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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ug 21. 2023

마음 읽어주기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단호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가 육아계에서 신성시되는 진리가 된 것은.


아이 하나 잘 키워보자고 나는 수십 권, 수 백 권의 육아서와 자녀교육서를 읽어댔고 읽을 때마다 새로 깨닫고 배우고 자책하며 내일은 꼭 오늘보다 나은 엄마가 되리라 다짐했다. 매일 아침 다이어리에 오늘은 아이에게 결단코 짜증을 내지 않으리, 부드러운 말투만 사용하리라, 친절한 엄마가 꼭 되고 말리라 다짐하며 글로 쓰고 실천에 옮기고자 했다.


나는 육아서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애들 키우는 엄마들과는 차원이 달라, 나는 매일 더 노력해서 정말 완벽한 엄마가 될 거야, 아이를 인간적으로 대하며 존중하는 엄마가 될 거고, 그렇게 하면 내 아이가 겪는 발달장애 증상도 다 좋아져서 곧 추억이 될 거야, 내가 친정엄마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절대로 대물림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친절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매일 나 자신을 질책하고 반성했다. 이렇게 아이를 위해 노력하다 보면 인간적으로도 더 성장해서 결국 성숙한 인간이 되어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작년엔 "좋은 엄마 되기 프로젝트"라는 나 혼자만의 프로젝트도 세워서 매일 내가 화를 몇 번 냈는지, 예쁜 말 쓰기는 몇 번이나 했는지 나 자신에게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내일은 백 점 받도록 노력해야지, 오늘은 나도 모르게 화를 내버렸구나, 반성 또 반성하면서.


그렇게 n년째 노력의 노력을 거듭한 나를 정작 내 자식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아이가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은 이렇다.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잔소리하는 세상은 지옥 같아요."

"엄마는 맨날 화만 내고 나를 혼내요."


...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너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데. 이보다 더 노력하라고? 이보다 더 친절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어주길 바라는 거야?


친절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는 데에 꼭 실천해야 할 필요조건 중 하나는 바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내가 읽은 거의 모든 육아서에는 아이가 화내고 짜증을 부리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 지금 어떠한지 파악이 잘 안돼서 그러는 경우가 많으므로 엄마가 지금 아이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말로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아이가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나 언어 발달이 느려서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겪는 내 아이에게는 더더욱 필요한 처방조치처럼 느껴졌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나는 아이의 감정 조절을 위한 마음 읽어주기는 필수 과제였다.


웬만하면 언성을 높이지 않고, 짜증 내지 않으며 좋게 타이르고 넘어가자는 게 어느덧 내 육아 신조가 되어 있었다. 9살 먹은 아이를 유아기 아이 대하듯 하는 것도 내 나쁜 습관 중 하나였다. 외동이기에 더 심했던 것 같다. 아이를 늘 안아주고 보듬어주며 아기 대하듯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하면 사회성 저하로 곤두박질친 아이의 자존감이 조금이나마 올라갈 줄 알았다.


그러나 학교와 학원 다녀오는 시간만 빼면 나와 한 몸처럼 24시간 내내 붙어있는 아이와 늘 사이좋게 지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숙제였다. 결코 마음먹은 대로 해치울 수 없는 그런 숙제.


아무 생각 없이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건 1학년 초반에 잠깐 뿐이었다. 초1이 되자 피아노도 보내보고 태권도도 보내고 남들 시킨다는 학습지도 시켜보았다. 처음에는 아이도 별생각 없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 등교 거부도 없었다. 유치원 때 워낙 초등학교에 가면 잘해야 한다는 교육을 많이 받아서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나름대로 소화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본격적으로.


태권도도 가기 싫다, 중간에 갑자기 하고 싶다고 해서 힘들게 선생님께 부탁하고 중간에 신청해서 들어간 방과 후도 가기 싫다, 학습지도 하기 싫다에서 시작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학원뿐만 아니라 학교도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초2 새 학기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아이는 여름방학이 며칠 남았는지 달력으로 매일 체크했다. 어서 여름방학이 와서 학교에 안 나가고 싶다는 거였다. 1학년과 달리 담임선생님도 너무 무섭고 친구들도 다 싫다고 했다.


그런 아이가 나는 그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발달이 느려 또래 수준보다 부족한 사회성과 화용 언어 능력 때문에 아이가 학교에서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졌다. 내 하나뿐인 아이, 학교에서 얼마나 혼자 쓸쓸하고 외로울지 생각만 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짠하고 또 짠했다.


유치원 때는 단 한 번도 원에서 있었던 일을 나에게 제대로 전달해 준 적이 없는데, 가장 처음 유치원에 대해서 한 말은 이거였다. "나는 유치원에서 외톨이예요. 가고 싶지 않아요." 유치원 생활이 너무나 궁금해도 아이는 별 대답이 없었고 언어 수준이 떨어져서인지 단순한 답변뿐이었는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표현한 건 그 말이 처음이었다.


약물과 치료 덕분에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또래에 비해 서투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아이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하교하면 최대한 비위를 맞춰주고 기분 좋게 유지해 주려고 노력했다.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 집에서만이라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등교시켜 놓고 열심히 읽은 육아서에서 배운 개념들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그중 하나가 마음 읽기였다.


그런데 이 마음 읽기가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고 우는 아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학교 생활 적응이 워낙 어려워서 가기 싫은 마음이 드는 건데 혼낼 수도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고자 했다.


"학교에 가기 싫구나. 학교에서 많이 힘들지?"

"쉬는 시간에 많이 외로웠나 보네."

