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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ug 08. 2023

급성두드러기를 유발하는 초딩 방학

아이 돌보다가 병난 사연

애가 9살 정도 되면 육아가 쉬워질 줄 알았다. 기저귀가방을 늘 들고 다니고 밤중 수유를 하며 말 안 통하는 애를 하루종일 돌볼 때는 학교에 들어가고 말귀도 알아듣고 스스로 등하교를 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거짓말처럼 모든 게 쉬워질 줄 알고, 아이가 어서 자라기만을 바랬다.


나의 경우 육아의 강도가 가장 높다고 여겨지는 시기는 어린이집, 유치원 또는 학교에 학원까지 전면 방학에 들어가게 되어서 아이와 강제로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만 하는 기간이다. 남편은 따로 휴가라걸 낼 수도 없기에 이 육아 황금 시기에 일말의 도움을 바란다는 건 언감생심이고 어떻게든 이 일주일간의 시간을 잘 때워볼 계획을 세우게 된다.


몇 주전부터 뭘 할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친정에 데리고 가서 며칠 보내다 오기도 했는데 이제는 친정집에 가도 남의 집이라 그런지 잠자리가 불편하고 어색해서 내키지 않는다. 친정엄마가 챙겨주는 밥 먹고 쉬는 건 좋지만 손주를 적극적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놀아주시는 스타일도 아니고 결국 아이 돌보는 건 내 몫이다.


뭘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과학관 물놀이 프로그램을 예약하고 새로 생겼다는 직업체험 기관도 예약을 해뒀다. 어찌 됐든 하루종일 집에 붙어있는 것보다는 데리고 어디든 돌아다녀야 시간이 빨리 간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을 비웃듯 아이는 방학 시작과 동시에 독감 확진을 받았고 오롯이 집에 격리되어 있어야만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 하루 종일 집에 둘이만 있어도 전처럼 그렇게 힘들진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더운 여름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니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실컷 쉬는 것도 행운일지도 모른다. 삼시 세끼 밥과 약을 챙겨 먹이고, 열이 내리지 않아 병원에 데리고 거서 수액을 맞히고, 같이 보드게임을 하고 책을 읽어주면서 오롯이 단 둘이 며칠을 집에서 그렇게 보냈다.


이 땡볕에 밖에서 고생하며 일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쯤은 고생도 아니라고 여기자고 스스로에게 주입시켰다. 애 좀 보는 거 가지고 유세 떨지 말자고, 힘들다고 징징대는 어른답지 못한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스스로도 꼴 보기 싫으니 그만하기로 했다. 남편에게도 최대한 힘든 내색 하지 않고 묵묵히 아이의 컨디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며칠을 견뎌냈다.


아이와의 시간을 견딘다는 말이 조금 부정적이긴 하지만 나는 본디 아이의 비위를 맞추며 노는 것이 즐겁지는 않은 사람이다. 이건 내 자식을 낳고 육아를 하면서 더 절실히 깨닫게 된 건데 나는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집중하며 재밌지도 않은 유치한 보드게임을 맞장구치며 해주는 일보다 혼자 책을 읽거나 미드를 보며 커피를 마시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 더군다나 아이와 둘만 있으면서 내가 더 괴로운 건 아이의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중독을 막고자 최대한 스마트폰을 멀리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내가 잠깐이라도 스마트폰을 열고 보고 있으면 쏜살같이 달려와 뭘 하는지 확인하고 자기도 만지려고 한다. 안 그래도 게임과 미디어 영상에 취약한 아이인데 나마저 스마트폰을 달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 앞에서는 최대한 멀리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랑 둘이 하루종일 집에 있노라면 시건이 참 안 간다. 너무 더워서 열사병 걸릴 것 같은 날씨에 집 앞 산책을 나갈 수도 없고 독감까지 걸린 상태라 외출은 더더욱 내키지 않았다.


흐르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은 결국 흘러갔고 아이는 점차 회복되고 원래 컨디션을 찾았다. 다행이었다. 그날도 점심밥을 챙겨주고 나도 대충 옆에서 끼니를 때운 후였다. 갑자기 양쪽 겨드랑이가 간지러웠다. 모기에 물린 건가 싶어서 벌게지도록 북북 긁었다.


