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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13. 2023

지긋지긋한 육아서

뭐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타령 좀 그만

육아서에 중독됐다 싶을 정도로 n년째 열심히 읽어대고 있다. 열심히 읽는다고 해봤자 한 달에 두세 권 정도지만, 한 달 평균 5권 정도의 책을 읽어낸다고 가정했을 때 내 독서의 80퍼센트 이상은 육아서가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발달장애나 ADHD 관련 책도 열심히 읽긴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적이고 의학 영역이다 보니 관련 서적이 그리 많진 않다. 조금 특별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보통의 일반 아이들 양육을 기준으로 쓴 자녀교육서나 육아서에서도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 아이는 평범한 아이들보다 더 손이 많이 가고, 또래 발달 수준에 비해 자기감정을 다루는데 더 서툰 아이라서 고도의 양육 기술이 필요하다. 언어발달도 지연되고, 또래보다 전두엽 발달이 느린 탓에 애처럼 행동하고 징징대고 떼씀으로써 엄마를 극도의 한계로 몰고 가는 게 비일비재해서 나는 보통의 엄마들보다 더 많은 연습과 공부가 필요했다. 대체로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도 못되어서 애가 흥분해서 날뛰면 나도 같이 화가 나고 감정이 폭발해서 싸우고 뒤돌아서 후회하는 게 흔한 일이 되자 나 스스로 양육 공부가 필요함을 느꼈다.


아이가 아무리 화나게 하고, 비논리적인 억지로 나를 궁지로 몰아가도 내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적절한 반응을 해주는 방법을 공부하는 데에는 육아서만 한 게 없었다. 오은영 박사님이 쓴 책에서 시작해서 각종 방송매체에서 활약 중인 소위 육아멘토, 육아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쓴 시중에 나온 육아서들은 거의 다 찾아 읽은 기분이다. 물론 다 읽은 건 아니고,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으로 많이 읽은 편이다.


가끔 소설이나 인문학 책으로 한 눈 팔 때도 있었지만, 그런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있을 때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지금 육아서나 자녀교육서를 한 줄이라도 더 읽고 애 잘 키우는 게 가장 시급한 시점인데 내가 이렇게 한가하게 나 읽고 싶은 책만 보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도 내가 관심 가는 여행이나 인문학 코너보다는 의무감에 양육서 코너의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꼭 훑어보곤 했다. 최근에 이임숙 선생님이 쓴 육아책을 몇 권 읽었는데 내용이 꽤 충실했고 상당히 유익했다. 대부분 육아서지만 꽤 유명한 분이라 그런지 그렇고 그런 흔해 빠진 내용보다는 조금 더 실용적이고 일상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꿀팁들이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육아서를 또다시 탐독하기로 했다. 신간으로 나온 나름 유명한 자녀교육 멘토가 쓴 책을 찾아 읽었다. 이 책 역시 OO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가 제목이었다. 왜 이런 타이틀을 갖다 붙여서 부모들을 자꾸 자극하는 걸까? 제목이 살짝 거슬린다. 가장 중요한 이걸 모르면 네 아이 인생은 망하게 되어 있어, 그러니 이 책을 사서 당장 읽도록해,라는 협박적인 느낌이 다분히 드는 건 내 삐뚤어진 사고방식 때문일까?


그렇지만 책 표지도 상당히 깔끔해 보이고 디자인도 예뻤고, 무엇보다 내 아이의 나이가 대문짝만 하게 책 타이틀에 걸려 있었다. 9세의 나이에 너무나 중요한 게 있다고 하니, 안 읽어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자는 현직초등교사라서 더 생생한 현실감 있는 조언을 해줄 것 같았다.


도움이 되는 내용도 꽤 있었지만 읽다 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외국의 박사와 실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이제 그 박사들 이름까지 외울 지경이다.


대체 <마시멜로 실험> 없이는 육아서를 못 쓰는 건가? 

