.


나도 점점 지쳐갔다. 늘 그랬듯, 어느 정도 달래다가 나도 모르게 짜증이 치솟아서 이제 그만하고 잠 좀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것 같았다. 아이의 감정 읽어주기도 별로 통하지 않았고, 따뜻하게 안고 달래줘도 소용없었다. 이쯤 되면 다 때려치우고 싶다. 저번 주에 아프다는 핑계로 이틀이나 결석해 놓고 내일 또 학교에 안 가고 싶다고 하다니 어쩌자는 거니.




한 숨을 푹 쉬고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나 어릴 적 이야기를 해주는 게 어떨까 싶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아니 그 당시 국민학교였던 그 시절 이야기나 들려줘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할 땐 초등학교였지만 입학 땐 국민학교였다.


내가 입학하던 때가 몇 년도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990년도인가? 91년도인가? 그때 대통령은 누구였지? 근데 연도가 뭐가 중요한데 지금?


IMF 한참 전이었고, 경제 호황기에 어느 누구나 열심히 살며 은행에 저축만 부지런히 하면 중산층의 삶을 살 수 있었던 호시절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시절이다. 그러나 나는 어린 초등학생일 뿐이었고, 엄마, 아빠는 늘 먹고살기 바빠서 나에게 그다지 신경을 많이 쓰실 겨를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일찍부터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것에 적응해 갔던 것 같다.






"엄마, 초등학교 다니던 때 이야기 해줄까? 엄마는 1학년 때 5반이었고 2학년 때는 6반이었어. 1학년, 2학년 두 번 다 남자 담임선생님이었어. 선생님은 키가 크고 안경을 쓰셨고 약간 머리숱이 없는 대머리였는데 엄하고 무서웠어.


입학식날 운동장에 전교생이 서있었는데 어떤 장난꾸러기 남자애가 엄마가 입고 있던 바지를 확 잡아 내렸어. 나는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울었는데 선생님이 그 남자애를 혼낸 기억은 없어. 그냥 나한테 와서 무슨 상황이었냐고 묻기만 하셨어. 그 후로도 치마만 입고 가면 남자애들은 내 치마를 들춰 올리며 아이스께끼~라는 장난을 쳤어. 그때 엄마는 너무 소심하고 말도 잘 못하는 성격이어서 조용히 당하기만 했어.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답답하고 왜 그렇게 말을 못 했을까 싶은데, 그땐 그랬어.


1학년 때는 받아쓰기 시험을 잘 못 보거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 손바닥을 매로 맞기도 했어. 내 기억에 한 번 맞을 때 5대씩 맞았던 것 같아. 정말 억울했던 건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 친구들이 장난치거나 까불다가 선생님이 화가 나면 단체로 손바닥을 맞았다는 거야. 매를 맞고 나면 손바닥이 뻘겋게 부어올라서 너무 아팠어. 근데 그땐 선생님들이 매를 사용하는 게 당연하던 때라서 엄마는 그냥 학교는 잘 못하면 매 맞는 곳이고 나하고 생각했어. 지금은 그래도 선생님들이 매를 쓰면서 너희들 때리지는 않잖아. 엄마 때보다는 훨씬 낫지?!


학교가 끝나고 나면 엄마는 집에 바로 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흙을 파고 놀거나 철봉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거 같아. 친구랑 같이 놀았는지 혼자 놀았는지는 모르겠어. 그냥 바로 갈 데도 없고 그땐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어서 그러고 놀았어. 그리고는 혼자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어.


그때 당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다 회사를 다니셨기 때문에 집에 오면 늘 혼자였어. 엄마의 오빠도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학교가 늦게 끝나기도 했고 학원을 다녀서 낮에는 만나기 힘들었어. 빈 집에 들어와서 엄마는 혼자 책상에 앉아 학교 숙제를 했어. 그리고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한 뒤 동네 골목에서 놀거나 친구 집에 가서 오후 내내 놀았어. 저녁쯤에 집에 돌아오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엄마, 아빠)가 있었고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어.


근데 엄마는 학교 끝나고 집에 왔을 땐 빈 집인 게 너무 싫었어.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 학교 다니기 싫어했는지 어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분명히 기억나는 건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혼자인 게 싫었다는 거야.


2학년 때 엄마는 멍청한 편이었는지 우리 OO 이는 벌써 다 외우는 구구단을 잘 못 외워서 학교가 끝났는데도 교실에 남아서 외웠던 기억이 있어. 2학년 선생님은 1학년 선생님과 다르게 매를 때리지는 않았는데 단체 기합을 자주 받았어. 다른 친구가 잘 못하면 전체가 벌을 받았는데 그럴 땐 반 전체 애들이 교실 책상 위로 올라가서 무릎 꿇고 앉아서 손을 들었어. 손 드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손이 내려가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벌 받는 시간도 늘어났기 때문에 진짜 울고 싶었어. 2학년 때는 거의 벌 받은 기억하고 구구단 못 외운 기억밖에 없어.


한 번은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외할머니가 바빠서 못 오게 되었어. 서운해하던 나를 위해서 할머니가 직접 그 먼 학교까지 떡을 한 바구니 사들고 학교로 찾아왔는데 엄마는.. 할머니가 학교를 찾아온 게 부끄러웠어. 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차라리 아무도 안 오는 게 나아겠다는 생각까지 했어. 엄마 참 나쁘지? 엄마의 할머니는 엄마를 정말 많이 사랑해 주셨고 잘해주셨는데 말이야.."





이때부터는 갑자기 목이 메어와서 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내 어릴 적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학교는 가고 싶어 했을까? 낮에 혼자 빈 집에 있을 때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냈을까? 주말은 뭘 하면서 보냈는지 아무리 생각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어 가지 머릿속에 카메라로 찍힌 사진처럼 남아있는 기억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이야기하다 보니 갑자기 너무 서러움이 복받쳐와서 엉엉 울었다. 울고 있는 나를 아이가 반대로 달래준다.


"엄마도 참 힘들었겠다. 안아줄게.."


"고마워, 엄마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 가고 싶었는지 가기 싫었는지 생각해내고 싶은데 기억이 안 나. 우리 OO 이한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떠오르지가 않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다녔어. 선생님이 무서우면 무서운가 보다 하고 말이야.

엄마는 우리 OO이가 부러워. 학교 끝나면 엄마가 매일 학교 앞으로 데리러 가잖아. 엄마 어렸을 땐 외할머니가 델리온 적도 한 번도 없었어. 그리고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


어쩌다 보니 아이와 부둥켜안고 울게 되었고 한참을 붙잡고 울다가 그쳤다. 눈물에도 총량이 있는지 아이도 한참 울고 나니 지쳐서 더 울지 않았다. 엄마의 라떼 이야기 소환으로 아이를 입막음시켜보려는 작전이 통한건지도 모르겠다.


둘 다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또 등교하기 싫다고 징징대다가 억지로 학교에 갔다. 터벅터벅 뻘게진 눈을 닦으며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방학이 16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매일 밤, 그리고 아침에 등교거부하는 아이와 전쟁을 치를 생각을 하니 더 눈앞이 캄캄하다.


엄마가 아이의 24시간을 함께 해주면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없고, 학교에서만큼은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견디고 좌절에 부딪히며 독립해 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어렵다. 덕분에 기억속에서만 어렴풋이 남아있던 내 아주 어린시절 이야기를 입밖으로 내뱉어볼 수 있어서 뭔가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후련했다. 오늘 밤에는 또 무슨 말로 아이를 달래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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