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발달장애와 엄마의 우울증

발달장애와 우울증의 필연적 관계

by 레이첼쌤

이번 주 사회성 그룹 수업에서 아이만 혼자 따로 선생님과 이야기하느라 다른 친구들보다 한참 늦게 끝이 났다.

수업하다가 감정 조절이 안돼서 크게 울거나 달래기 힘든 상황이 되면 치료사 두 분 중 한 분 선생님께서 따로 아이를 데리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날은 우리 아이가 당첨된 날인가 보다 했다. 아니나 다를까 원래 수업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나온 아이는 눈이 빨개져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바로 다음 수업이 있어서 이따 따로 전화로 이야기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미 선생님과 한 번 감정의 쓰나미를 겪었을 아이를 달래느라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괜찮은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고, 아이는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고 선생님이 본인 순서를 맨 꼴찌로 자꾸 시켜서 화가 났다고 같은 이야기만 반복했다. 자신을 혼낸 선생님이 너무 싫다고 자기 잘못은 1퍼센트도 안된다고 계속 울먹이면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 집에 와서 좋아하는 과자와 저녁 식사 메뉴로 조금 달래고 있으니 센터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수업 시간 내내 아이는 놀이과정에서 첫 번째나 두 번째 순서로 유리하게 하다가 마지막에 세 번째, 즉 꼴찌 순서로 한 번 하게 되었는데 그게 싫다고 짜증 내고 투정을 부렸다고 했다. 웬만하면 모른 체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투정이 길어져서 선생님께서 한 번쯤은 친구들을 배려하고 양보해줘도 된다고 설명했더니 그때부터 더 서러워하면서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울었다고, 아이의 행동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안 봐도 뻔할 만큼 눈에 선하게 그 상황이 그려졌다. 나도 아이에게서 자주 발견하는 행동양상이기에 익숙했다.


아이는 억울해하지 않아도 될만한 작고 사소한 일을 말 그대로 침소봉대해서 굉장히 억울해하면서 울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짜증이 한 번 시작되면 그래도 상황을 종료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무척 지치고 에너지 소진이 크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애초에 싹을 자르는데 신경 쓰고 있다.


선생님께서 "너도 첫 번째로 한 적 많았으니 한 번쯤은 양보해도 되는 거야."라고 합리적으로 설명해주었더니 아이는 "저는 머리가 나빠서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라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머리가 나쁘다는 말인즉슨, 아이도 인지적으로는 다른 친구들에게 한 번씩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는 있지만 그게 행동으로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뜻인 것 같다. 막상 상황이 끝난 후에, 기분이 좋을 때 이런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아이도 양보하고 배려하고 순서는 돌아가면서 해야 서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 쯤은 인지하고 있다.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사실이 막상 그 상황에 들어가면 "무조건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우세하게 아이를 지배해버리는 것이다.


선생님과 대화를 마무리할 즈음에 마지막에 아이가 선생님께 부탁을 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한테는 저 잘못해서 혼난 거 이야기하지 말아 주세요. 엄마가 알면 많이 속상해하실까 봐요. 꼭 약속해 주세요." 이 말에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그래도 성장했다는 느낌도 들었다고 혹시 혼내지는 말아 달라고 하신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찡했다. 아이가 자기 얘기를 듣고 속상해할 엄마 마음도 생각해주었다는 게, 그 정도로 머리속에서 사고가 뻗쳐나갔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저번에도 말씀하신 것처럼 심리상담을 한 번 더 받아보기를 권하셨고, 센터 심리 선생님께도 아이의 이런 행동 양상에 대해 논의하고 자문을 구해보신다고 하셨다. 참 고맙다. 아직 젊고 어린데도 본인이 맡은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정말 크신 분이다.


사실 예전 같으면 센터에서 이렇게 부정적 피드백을 받는 날에는(거의 수업 가는 날마다 받긴 했지만) 말도 못 하게 우울함을 느꼈다. 퇴근한 남편에게도 내 불쾌한 기분을 팍팍 티 내면서 오늘 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토씨하나 빠트리지 않고 전달했다. 설거지를 하면서, 샤워하면서 머릿속에는 이것 한 가지만 계속 떠올다.