긁다 보니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겨드랑이 쪽에 울퉁불퉁 뭔가 올라온 거 같아서 거울로 봤더니 모기 물린듯한 자국들이 덕지덕지 생겨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집에 모기는 없었지만, 날도 덥고 땀띠처럼 올라오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10분, 20분 지날수록 급속도로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두드러기가 내 몸에 올라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온몸이 가려웠다. 가려움이 뭐 얼마나 큰 통증이라고, 나는야 출산의 고통도 겪어낸 아줌마인데 이 정도쯤은 참아내 보자 싶었다. 그러나 독한 마음도 잠시, 엄청난 가려움과 쓰라린 느낌이 동시에 온몸에서 창궐하면서 상처 나고 피날걸 알면서도 긁어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를 데리고 당장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어중간한 크기의 동네 중형급 병원이라 피부과가 없어서 대충 내과에서 진료를 봤다.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심각하지 않다는 식으로 주사 한 방 맞고 약 처방만 내주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주사를 맞고 나니 한 시간 만에 두드러기가 점차 사라졌다. 만세를 불렀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여 만세. 이렇게 간단한 처치만으로 두드러기가 금세 들어가는구나. 살았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 저녁상을 챙주며 두드러기 해프닝을 반찬거리 삼아 이야기했다. 역시 주사 맞고 약 먹으니 직빵이야. 귀찮아도 병원에 가보길 잘했어. 가벼운 두드러기였나 봐.


음식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지만 금세 들어간 두드러기에 걱정이 느슨해져서인지 평소 먹던 대로 저녁을 먹고 과일에 과자까지 양껏 먹고 잠이 들었다.


새벽 세 시경 몸에서 간지러움이 느껴져 잠을 깼다. 아랫배와 뒷목이 너무 간지러워서 다시 긁어댔다. 느낌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불을 켜고 거울을 봤다. 깜짝 놀랐다. 어제 낮보다 더 심한 두드러기들이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잔뜩 심통 난 상태로 올라와 있었다.


너무 간지럽고 쓰라린 느낌이 들어서 잠을 청하려 해도 잘 수가 없었다. 그 시간에 두드러기로 응급실 가기도 그렇고 아침에 병원문 여는 시간까지는 견뎌보자 싶어서 스마트폰을 보며 책을 보며 견뎌보려 했지만 너무 괴로웠다. 그 사이 두드러기는 급속도로 온몸으로 퍼지고 있었다. 아침에 남편이 일어날 즈음에는 내 몸이지만 징그러워서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고 급기야는 얼굴에까지 퍼졌다.


응급실에 갈까 고민 끝에 그냥 9시까지 참아보기로 하고 남편이 챙겨준 약을 일단 먹었다. 거짓말처럼 약을 먹으니 일단 간지러움의 고통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당장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싶었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미안하지만 동네 친한 엄마네에 아이를 몇 시간 봐달라 어렵사리 부탁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를 보고 바로 수액을 맞게 되었다. 무슨 알레르기 검사라는 피검사도 했다. 어제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보다 남편이 챙겨준 약이 더 내 몸에 잘 들었다. 병원에 한 시간 누워 수액을 맞고 본죽에 들러 죽 하나 포장해 와서 먹고 나니 신기하게 몸이 다시 말끔해져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벌겋고 징그럽게 퍼져가던 허망할 만큼 두드러기들이 거의 다 사라져 있다. 일단 좋아지긴 했지만 두드러기는 또 올라올 가능성도 높기에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하루 이틀 지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왜 갑자기 내 몸에 두드러기가 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먹은 음식에서 탈이 난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러기엔 나는 외식을 한 것도 아니고 별달리 특별하다 싶은 음식을 먹은 게 없는 상태였다.


면역력이 떨어졌나? 어딘가 아프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 원인 중 하나. 면역력. 맞다 바로 그거다!


근데 면역력이 왜 떨어졌지? 아. 애가 방학이라서 내가 힘들었나 보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애 하나 보는 거 별로 힘들지 않다고, 내가 뭐 대단한 스케줄을 짜서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놀아주고 챙겨주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힘들겠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침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아이를 먹이고 챙기고 놀아주고 티브이 그만 보라고 잔소리하며 틈틈이 집안일까지 살피는 일은 결코 편하지 않다.


이럴 거면 차라리 어디라도 나가 돈을 벌지 싶다. 이런 마음은 애가 신생아거나 말 안 통하는 유아기 때나 드는 건 줄 알았는데 십 년 가까운 세월을 키웠는데도 여전히 하루종일 24시간을 살을 맞대고 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제 자식이지만 계속 붙어있는 게 영 체질에 안 맞는 나는 정말 본투비엄마는 아님을 다시 한번 인정하게 된다. 그나마 학원 방학기간은 끝나고 하루에 한두 시간 학원으로 도피시키니 좀 숨 쉴 구멍이 생겼다.


내 온몸이 두드러기로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 기억에 마지막 두드러기는 거의 이십 년 전이었는데 오랜만에 겪긴 했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병이다. 애 하나 키우면서 정말 유세 떨고 싶지 않은데, 누군가 알아주진 않아도 나 스스로에게는 좀 알아줘야겠다.


초등 아이 방학을 맞아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을 감내하는 엄마들은 모두 위대하다. 나도 위대하고 그대들도 위대하다. 그러니 더운 여름에 모든 엄마들은 잘 챙겨 먹고 각자 몸 잘 살펴서 아픈데 없이 탈 나지 않고 끝까지 견뎌내야 한다. 두드러기 없이 다들 즐거운 방학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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