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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Sep 25. 2023

초2도 인간관계는 힘들다

ADHD 아이 키우기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내 아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기가 힘들었다. 항상 또래관계에 있어 약자이고 친구 하나가 아쉽고, 더 늦기 전에 또래 수준에 쫓아가야만 하는 입장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 좀 그 반대라고 느껴지는 일을 겪었다. 인간관계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는 걸 아홉 살 아이들 인생에서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방과 후에 우리 집을 거의 쉼터로 여기며 자주 들렸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이 아이와 아이 엄마로 인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해결방안을 고민하다 글로 남긴 적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내 아이가 단숨해 해치우듯 해냈다. 갑자기 그 친구가 싫어졌다는 것이다.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는데 아무튼 앞으로 그 친구를 만나도 인사하고 싶지도 않고 같이 다니는 학원에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으니 타임을 바꿔달라고 했다.


아주 귀엽고 애교 넘치는 성향의 친구인데 가끔 뜨악할만한 욕을 했다. 아무래도 유튜브 같은 데서 무방비로 노출됐기에 배운 것 같았다. 자기도 그 욕의 뜻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했겠지만 아이는 그 친구가 욕을 하니까 싫다고 했다. 정말 친하고 좋아하는 친구라면 그 정도 흠쯤은 그냥 넘어갈 법도 한데 아이는 그런 이유로 무조건 싫다고 놀고 싶지도 않고 인사조차 하기 싫어졌다고 했다.


이건 뭐 너무 극단적이어서 할 말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에 자주 데리고 와서 같이 놀던 아이인데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도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아무리 놀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인사 정도는 하라고 했지만 도통 내 말은 듣지 않았다. 한 번 싫어진 친구에 대해서 아이는 굉장히 단호했다. 정확히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알지 못한 일들이 또 있었을 수도 있기에 일단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애가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아는 체 시키며 인사를 하라 말아라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입장은 사뭇 달라 보였다. 투명인간 취급하며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내 아이를 보며 굉장히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아이가 너무 냉랭해 보였는지 애먼 나를 바라보며 구원의 눈길을 간절히 보내곤 했다. 나는 최대한 반갑게 인사해 주며 반응해 주긴 했지만, 눈빛이 뭔가 슬퍼 보였다. 혹시 내 아이랑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아쉬워서 그런 걸까. 참 살다 보니 별 일도 다 있군. 내 아이를 원하는 친구가 생기다니. 유치원 시절만 해도 꿈에서나 가능할 거라고 여겼던 일이었다. 내 아이와 놀고 싶어 하는 또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친구와는 같은 반은 아니기에 자주 마주칠 일이 없으니 그다지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가끔 복도나 급식실에서 마주칠 때 내 아이의 반응이 궁금하긴 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학교 생활의 모든 것을 일일이 체크하고 물어보는 것도 엄마로서 과하고 아이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아이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일은 거의 잊어버리고 기억을 못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겪은 사소한 일들을 말해주지도 못한다.


그런데 같은 반에서 나름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문제가 생겼다. 굉장히 아는 것도 많고 똑똑 박사님 같은 인상을 가진 그 친구는 내 아이와 나름 관심사가 비슷하고 보드게임을 좋아해서조금 친해졌다. 정말 하늘에 감사할 일이었다. 작년에는 딱히 친하다고 여길만한 반친구가 없었는데 이제는 자주 그 아이 이름을 말하고 쉬는 시간에 곧잘 같이 놀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은 혼자 앉아 종합장에 그림을 그리며 보낼 때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지만 그 친구가 워낙 적극적이라서 같이 놀자고 제안하는 것 같았다.


학교가 끝나면 가끔은 둘이 같이 손을 잡고 나오기도 했다. 나는 엄청나게 흐뭇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내 아이도 비슷한 성향의 친구를 찾아가는구나 싶었다. 그 친구는 워낙 똑똑하고 책을 좋아해서 아는 게 많았고 내 아이도 몇 가지 주제에 관해 반집착적으로 파고드는 성향이 있어서인지 나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듯했다. 같은 반에 소통하는 친구 한 명이라도 있는 게 내 목표였는데 벌써 이룬 것 같아 이제 한시름 놔도 되나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나 행복한 단꿈도 잠시였다. 어느 날 불 끄고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데 아이가 뜬금없이 그 친구 이야기를 했다. 원래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절대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아이가 아니다. 갑자기 그 친구가 자기를 괴롭혀서 너무 싫다고 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 말로는 때리고 괴롭힌다고 했는데, 진실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되고 좀 가감해서 들을 필요는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 친구가 툭툭 치거나 어깨동무를 한다거나 몸을 터치하면서 놀거나 표현을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공개수업과 체육대회에 갔을 때도 그런 모습이 눈에 띄긴 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괴롭히거나 때린다기보다 뭔가 친하다는 제스처로 보였다.


내가 봤을 때는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중요한 건 아이가 그런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아닐까. 내 아이는 그런 신체적 표현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중요했다. 그 친구도 하다 보면 힘조절이 안되니 더 세게 했을 수도 있고, 내 아이가 싫다는 표현을 적절히 하질 않으니 반장난으로 더 심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친구들이 봤을 때는 그저 애들끼리 같이 논다는 느낌으로 비쳤을 것 같았다.


