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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24. 2023

전혀 반갑지 않은 생일파티 초대

adhd 아이 키우기

저번 주 하교길에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 새봄이가 나를 생일파티에 초대한대!"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반 여자친구인 새봄이는 어린이집도 같이 나와서 아이 엄마랑도 꽤 오래 알고 지냈다. 하지만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기도 하고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어도 내 아이랑 딱히 친하게 지낸 건 아니다. 사실 내 아이는 어느 누구와도 이렇다 하게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새봄이도 자주 봐서 익숙한 것뿐이지 딱히 친하다고 말하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몇 달 전에 생일파티 치를 때도 새봄이는 초대하지 않았다. 정말 나랑 친하게 지내는 엄마 세 명 정도만 엄선해서 초대했기 때문에 새봄이는 초대리스트에 없었다. 마음먹으면 초대한다고 해도 어색할 것 없는 사이긴 하지만, 나는 아이가 생일파티에서 애들이랑 잘 못 어울릴 것을 우려해서 최대한 소규모로 짧고 굵게 끝내는 게 소기의 목표였다.


그런 새봄이에게 생일파티 초대를 받다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생일파티는 주로 엄마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경우가 많기에 초대하는 친구들도 엄마의 인맥도 영향을 미치는 편이다. 왜냐하면 파티에 아이들만 가는 게 아니라 평소에 친분이 있는 엄마들도 모여서 함께 준비한 다과를 먹으며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새봄이 엄마가 나와 가까운 사이여서 내 아이도 초대받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생일파티 초대가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불과 두 달여 전에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서 갔다가 아이가 아주 난리를 쳤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10명 이상의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유치원 출신도 많고 같은 반인 아이들도 있고 해서 다들 친숙한 친구들이 있었는데도, 아이는 어느 누구와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남자 여자 섞여 있어서 남녀 따로 놀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 공놀이하는 아이들로 자연스레 나누어졌다. 아이는 어디엔가 껴서 놀고 싶었는데 자연스럽게 끼지를 못했다. 노는 아이들 옆에서 서성이다가 이내 엄마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는 나에게 울상이 되어서 다가왔다.


"아무도 나랑 안 놀아줘. 일부러 나랑 안 놀아주는 거야. 공놀이하고 싶은데 안 끼워줘."라고 말하며 울기 시작했다. 스스로 친구들과 놀아보려고 했지만 잘 안되니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거다. 공놀이하는 애들에게 가서 같이 껴서 놀아주라고 했더니 다른 친구들도 억울해한다. "일부러 안 끼워준 적 없어요. 그냥 하다 보니까 노는 건데, 쟤가 그냥 갑자기 삐진 거예요."라며 항변한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놀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사실 열댓 명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걔 중에는 혼자 앉아서 관심 있는 놀잇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애들이랑 어울리기 힘들면 너도 그냥 좋아하는 장난감 가지고 놀아라고 설득도 해보았는데 그건 또 싫단다. 같이 놀고 싶은데 안 끼워주는 친구들이 문제라면서 처음에는 나를 붙잡고 성토하더니 급기야 다른 엄마들 한 명 한 명 다 붙잡고 울면서 호소한다.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가 센터 치료를 받는다는 걸 아는 엄마도 있었고, 모르는 엄마도 있었는데, 이 정도면 대놓고 "나 문제 있는 아이예요."라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엄마들은 최대한 내 눈치를 보면서 아이를 직접 달래주기도 하고 다른 것에 주의를 전환시키기도 했다.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막상 또 집에 가자고 하니 그건 또 싫다고 계속 여기에 있고 싶다며 떼를 쓰고, 하지만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한다. 다른 엄마들은 속 편히 수다 떨면서 웃고 떠드는데, 나는 아이 달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감정이 수그러들고, 애니메이션을 틀어주고 다른 친구들도 다 앉아서 놀기를 멈추니 아이는 조금 진정되었다. 어디에도 껴서 놀 필요가 없으니 차라리 다행인 시간이었다.


그렇게 생일파티 며칠 전부터 어서 가고 싶다고, 재미있게 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이러려고 왔나 싶어서 속상했다. 아이와 나를 향한 엄마들의 안쓰러운 눈길을 뒤로하고 자리를 좀 일찍 떠서 상황은 일단락 됐다.


그 후로 친한 멤버 중 한 명의 생일파티가 있었는데 정말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게도 남편과 미리 계획했던 여행 스케줄과 날짜가 겹쳤고 가지 않아도 될 충분한 명분이 생겼다. 미안하지만 못 가게 되었다고 설명을 미리 하고 선물만 따로 전달해 준 뒤 여행을 가버렸다.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또 아이가 파티에 갔다가 못 어울려서 울고 불고 난리 치는 꼴을 안 봐도 되니 행복하기까지 했다.


