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나 타는 포르셰를 산 남편

결혼생활 이야기

by 레이첼쌤


몇 달전쯤이었을까. 남편은 유독 나에게 차 이야기만 해댔다.


원래 차에 관심이 워낙 많은 양반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정말로 차를 바꾸고 싶은 욕망에 평소의 드림카들을 물색하고 공부하면서 알게 된 정보들을 나에게 끝없이 방출해대는 것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차에 관한 한 브랜드 로고 말고는 별로 아는 바가 없는 2종 보통 면허증 소지자인 나는 기본적으로 차를 몰고 다니는 것 말고는 사실 보닛 여는 방법조차 모른다. 차에 딸린 여러 가지 옵션이나 기능들에 관심도 없고 활용할 줄도 모른다. 지금 타고 다니는 작은 크기의 세단이 주차하기도 편하고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남편은 원래 타던 차가 6년이 넘어가니, 감가상각을 운운하면서 중고차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고 새 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지금 남편 차도 내가 보기엔 2년은 거뜬히 더 타고 다녀도 될 정도로 상태도 좋고 깨끗해 보였다. 중고차 가격이야 어차피 팔 때는 샀던 가격의 절반도 못 받는 건 당연한 건데 그 돈 더 받자고 새 차를 산다는 건 더 큰 지출을 부른다고 생각했다. 부동산 같은 자산도 아닌 차에 그렇게 열심히 투자하는 것 또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동산 투자에 관해서 거의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소비재인 차를 구매하는 것보다는 바보가 아닌지라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자기가 관심 있어 하는 차종을 브랜드별로 연구했는지 한창 빠져있는 것 같더니 급기야 어느 날은 포르셰 매장에 잠깐 가서 구경 좀 하고 와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면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포르셰라니? 외제차 중에서도 가장 비싼 축에 포함되는 고급차인 포르셰 매장에 가겠다고 하니 당황했다. 아니, 지금 꼭 차를 바꿔야 할 때도 아닌데 굳이 무리해야겠냐고 뭐라고 하니, 그냥 매장 가서 구경하는 것도 못하냐며, 구경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받아쳤다. 그리고 행여 계약을 한다고 해도 계약금은 백만 원만 걸면 되고 언제든지 취소 가능하며, 어차피 포르셰가 지금 인기가 너무 많아서 실제로 차가 나오는 데는 1년에서 길게는 2년까지 걸릴 수도 있다며 나중에 바꿀 거면 미리 해두는 게 낫지 않겠냐며 미리 준비했는지 나름의 논리를 펼쳤다.


못 말리겠다 싶어서 일단 다녀오라고 했더니, 세상 행복한 표정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갔다. 함께 가보자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사람이 분수라는 게 정해져 있다고 보는 마인드는 아니지만, 아직 우리 분수에 포르셰는 좀 과한 브랜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경의 영향이 정말 큰 것이, 남편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이 하나둘씩 더 좋은 차로 업그레이드를 해나가는 분위기라 자기도 그 분위기에 편승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지인들이 30대에는 다들 각기 좋아하는 브랜드의 외제차에 입문하는 분위기였다면, 이제 40대에 접어드니 외제차라는 카테고리 내에서도 상위 레벨이라 불릴 패밀리카로 타기 좋은 더 크고, 값비싼 차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결국 잠깐 구경만 하고 오겠다는 남편은 내가 따져 물으니 계약을 하긴 했다고 실토했지만 워낙 인기 많은 모델이라 언제 받을지 모르고 반도체 대란 때문에 최소 1년 후에는 나올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일단 1년은 벌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가서 다시 고려해보기로 하고 지나갔다. 무슨 일이든 운이 별로 좋지 않은 편이라며 자조하는 남편인데 쓸데없이 이런 운은 어찌나 좋은지 남편이 계약한 차만 유독 출고가 빨라져서 당초 예상한 것보다 6개월 이상 당겨진다는 소식을 딜러는 알려왔다. 나는 설마 했다. 다른 포르셰 계약한 사람들도 다들 차가 늦게 나와서 못 받아 안달이라고 들었는데 우리 차만 유독 이렇게 빨리 나올 리가 있나 싶었다.