"엄마도 어릴 때 학교 가기 싫은 적 많았어."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학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일단 안아주고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방학이 드디어 시작되었고 이제 한동안은 등교 거부로 징징대는 소리는 안 들을 수 있어서 편하겠다며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제 학교 대신 하루에 고작 두 개 정도 가는 학원도 가기 싫다며 징징대는 게 아닌가. 학원 가기 싫다는 이유로 든 것도 거의 다 핑계처럼 들렸다. 두 시간 이상 꼼짝없이 앉아서 공부해야만 하는 영어, 수학 학원도 아니고 다니는 거라곤 피아노 학원이나 수영 같은 예체능뿐이다. 그런데도 자꾸 힘들고 가기 싫다면서 학원 갈 시간이 될 때마다 실랑이가 오갔다.


순간 깨달았다. 혹시 학교 가기 싫다는 것도 그냥 단순히 가기 싫어서 그런 건가? 그런 아이를 내가 너무 오냐오냐 받아준 건 아닌지.


공개수업이나 체육대회에 학교에 직접 가서 본 아이의 모습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부족한 점은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아이가 느려서, 짠하다는 이유로 무한정 아이의 떼와 짜증을 받아주는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되짚어보게 되었다. 계기가 된 책은 육아전문가 <조선미의 현실육아상담소>였다. 나는 또 하나의 그렇고 그런 육아서가 아닐까 했는데 생각보다 큰 반전이 있는 책이었다. 그간 육아계에서 주창되어 왔던 "마음 읽기"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듯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마음 읽기가 과하면 아이는 짜증이 많아지고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과도하게 마음을 읽어주면 속상한 감정이 더 커질 수 있다. 적당히 무심한 부모의 아이들이 실패도 좀 더 무심하게 견딘다.

마음 읽기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아이가 묻고 따질 때 세 번에 한 번 정도는 "엄마가 하라는 거니까 그냥 해야 해"라고 말하라. 아침 몇 시까지 가야 하고, 숙제는 꼭 해야 하고, 학교에서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 등은 이 나이에는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하는 것들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이치를 깨닫거나 논리를 따져서 하는 일보다는 무조건 기계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굉장히 많다.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야 하는 게 90퍼센트 이상입니다.

 <조선미의 현실육아상담소>



이 책은 나를 위해 쓰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아이에게서 느끼고 있는 문제와 직접 관련된 것들을 콕콕 짚어주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를 위해 노력한답시고 과도한 마음 읽기에 집착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이토록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아이는 늘 징징대고 일상에서 주어지는 모든 일들을  하기 싫다고 하는 걸까. ADHD라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일까. 이 놈의 ADHD는 언제 좋아질까. 하는 생각들로 늘 괴로웠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학교는 의무적으로 가야 해, 교육을 받아야 훌륭한 사람이 되니까,, 이외에 아이를 더 납득시킬만한 타당한 이유를 드는 게 어려웠다. 내가 생각이 폭이 좁아서, 아는 게 없어서 아이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것 같아 나의 능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미 선생님은 정확히 설명했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기계적으로 무조건 해야 만한 일들이 굉장히 많다. 양치 한번 할 때마다, 밥을 잘 먹을 때마다,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납득시키느라 애를 먹는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말이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체험학습을 써주고 며칠 쉬게 한 일, 아프다는 핑계로 학원을 몇 번 빼준 일들이 떠올랐다. 혹시 아이가 간 보는 건 아닐까? 왠지 최근에 엄살도 굉장히 심해졌는데, 아프면 뭔가 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간 내가 너무 물러터진 엄마였던 걸까.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해 준다는 미명하에 아이의 입장에서 모든 걸 바라보고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한 건 아닌가. 나 어렸을 적 엄마는 아프다고 해도 개근해야 하기에 결석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고 돈 내고 다니는 학원은 더 철저히 가야만 했다.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야 할 건 해야 해라는 식이었다. 차라리 그 방식이 더 나은 거 아니야?


육아서 수십 권 읽으면서 공부했다는 내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더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은 아니었을까.


물론 마음 읽기가 잘못된 방법은 아니다. 필요할 때는 적절히 사용해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게 도와줄 때는 필요한 육아 기술이다. 그렇지만 그건 하루에 많아야 한 두 번 정도이지, 일상의 모든 일 앞에서 마음 읽기를 하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이가 느리고 부족하다 보니 무조건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마음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더 단호하게 대하지 못하고 받아주기에 급급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아이를 불쌍하게만 여겨야 할까. 내가 24시간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홈스쿨링을 할 것도 아니고 집중케어받으며 편하게 다닐만한 소규모 대안학교를 보낼 여력도 되지 않으면 학교는 일단 보내야만 한다. 안타깝긴 하지만 학교에서 힘들어할 아이를 백날 걱정하고 마음 아파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문제가 해결될 일도 아니다. 아이는 언젠가 독립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


개학 전날이 되자 아이는 또 울고 징징대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전 같으면 나도 가슴 아프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같이 안고 울어주었을 텐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단호한 말투로 "그래도 학교에 가야 돼. 지각하면 안 되니까 그만 울고 얼른 자." 이 말만 하고 그냥 아이의 말을 받아주지 않고 못 들은 척해버렸다. 너 이제 학교 가니까 엄마는 쉴 수 있어서 너무 좋고 신난다고 되려 아이의 마음과 정반대 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제부터 등교시켜 놓고 아이 걱정에 마음 졸이며 전전긍긍하지도 않기로 했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아이가 더 잘 지내는 것도 아니고, 하교 후에 만났을 때 반갑게 맞이해 주면 되는 것이다. 마음 읽기는 이제 적당히 하고 좀 더 단호한 엄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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