"왜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안되는 거야. 나는 남들보다 두 배, 열 배 아이를 위해서 희생하고 노력하는데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건지. 왜. 도대체 왜.."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감정 때문에 힘들었는데, 올해에는 나 스스로 우울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책도 더 읽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글쓰기도 하다 보니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의무적으로 멘탈 관리를 해야만 한다. 수시로 멘탈이 무너지는 경험을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더욱 정신을 붙들고 우울증으로부터 나를 지켜내야만 한다.


그날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었어도 한층 더 나아진 내 멘탈 덕분인지 밤에 잠도 잘 자고, 예전만큼 크게 우울하지는 않았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태권도장이 끝나고 놀이터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또 사달이 났다. 잡기놀이가 자연스럽게 눈싸움 놀이로 변질돼서 아이들은 눈을 뭉쳐서 서로 던지고 놀기 시작했는데, 한 친구가 우리 아이에게 작은 눈덩이를 던졌다. 그것 때문에 아이가 미끄러질뻔해서 꽤 놀란 것 같았다.


그때부터 아이는 대성통곡하고 울면서 "쟤가 나한테 눈덩이 던져서 미끄러질 뻔했다"며 저 친구 혼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같이 놀면서 자연스럽게 한 행동이고 다른 아이들도 눈덩이를 던지면서 서로 웃고 노는 분위기였기에 그 아이의 잘못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다른 친구들은 서로 눈덩이를 던지면서 피하다고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일쑤였는데, 다들 그 모습에 웃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 친구의 행동으로 인해 넘어진 것도 아니고, 눈덩이를 정면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단지 넘어질 뻔해서 놀랐다는 것인데 그걸로 울고 불고 하며 감정이 격앙된 것이다.


결국 그 친구에게 가서 자기한테 사과하라면서 대뜸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무안해하면서 "그냥 놀려고 그런 거야"라고 항변했다.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집으로 가자고 아이를 설득했다. 다른 엄마들도 있고 보는 눈도 많으니 아이의 감정이 폭발되는 모습을 계속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끝까지 그 친구에게 사과를 받아야겠다며 화를 내고 울고 떼를 쓰는 바람에 억지로 질질 끌어오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집에 오는 그 짧은 길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집에 와서도 한참을 짜증을 부리는 아이를 보면서 나의 멘탈이 점점 무너짐을 느꼈다.


"안되는구나.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건 안되는구나. 포기해야만 하는구나."


또다시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안 될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노력하는 내가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센터수업에서 한 번은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이틀 연속 거의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니 화가 났고 처참히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이 모든 상황이 버겁다고 느껴져서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이를 그냥 모른 체하고 회피하고 싶었다. 평일 육아는 전처럼 이모님께 맡기고 차라리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 하루 중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함께하면서 봐야 할 꼴을 좀 덜 봐도 되니까 더 낫지 않을까.


이래서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필연적으로 우울증 약을 먹게 되나 보다. 느린 맘 카페에 가보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아이 약을 처방받으러 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약도 처방받게 되었다는 사례들을 자주 본다. 나도 예외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만이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절대 우울증 약은 먹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고, 내 정신 건강을 위해 감사일기, 달리기 등을 실천하면서 우울하지 않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해 왔다.


센터에 같이 보내는 한 엄마는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몇 시간씩 뒤척이다가 겨우 잠에 든다고 한다. 아이 걱정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쉬이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를 진료하는 정신과 의사는 보통 두 가지를 확인한다고 한다. 수면과 식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말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있으면 일상을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결국 다른 엄마들처럼 우울증 약을 복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폐아를 키우던 30대 초반의 엄마가 동반 자살을 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댓글에는 아무리 제자식이어도 존엄한 한 명의 생명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냐고 비난의 글도 있었지만, 나는 감히 비난할 수 없었다. 제대로된 소통이 되지 않는 어린 자식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의 고통을 겪었을지 아직 젊은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물론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는게 옳은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그걸 감당해내지 못해버린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내 감정과 정신을 컨트롤하고 다잡을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무척 노력했는데 연이틀간은 나에게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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