급기야 이번 달 안에 차가 나온다며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말하는 남편이 한심스럽고 못마땅했다.

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야말로 나는 시큰둥했다.


"그 차를 지금 꼭 사야겠어? 할부까지 껴야 하니 부담되고, 사람이 언제 목돈이 필요한 순간이 생길지 모르잖아."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못 들은 체 했다. 도대체 어떤 차이기에 이렇게까지 갖고 싶어 하나 싶어서 한 번 포털에 검색해보았다. 기본적인 차량 정보 이외에 가장 먼저 기사 제목이 하나 눈에 띄었다.



멍청이나 타는 포르셰..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22/10/918705/?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


기사 제목이 워낙 자극적이긴 했지만, 내용인즉슨 포르셰에서 출시한 SUV 카이엔과 마칸이 출시 초반에는 혹평을 받았으나 결국 인기가 많아지면서 포르셰 그룹 전체를 위기에서 구하고 먹여 살릴 효자 모델이 되었다는 게 포인트였다.


포르셰를 탄다고 해서 다 멍청이는 아니지만, 자기의 능력을 벗어나는 무리한 지출을 감행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바보 같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당장 남편이 이 차를 산다고 해서 우리 집 가정 경제가 망해서 길거리에 나앉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속으로 차라리 그 돈이면 과감하게 일을 1년 정도 쉬고 항상 바빠서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 아이와 함께 하면서 여유롭게 여행 다니고 퀄리티 타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로 쓰는 게 백배 더 나을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남편은 그럼 그렇게 한참 쉬고 다시 현직에 복귀하면 상황이 그대로 유지될 것 같냐며, 자기 일이 그렇게 쉽게 손에 놓았다 떼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는 여자로 치부했다.


결국 차량 출시일은 다가왔고, 신나게 차량 출고 후에 받을 고급 선팅 업체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새 차가 나오던 날, 사진과 동영상까지 찍어서 나에게 미리 보라고 보내줬지만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내 눈에 별로 멋져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혈안이 된 고철로 만든 허세 덩어리 같았다.


차를 직접 봤을 때에도 나는 시종일관 시큰둥했다. 이런저런 옵션과 기능에 대해 나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하면서 엄청 감동받을 표정을 지을 내 모습을 기대한 것 같았지만, 나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돈덩어리를 결국 사지르니까 좋냐? 고 속으로 생각했다. 말은 못 했지만.


그렇게 원하고 바라던 드림카를 사놓고는 남편은 이상한 행동을 했다. 차를 두고 출퇴근을 하는 것이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겨울 날씨에 유독 춥고 바람 부는 날씨임에도 차를 주차장에 모셔두고 며칠째 출퇴근을 했다. 출퇴근길에 주차장에 들러서 차가 잘 있는지 확인만 하고 오는 식이었다.


하루 이틀은 그런가 보다 했는데 며칠이 지나가자, 나는 한마디 했다. 이렇게 차를 운전도 안 하고 추운 날씨에 주차장에 모셔두고 다닐 거면 차를 왜 샀냐고 물었다. 남편은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이건 뭐 옛날 자린고비 부자가 천정에 굴비를 매달아 두고 보면서 밥 먹는 격이 아닌가.


그날 아침에도 두껍게 패딩을 껴입고는 또 차를 둔 채 출근길에 나서길래 나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이 나와버렸다.

"진짜, 자기 좀 또라이 같은 거 알아? 그럴 거면 저 비싼 차를 왜 산거야?"


