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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18. 2023

아이의 문제행동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가

adhd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요새 아이의 문제행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행동들이 정말로 문제행동이라 불러도 될 만큼 문제행동인지, ADHD 증상에서 기인한 건지, 아니면 아이의 본래 성향인지 어쩐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두고 보자니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못 견디는 순간들이 더러 찾아온다. 그럴 때면 나는 육아서에서 수없이 읽고 쓰며 외우기까지 했던 아이 감정 읽어주고받아주기 전략을 쓰지 못하고 어김없이 화를 내고 만다.


가장 큰 문제행동은 심심할 때마다 나에게 와서 간지럽히거나 똥침을 한다거나 입냄새 공격이라며 얼굴 가까이에 대고 입바람을 부는 행동이다. 처음 몇 번, 아니 수십 번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그냥 그 나이 또래의 장난스러운 아이들의 표현이겠지 싶어서 참았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싫다고 반응을 하고, 이런 행동은 엄마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매번 받아주기 힘드니 그만하라고 좋게 이야기해도 도무지 듣질 않았다.


당장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아이가 늘 하는 행동은 "미안해요"라고 말하며 뽀뽀를 한다거나 안아주거나 와서 어깨를 주물러준다. 그야말로 병 주고 약주 고다. 괴롭혀놓고 화내면 곧바로 와서 꼬리를 내리고 애정표현을 한다. 이것도 처음 몇 번은 귀엽고 애교스럽게 봐줄 수 있었지만 점점 그 횟수가 누적되어 가니 다 가식으로 보이고 단지 그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로 느껴진다.


이 문제로 얼마 전에 나의 주도로 시작한 "가족회의"에 안건으로까지 상정해서 의논했다. 말이 의논이지,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엄마, 아빠가 훈계하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이건 가족회의를 빙자한 훈육시간으로 전락해 버린 것 같아 씁쓸했다. 그래도 아이는 나름 자기 방어를 하며 앞으로 이 행동을 앞으로 조금은 줄여보겠다고 장엄하게 선언했다.


이 문제행동의 주된 대상은 바로 엄마인 나다. 사실 그래서 그동안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면도 있다. 학교에서나 밖에 나가서 이런 행동을 하면 다들 싫어할게 뻔하고 비호감이 되기 십상인데 자세히 관찰해 보니 자신이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 외에는 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학교 생활은 내가 옆에서 지켜볼 수 없으니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믿을 수밖에. 게다가 학교에서는 약기운이 돌 때라 상당히 긴장하고 예민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친구에게 편하게 이런 장난을 칠 것 같지도 않다.


피해자가 단지 나뿐인 문제행동이라면, 나만 참고 넘어가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받아주고 못 참을 때는 살짝 욱했다가, 또 받아주고 했는데 이제는 좀 한계가 왔다. 받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좋게 말해도 행동 교정이 이렇게까지 안되면 어쩌라는 말인가.


어제는 좀 심하게 화를 냈다. 이를 닦지도 않은 상태에서 또 입바람을 내 얼굴에 대고 부는 행동에 자기 나름대로는 애정 표현인지 뭔지 자꾸 겨드랑이 간지럼을 태우고 도망가는데 짜증이 확 올라오는 것이었다. 짜증 난다고, 엄마 이런 장난 정말 싫어한다고 정색하고 훈육을 해도 그냥 그때뿐이다. 또 사랑한다고 안아주면서 어깨 주무르려고 하는데, 그것조차 싫어서 거칠게 아이를 밀쳤다. "저리 가라고, 엄마 진짜 짜증 난다고." 여과 없이 화를 내면서 말이다.


본인도 무안했는지 혼자 침대에 엎드려서 뭐라 뭐라 중얼거린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어보니 "엄마가 착한 엄마가 되게 해 주세요. 잔소리 많은 엄마는 싫어요." 뭐 이런 식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잔소리를 무턱대고 먼저 시작한 것도 없는데 정말 억울했다. 자기가 먼저 엄마를 괴롭혀놓고 나더러 나쁜 엄마라니.


하지만 또 안타까운 건,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행동제어가 안되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어제도 또 왜 이러냐고 화를 내는 순간, "엄마, 나도 모르게 내 뇌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요."라고 말했다. 아마도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이라는 걸 금세 까먹고 자기도 모르게 또 그런 행동이 나와버린 것 같다.


도파민 분출 부족 탓인지 심심하거나 할 일이 없으면 그 순간을 못 견디고 쓸데없는 장난을 치거나 건드는 행동을 하는데, 아무리 그 대상이 엄마에 한정되어 있다고 해도 잡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쇠는 물, 밖에서도 샌다고 집에서 한정 없이 받아주다 보면 이게 허용되는 건 줄 알고 학교에서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멋대로 행동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나마 소위 말해 ADHD 티가 덜 나는, 주의력 결핍형이라서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 이 정도지, 행동과잉에 치중된 ADHD 아이들은 더 행동 통제가 어렵고 매 순간이 자기 조절과의 싸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조용한 ADHD인 주의력 결핍형이라고 해서 과잉 행동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어렸을 때는 그저 어리고 아직 뭘 몰라서 그리고 언어 발달이 워낙 느렸기 때문에 자기 조절이 안되고 떼를 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밀히 생각해 보면 아마 과잉행동 양상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책들에서는 늘 아이의 장점과 강점에 집중하라고 하는데, 이렇게 또 아이의 단점과 문제행동에만 집중하게 되는 상황들이 아쉽고 안타깝다. 생각해 보면 예전 같으면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을 아이는 해내주고 있는데 말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일반 초등학교에 별 탈 없이 다니는 것, 학원 한 군데를 매일 다니는 것, 유치원 때는 상상도 못 할 수준의 핑퐁 대화가 되는 것 등. 애랑 대화라도 제대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대안학교 말고 일반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와 같은 예전에 간절히 기도하고 바랬던 일들을 아이는 지금 해내주고 있다.


어쩌면 감사할 일이 더 많고 아이가 긍정적으로 잘 해내고 있는 부분도 많은데 자꾸 문제 행동에만 집중하게 되는 나도 문제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아이의 문제행동이라고 명명한 그 행동들이 그다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고. 문제라고 생각하면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 다 문제가 아닌 게 없는 상태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시에 짧고 굵게 그리고 화내지 않는 말투로 "엄마 이렇게 하는 거 싫어하니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야겠다. 도무지 변화하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의 모습도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흐르면 변하기도 했으니까,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다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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