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Jul 21. 2023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자꾸만 귀에 맴도는 그 울부짖음

이 주 전 큰 마음먹고 미리 예약해 둔 미용실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39도를 훌쩍 뛰어넘어 불덩이가 된 아이를 데리고 급하게 병원에 데려가 코로나, 독감 검사를 받고 이틀새 간호를 했다. 몇 달 만에 미용실 가서 머리도 새로 하고 기분전환 좀 해보려던 내 계획은 비록 무산됐지만, 입원 직전까지 갔다가 삼일 만에 다시 정상체온으로 돌아와 호전된 아이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컨디션을 회복한 아이는 다시 등교했고, 바쁜 일상에 어렵사리 두어 시간을 내서 미용실에 갈 수 있게 됐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쾌적하고 산뜻한 미용실이라는 공간에서 타인에게 내 머리칼을 맡기고 맘껏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은 그야말로 힐링이다. 몇 달에 한 번 허락된 그 시간을 맘껏 누리고 나서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낯설지 않긴 한데, 심상치 않다. 분노와 원망에 휩싸여서 감정 조절의 끈을 놓은 채, 엄마 찾는 새끼 고양이가 울부짖는듯한 소리였다. 처음엔 단순히 울부짖는 소리인가 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뭐라고 의미 있는 말을 한다.


"엄마 나빠요. 아빠 나빠요. 너무 나빠요.. 나는. 나는.."


찬찬히 생각해 보니 아이의 친구 집 앞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같이 그룹 사회성 치료를 받고 있는 센터 친구의 집이다. 여러 번 놀러 간 적도 있고, 저층에 살다 보니 창문을 열어놓으면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 밖에서 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웬만하면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밖에 흘러나오기 쉽지 않을 텐데, 아이는 목청껏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르고 있었다.


짐작하건대 그 아이의 엄마, 아빠가 훈육을 하고 있거나 어떤 문제 행동을 고쳐보려고 혼내고 있는 상황일 것 같다. 눈앞에 그 상황이 그려진다. 엄마, 아빠 두 분 다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들이다. 특별한 음식을 하나 만들면 꼭 맛보라고 가져다주고, 여름에는 찐 옥수수와 감자 겨울에는 집에서 만든 팥죽 등 맛있는 거 있으면 조금이라도 나눠주려고 애를 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친정엄마도 요즘 세상에 그렇게 좋은 사람 없다고 감사히 여기고 잘 지내라고 당부하면서 작은 선물까지 챙겨주시기까지 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와 센터 수업을 듣는 그 집 아이는 성장에 있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 아이도 발달장애에 치료를 받고 있는 터라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그 집 아이와 큰 차이가 한 가지 있다면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오늘도 역시나 보드게임하면서 자기가 졌다고 내팽개지고 던지고 울면서 승부를 못 받아들이는 아들 녀석과 한 판 대치 상황을 겪어내느라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뭔가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하기에 보드게임도 규칙에 맞춰 할 수는 있는 상태다.


그 집 아이도 인지 수준도 괜찮아서 학교에서 학습은 잘하는 편이지만 감정조절이 어려워서 한 번 터지면 아예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두 손 두 발을 들어야만 한다. 심지어 그 엄마는 아이가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이라서 더 싫다고 했다. 키라도 작으면 나이보다 어리게 봐주니 어디 가서 좀 어눌하고 서툴러도 덜 민망한데, 키가 커서 한 두 학년 윗 나이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 난감하다는 것이다. 나도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 말을 들을 때 백번, 천 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엄마, 아빠에게 화가 났을까. 엄마는 어떤 행동을 고치려고 노력하던 것일까. 나는 지나가다 우연히 한 번 들은 거지만 아이의 저런 감정 폭발이 일상에서 매번 지속되고 반복되고 있다면 엄마의 마음은 오죽할까.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통제하고 훈육을 해야 하는지도 걱정이지만, 사실 나는 그 엄마의 멘털이 더 걱정이다. 오로지 아이 케어를 위해서 직장도 그만두고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며 돌보는 중이다. 물론 아이는 가장 처음 만났을 때보다 여러 모로 좋아졌지만, 여전히 아이 스스로와 부모를 고통스럽게 할지도 모르는 행동 양상들이 남아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밥을 차리는데도 그 아이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이 와중에 내 아이는 제어가 안 될 정도로 폭발하지는 않으니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렇지만 그 마음보다 어서 빨리 조금이라도 더 그 아이가 나아져서 그 엄마의 몸과 마음에 여유를 찾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훨씬 더 크다.


평소에 자주 연락하는 사이이니, 그 엄마에게 전화해서 혹시 괜찮냐고 물어보려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는데 꾹 참았다. 참길 정말 잘한 것 같다. 내가 전화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괜히 상처에 긁어 부스럼만 될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자주 있는 일이라 그만한 일이 딱히 상처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문득 작년에 읽었던 <아이는 느려도 성장한다>는 자폐 아이를 키우는 일본인 아빠가 쓴 책이 떠올랐다. 일곱 살, 여덣살이 되어도 도무지 말 다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딸을 위해서 자신과 아내가 번 거의 전 재산을 써가며 자폐 전문 연구팀에 치료를 장기간 맡겼다. 몇 년간의 노력 끝에 아이는 어렵게 스스로의 의지로 아빠에게 말을 건넨다. "아빠 나 배고파.."라고. 딸의 입에서 거의 처음으로, 의미가 있는 말 다운 말을 들은 아빠는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 작가가 한 말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인생은 모든 게 예상 밖이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조절하려고 발버둥 치기 때문에 괴로운 건지도 모른다.

<아이는 느려도 성장한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다 타버릴 때가 많다. 하지만 저 문구를 봤을 때 왠지 모르게 조금은 힘이 났다. 인생에서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 그걸 인정하고 신속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솔직히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이 참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에게 그리고 그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그저 힘내, 앞으로 나아지겠지, 잘될 거야,라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걸 알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문제행동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