아이의 사회성은 오랜 세월의 약물 치료와 센터 치료 덕분에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또래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며 현재진행형이라고 보는 게 맞다. 아직 자기중심적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힘이 약하고, 놀이 상황에 자연스럽게 끼는 걸 어려워한다. 성격이 무난하고 잘 받아주는 조금 순한 성향의 친구와 일대일로 노는 환경에서는 나름대로 유의미한 대화도 간간이 나누면서 잘 노는 편이다. 하지만 이 사회성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다르게 표출되는지, 친구들의 너무 여러 명이 있고 자연스럽게 무리 지어서 노는 분위기에서는 아이는 더 혼란스러워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무너지곤 한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아이가 아직은 구조화되고 안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그런대로 잘 놀지만, 어른의 도움이 따로 없이 여러 아이들이 어울려서 노는 그런 구조화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좀 더 어려워할 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래서 당분간 열댓 명이 모이는 생일파티는 가지 웬만하면 가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하필 생일 파티 초대를 또 받고 말았던 것이다. 친구의 선물을 주문하고 선물을 포장하고 축하 편지를 쓰도록 도와주면서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이번에 또 가서 무슨 사단이라도 나면 어떡할지, 애도 애지만 주변 엄마들의 시선을 또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두려웠다. 엄마들도 다들 좋은 분들이라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분위기지만 내 옹졸한 피해의식 때문인지 아이의 돌발행동으로부터 영 자유롭지 못하고 부끄럽고 시쳇말로 쪽팔리기까지 하다.


새봄 이의 생일파티 전 날까지도 퍽퍽한 고구마를 천 개 먹은 것 마냥 속이 답답했고 얼른 그 행사를 치러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사실 파티를 주최한 엄마가 가장 바쁘고 신경 쓸게 많을 터인데 내가 더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던 날, 파티장소인 키즈카페로 향했다. 이번이 엄마가 주최해 주는 초등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파티인지 굉장히 많은 친구들을 초대해서 거의 한 반 인원이 모인 듯했다. 아이는 처음에는 신나게 합류해서 정신없이 뛰어놀았다. 약간 긴장의 끈을 놓았다. 10분 정도 흐르니 아니나 다를까, 조금 시무룩해진 얼굴로 와서 친구들이 나랑 안 놀아준다고 하소연한다.


오기 전에 수십 번 아이에게 말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놀기 어렵고 힘들면 그냥 집에 올 거니까 언제든지 말하라고, 중간에 나와도 된다고. 저번 파티 때처럼 그렇게 힘들 것 같으면 떼쓰지 말고 바로 나오자고. 여러 번 당부했다. 무슨 다른 일 있다고 핑계라도 대서 얼굴만 비추고 잠깐 있다가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꽤 무거운 마음과 비장한 각오로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그저 신나 했지만.


파티에 아이들이 15명 넘게 있다 보니 그중에 한 두 명은 소극적이고 평소에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 엄마들도 아이의 사회성에 대해 걱정하고 좀 적극적으로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나도 격하게 동조했다. 나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장난꾸러기에 외향적이고 잘 노는 아이들도 매 순간 누군가와 어울리는 건 아니었다. 혼자 자동차를 타기도 하고 블록을 쌓기도 하다가 누군가 와서 같이 하자고 하면 자연스럽게 함께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아이는 혼자서 뭔가를 하는 것도 싫어하고 무조건 무리 안에 끼어서 놀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데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래도 미리 내가 당부한 게 있어서 그런지 저번 생일파티 때처럼 무작정 친구들이 안 놀아준다고 떼를 쓰거나 징징대지는 않았다.


친구들 노는데 옆에 가서 따라 하기도 하고 껴보려고 자기 딴에는 무진장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다른 엄마들은 애기 잘 노는 것 같은데 무슨 걱정이냐고 했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그 미묘한 차이가.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뭔가 아이는 그 안에서 겉돌고 있다. 아이는 친한 친구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말장난이나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노는 아이들 옆에 서있긴 하지만 그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노는 거지 내 아이랑 함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다.


학교에서도 매번 저러고 있을까. 노는 친구들 옆에 서서 한 번 끼어보려고 눈치 보며 겉돌고 있는 걸까.


그런 저런 우려와 걱정들을 뒤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생일파티에 비해선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가. 다들 잘 놀고 있는 파티에서 아무도 나랑 안 놀아준다고 드러누워서 울고 징징대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친구와 깊이 있는 상호작용은 아직 어려워하지만 차차 나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가장 놀라운 건 새봄이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엄마가 초대한 게 아니라 새봄 이가 직접 우리 아이를 초대하고 싶다고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딱히 같이 어울리는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새봄이 입장에서  내 아이에게 파티에 초대해도 될 정도의 호감이 있었다는 말이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란 말인가. 그 사실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생일파티 두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고, 울거나 싸우는 일 없이 끝이 났다.


사회성 키우기. 어렵고 험난한 길이지만 남들은 튼튼한 두 발로 걸었다가 뛰었다가 하면서 우아한 학처럼 나아가는데, 우리는 한 쪽발에 깁스를 한채 목발을 하고 뒤쳐진 속도로 뒤뚱뒤뚱 뒤쫓아가는 기분이다.


아무렴 어떠리. 깁스를 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의지해서 걸어갈 수 있는 목발이 있다는 것, 그리고 두 다리가 있다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부러움의 대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주어진 조건하에서 뚜벅뚜벅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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