정말 어렵게 생긴 반친구 한 명인데, 아이에게 놀지 말라고 해야 하나 갈등이 되었다. 진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방학이라 담임선생님께 연락해서 물어보기는 것도 아닌 듯했다. 그냥 그 친구가 그럴 때마다 힘들고 스트레스받으면 "싫으니까 하지 마, 이렇게 내 몸 만지지 마!"라고 단호하게 말하라고 연습을 시켰다. 크게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하라고 복창을 시켰다. 아이는 그런 말을 친구에게 하는 게 불편한지 한 두 번 따라 하더니 하기 싫다면서 자리를 피했다. 남들에게 싫은 표현을 하기가 어려운가 보다. 근데 뭐 나도 그랬다. 남에게 싫은 소리 대놓고 못하는 건 내 못난 성격의 일부였다. 평생 고치려고 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아이에게 하기 힘든걸 자꾸 해보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한 두 번 말하다 말았다. 2학기가 시작되었고, 아이는 그 친구와 더 이상 같이 나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안 노는 것 같았다. 그 친구랑 노느니 차라리 혼자 노는 걸 택한 듯했다. 하교 후 가방에는 이면지 가득 그린 그림들이 쏟아졌다. 아쉽지만 그러려니 했다. 싫은 친구랑 억지로 놀게 할 수도 없고, 놀다 보면 안 맞는 아이들도 있는 거지 뭐 하면서 마음 편히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애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담임선생님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정중히 사과했다. 자기 아들이지만 등치도 큰데 행동도 커서 친구가 느꼈을 때는 아프기도 하고 싫기도 했을 것 같다고 아이에게 단단히 일러두겠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당황스럽기도 하고 상담 때 담임선생님께 지나가듯 대수롭지 않게 언급한 부분이었는데 전화가 와서 사과를 받게 되니 되려 더 미안해지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그 친구는 내 아이뿐만 아니라 반 내에서 다른 아이들과도 문제가 자꾸 있어서 학교 생활을 굉장히 힘들어한다고 했다. 자세한 사정은 건너들었기에 잘 모르지만 서로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애매한 상황 속에서 자꾸 트러블이 생겨서 아이가 학교를 싫어하고 아무도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고 슬퍼했다는 것이다. 그중에 내 아이도 있었다. 그 친구는 같이 놀고 싶은데 갑자기 내 아이가 너랑 이제 안 놀아하고는 아예 놀아주지 않는다고 했단다.


내 아이와 놀고 싶은데 안 놀아줘서 힘들어하는 친구가 생기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 좋기도 하면서도 크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와 놀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다는 건 백번 천 번 감사할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 상황에서 아이의 대처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기나 싶었다. 그 친구의 특정한 행동이 싫으면 "나 네가 그렇게 하는 거 싫으니까 몸에 손대지 마. 나 진짜 아프다고." 단호하게 말하거나 자꾸 표현하면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면 좋을 텐데 아이는 그냥 회피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갈등 상황을 회피하는 것도 날 닮은 건지. 매일 쉬는 시간에 혼자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친구 말로는 내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자기만 소외당한다면서 학교 가기 싫다고 했다고 한다. 아이가 조금 심각한 표현까지 해서 상담을 한 번 받아볼까 고민 중이라고 그 엄마가 전했다.


내가 봤을 때 그 친구는 세상 순수해 보이고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하고 사랑받고 자란 아이처럼 보였는데, 참 반전이었다. 친구 관계로 인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다고 하니 걱정도 되었다. 그 스트레스의 원인 중 하나에 내 아이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랬다.


아이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이제 OO이가 막 거칠게 건들지 않겠대. 엄마랑 선생님하고도 약속했다고 하니까, 이제 조금씩 같이 놀아봐도 될 거 같아. 아예 무시하고 안 놀지는 말고. 가끔 같이 하고 싶은 보드게임 있으면 한 번씩 해봐."


최대한 잘 설명한다고 했는데, 아이는 건성으로 듣는 표정이다. 그래도 알았다고 그렇게 해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내 아이의 감정도 중요하고 스스로가 불편하다고 느껴서 피하는 건데 내가 그 상황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너무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애가 스스로 알아서 하겠지. 어른이 더 관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느꼈다.


내 아이야 원래 사회성도 부족하고 서툴러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지만, 보통의 아이들도 친구관계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


초2, 아홉 살 인생에도 친구는 중요하고 의미가 크긴 하나보다. 모든 아이들이 갈등 없이 자신과 잘 맞는 아이들 찾아서 친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어쩌면 그런 건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잘 놀았다가 싸웠다가 멀어졌다가 상처받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게 상처 주기도 한다.


발달이 빠르고 똑똑하고 야무지다고 해서 친구관계까지 늘 순탄한 건 아닌가 보다. 아이 친구 엄마도 아이 걱정 때문에 많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뭐라 위로할 입장도 아니고, 그럴 처지도 못되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맷집이 생기고 상처도 아물어가면서 점점 나아지기를 바래본다. 그 아이도 내 아이도, 또 다른 모든 9살 인생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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