남편에게 이렇게 심한 비속어를 사용해본 적은 거의 없는데, 나도 모르게 또라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출근해서 일하면서 틈틈이 자동차 설명서를 정독 중인데 다 읽고, 기능을 습득한 후에 천천히 운전을 시작할 거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그동안의 꽁꽁 얼었던 마음이 눈 녹듯이 녹는 것 같았다.


이 사람에게 이 차는 정말 드림카였구나. 평생에 이루고 싶었던 꿈 말이다.

남자들은 여자들과 달리 자기가 타는 차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 여자들은 보통 입는 옷과 가방, 액세서리로 자기의 정체성을 표현하지만 남자들은 차가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도구라고 책에서 본 기억이 났다.




테스토스테론은 신경생물학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신경호르몬이다.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전체 교도소 수감자의 95퍼센트가 남성이고,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95퍼센트도 남성이다. 세계를 뒤흔든 거의 모든 전쟁도 남성이 일으켰으며, 포르셰 구매자의 90퍼센트도 남성이다.

이 모든 현상은 바로 테스토스테론에서 비롯된다. 포르셰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다른 경쟁 상품과 큰 차이를 보인다. 디자인, 엔진, 주행 특징, 소음 등 여러 감각을 통해 느끼는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는데 이는 모든 지각 통로를 통해서 지배 욕구를 연출한다.

남성들에게 자동차는 매우 중요하다. 자동차는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지위와 권력을 과시하는 행태와 낭비벽에 심한 혐오감을 표출한다. 실행가와 쾌락주의자들에게 포르셰란 지금까지 가슴에 품어온 동경의 실현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조화론자들에게 있어 이 차는 어리석음의 극치에 불과하다.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한스 게오르크 호이젤 저>


몇 년 전에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라는 뇌과학 분야 책을 읽었는데 한없이 재미없고 지루하고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해 가지 않는 부분도 많았는데, 이 부분은 기억에 남았다. 테스토스테론이라는 신경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남자들에게 있어 포르셰란 지금까지 가슴에 품어온 동경의 실현을 의미한다고 한다. 남편은 테스토스테론로 가득 찬 지배 욕구가 넘치는 실행가 유형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어렵사리 드디어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갓 태어난 아기 다루듯이 하나하나 소중하게 다루는 모습, 이제 주차 시설이 완벽하게 구비된 곳이 아닌 장소는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남편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어렵게 와 준 이 차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지 그냥 칭찬하고 찬양해주기로 했다. 휴가도, 따로 자기 시간도 거의 갖지 못하고 이토록 성실히 일하는 이유가 가족의 생계 문제도 있지만 자기의 꿈과 로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그 꿈과 로망을 실현하는 데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장기적으로 우리 가정의 자산 측면에서 봤을 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나도 아주 가끔씩 가방 가격 하나로 해외여행을 거뜬히 다녀올만한 돈을 쓸 때도 있지 않은가.

드림카를 소유하고 운전하는 게 그의 생에 엄청난 의미가 되고, 그로 인해 매일 출퇴근길이 설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들게 한다면 뭐,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닌 것 같다. 친구의 남편은 주식 투자하다가 말 그대로 몇 억 원을 잃었다고 하는데, 친구는 직접 손에 만져보지도 못한 너무 큰 금액이라 와닿지가 않아서 그걸로 남편과 싸울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친구가 뭐라 하기도 전에 이미 주식 투자 실패로 남편 스스로 엄청난 스트레스와 좌절감에 빠져 있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집 남편도 사실 돈을 더 벌어서 더 잘 살아보려고, 가족에게 더 윤택한 환경을 제공해주려는 선한 의지로 한 게 아닐까. 결과가 안 좋았지만.


그에 비하면 차는 남는 것이라도 있으니 훨씬 나은 건가 싶기도 하고.

어차피 벌어진 일, 무한 긍정의 자세로 받아들이는 게 나을 것 같다. 값비싼 차니 혹여 사고가 나더라도 이름값만큼 우리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약속해주리라 기대하며 받아들이는 게 내 정신건강에 나은 선택이라고 마음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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