학습된 무기력, 낙관주의, 긍정심리학으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 이 양반도 정말 자주 나온다. 개를 데리고 전기 충격을 주는 실험을 했는데 스스로 전기 충격기를 끌 수 있었던 개들은 좀 더 학습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어떤 방법으로도 전기 충격을 조절할 수 없고 당하고 있어야만 했던 개들은 무기력이 학습되어 그다음부터 소극적으로 무기력한 학습 태도를 보였다는 내용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서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적극적인 학습 태도를 계발시킬 수 있다 뭐, 이런 내용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라는 <대니얼 골먼> 이 양반도 자주 등장하는데, 감정 이입 능력을 키우면 행동뿐만 아니라 학업성취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아이의 감정과 정서가 안정되어야 학습을 잘할 수 있으니 부모가 앞장서서 화목한 가정 분위기 형성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그걸 모르나요..


<피에르 부르디외>는 부모가 아이에게 3가지 자본을 물려줄 수 있는데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그리고 아이와 얼마나 어떤 상호작용을 하느냐에 관한 사회적 자본이다.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은 솔직히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으로 이미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육아서에서는 사회적 자본이라도 열심히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은 못 물려줘서 미안하지만 셋 중 마지막 하나라도 건져보자 아들아.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자 <캐럴 드웩>의 고정형 마음가짐과 성장형 마음가짐도 정말 자주 등장한다. 고정형 마음가짐은 재능은 타고나는 거라 아무리 노력해도 바뀔 수 없다는 거고, 성장형 마음가짐은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달라진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자라나는 아이들은 성장형 마음가짐을 가져야 끈기 있게 끝까지 노력하며 결국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고 한다.


육아서나 자녀교육서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미국의 유명한 교육학자, 심리학자와 유명한 실험 몇 개를 가져다 와서 뭔가 신빙성 있는듯한 이론적 토대를 제시하면서 저자 자신의 경험과 곁들여서 논한다. 저자는 교육자일수도 있고 상담가일 수도 있고 육아학 박사는 없겠지만 그쪽 관련 학위를 다수 소지하고 있거나 아니면 유튜브라도 운영한다.


이쯤 되면 나도 경력만 좀 화려하다면 이 정도 육아서는 쓸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향력과 유명세가 턱없이 부족하니 책을 내는 것조차 힘들겠지만.


물론 저자만의 경험과 나름의 분석에서 나온 유익한 내용들도 몇몇 있었지만, 이제는 읽다 보니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지겹다. 지겹다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지긋지긋하다. 언제까지 나는 육아서를 읽고, 다짐하고, 실상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하지 못해 후회하고 자책하는 날들을 보내야만 하는가.


내가 이렇게 읽고 노력하면 과연 아이는 정말로 늘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매사 적극적이고 인내심과 끈기, 자율성은 물론 성장형 마인드셋을 갖춘 글로벌 리더로 자랄 수 있을까. 책을 쓴 저자들은 한결같이 다들 그렇게 똑 부러지고 꼼꼼하고 빈틈없이 완벽한지, 내가 그들처럼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들보다 훨씬 가방끈도 짧은 것 같고 그렇다고 성품이 더 훌륭한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여러모로 대단해 보이는 저자들의 스펙을 보고 있자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그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서하면서 흉내라도 내면 조금은 내 아이도 그네들 아이처럼 훌륭해질 수 있을까 한 줄기 희망을 품으며 일단 닥치는 대로 읽기는 읽어본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 글 쓰는 기술에 관한 창작론으로 둔갑하고 있지만 사실 초반부는 거의 스티븐 킹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의 어린 시절은 놀라울 정도로 가난하고 어두침침하고 늘 일에 찌들어 사느라 바쁜 홀어머니 밑에서 거의 반 방치된 상태로 자랐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미국도 과거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중하층은 다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자녀의 심리나 정서를 돌봐줄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미국은 선진국이라 자녀교육도 남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전후 시대에는 전 세계 어디나 부모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아이들은 방치되고 그 방치된 시간에 각자 엉뚱한 일에 몰두하거나 시간 때우기로 헛짓거리를 하다 보니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적지 않다.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자기 재능을 발견하고 잘하는 글쓰기를 꾸준히 연습하고 투고하며 꿈을 좇아 살다가 지금의 대작가가 된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당분간 육아서를 끊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당분간은 내 구미가 당기는 대로 아무 책이나 읽어볼 테다. 그러다보면 또 아이의 감정에 일희일비하며 미치고 날뛰다가 회개하듯 육아서 한 권을 절절이 밑줄 박박 치고 읽고 엄마의 말연습을 외우며 회개할 날이 또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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