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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Sep 21. 2023

육 남매 되는 게 꿈이라는 아들

현실은 외동

아이에게 발달상 문제가 있다는 걸 알기 전부터도 나는 둘째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하나만 낳아서 잘 살 자라는 게 나의 모토였다. 결혼도 하기 전인 미혼일 때에도 애가 둘이나 되면 내 커리어나 인생 전체적인 측면에서도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하나만 낳고 키우는 게 운명이 되려고 그랬는지, 내 자궁은 그리 건강하지 못했다. 임신 말기에 자궁환경이 좋지 않아서 태아가 성장을 거의 멈추다시피 했고, 예정일보다 조기출산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때 아이가 신체발달면에서는 정상이었지만 뇌발달이 덜 이루어진 게 아닐까 강한 의심이 든다. 그래서 발달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라는 게 내가 수년간 궁리하고 연구한 끝에 내린 의학적 근거는 없는, 어설프지만 나만의 결론이다. 


그래도 행여나 생기면 낳아서 키우지 뭐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가끔 산후검사에서 의사 선생님이 "혹시 둘째를 가지게 되더라도 또 비슷한 증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는 말이 떠올라서 불안해지긴 하지만. 


아이 치료에 매진하면서부터는 아예 둘째에 대해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아마 생겼다고 해도 아이로 인해 내가 받고 있던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무사하지 못했을 거라는 짐작이 든다. 오은영 박사님 왈 ADHD 아이 육아는 자식 열명을 키우는 것과 버금간다는 말을 매일 실감하며 내 인생에 둘째는 언감생심이었다. 


아이가 점점 자라고 주변에 대한 인지 능력도 나아지면서 한 번씩 동생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 친척이나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모두가 동생이나 형이 있다. 외동인 친구들도 몇 있긴 한데 외동인 집은 거의시댁, 친정 같은 가족 친척들과 가까이 모여 살거나 원래 이곳이 고향이라 육아의 여정을 함께할 사람들이 많았다. 자세히 보니 나만 외딴섬처럼 일가친척 없는 곳에 남편 직장 때문에 자리 잡아 혼자서 외동인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더군다나 아이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센터친구들이 모두 형제가 있으니, 아이는 자꾸만 나에게 궁금하며 물어보았다. 왜 나는 동생이 없냐고.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남동생도 좋다고. 엄마 낳아달라고 부탁이라고 했다. 


어려서 아이가 소통이 잘 안 될 때는 이 시국에 무슨 동생이냐 싶었는데, 그래도 좀 자라고 주변에 친구 동생들과 잘 노는 걸 보니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상호작용 능력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전두엽 발달이 느린 탓에 말 그대로 사회성이며 정신연령이 좀 두세 살 정도 어린 편이다. 그러다 보니 두 살 정도 어리고 순한 동생들과 잘 놀기도 하고, 의견 대립이 생기면 말싸움까지 했다. 또래와는 말다툼도 자신이 없어서 못하는 아이인데, 동생들 앞에서는 자신감이 생기는지 자기 생각을 강하게 주장했다. 


아무리 학교와 학원 스케줄로 놀 틈이 없는 초등학생이라지만, 집에서 한두 시간씩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때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나에게 놀아달라고 한다. 보드게임도 수십 개 구비해 놓고 종류별로 할 만큼 다 해봤고, 아이가 놀자고 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응해주는 편이다. 늘 혼자 그림이나 그리면서 놀던 아이였는데 그래도 "함께" 놀자고 요청하는 게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고마운 마음도 한두 번이지 늘 아이의 에너지에 맞춰 놀아줘야 하고 남편의 퇴근은 늦은 저녁이라 아이와 놀아주는 건 오롯이 내 몫이 된다. 


여름 방학 때 조카들과 내 아이까지 아들 셋을 데리고 키즈카페도 가고 바닷가도 데리고 간 적이 있다. 어쩌다 그날은 다들 일이 생겨서 나 혼자 애들을 데리고 다니게 되었다. 그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내 아이 하나만 데리고 다닐 때보다 훨씬 덜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애들끼리 서로 장난치고 놀고 하다 보니 나는 끼어들 틈이 없었고 내 역할이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그저 안전하게 놀만한 장소에 데리고 간다거나, 먹을 것만 사주면 노는 건 아이들끼리였다. 이 정도면 아들 셋도 키울만하겠다는 해괴망측한 생각을 했다. 물론 하루 이틀 데리고 있는 거랑 진짜 집에서 부대끼며 키우는 건 천지차이일 것이고 감히 자녀 셋 엄마들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라는 건 알지만. 


동생 타령을 자주 하던 아이가 어디서 들었는지 갑자기 육 남매가 되고 싶다고 한다. 형제, 자매의 나이와 성별이 나온 가족설계도까지 자세히 그리면서 자기는 이 중에 넷째란다. 육 남매가 되면 동생들과 잘 놀아줄 거고 형아, 누나 말도 잘 들을 수 있단다. 와. 요즘 세상에 육 남매를 낳는다면 티비 인간극장에도 나올 수 있겠다. 


"그래? 엄마는 육 남매 낳다가 이미 저 세상 가버렸을 것 같은데?"


육 남매라니. 내가 서른둘에 첫 아이를 출산했는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임신과 출산을 미친 듯이 반복했다면 지금 육 남매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여섯 번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거치는 동안 내 저 칠 체력 몸뚱이는 거의 반할머니가 돼버릴게 틀림없다. 그래도 아이의 눈빛은 간절했다. 


조금 미안했다. 육 남매가 아니라 동생 하나 정도는 마음먹고, 생각을 달리했다면 낳아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 두세 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다면 잘 놀기도 했을 것 같고, 굳이 휴일마다 다른 집에 연락해서 같이 놀자고 부탁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조카들도 남자 녀석들인데 둘이 물고 뜯고 매일 싸우는 것 같아도 막상 서로를 많이 의지하고 같이 즐겁게 논다. 아이는 형 동생이 있는 집을 너무나 부러워한다. 


그렇다고 이런 마음으로 둘째를 낳는다 한들, 지극히 큰 아이를 위한 수단으로써의 존재가 될 것 같다. 둘째 자체로 한 자녀가 아니라, 큰 아이를 위한, 큰 아이에 의한, 존재 말이다. 내 아이가 동생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짠하고 불쌍해서 동생을 선물하듯 낳아주는 것은 좀. 아니지 않은가. 


나중에 부모가 먼저 세상 떠나면 그래도 의지하게 되는 건 형제라는데 외동으로 키우게 돼서 좀 미안하긴 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 무리해서 무책임하게 낳는 것도 아니다. 일단 낳으면 아이는 혼자 잘 큰다라는 말은 옛 어르신들 세대에서나 통하는 거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부담도 빼놓을 수 없다. 고도성장 시대도 아닌지라 아이가 자기 밥벌이할 때까지는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다.  무엇보다, 나는 건강한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다. 


어쩔 수 없다, 아들아 육 남매 못 만들어줘서. 네가 육 남매로 안 살아봐서 그렇지, 드라마 육 남매에서 나온 다복한 형제자매들의 삶의 모습도 그리 녹록지는 않았어. 나중에 드라마로 보며 간접체험하게 되면 그땐 외동으로 키워줘서 감사하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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