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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Sep 19. 2023

아이 담임선생님을 좋아해 보세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실 거예요

학기 초에 새로 만난 아이의 담임선생님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글에 악성댓글(?)도 달렸다. 지금 다시 봐도 조금 민망하긴 하다. 포인트는 작년 담임선생님과 올해 담임선생님의 차이가 커서 아이도 나도 적응을 못한다는 데에 있었다. 악플이 달린 이유는, 너무 일방적으로 작년 담임선생님에 대한 찬양과 그리움을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지금 담임선생님은 작년보다 못하다는 암시가 있었으니 그 부분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했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 당시에는 나름대로 내 솔직한 마음을 너무 여과 없이 드러낸 점이 아쉽다. 조금 더 정제된 표현을 썼다면, 혹시 일부분의 내용에 기분 나쁠지도 모를 독자를 고려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이전 담임선생님에 비해서 클래스앱에 활동 사진을 전혀 올려주지 않아서 굉장히 서운해고 아쉬워했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무섭도록 적응이 되어서 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임이 틀림없다.


아이는 몇 달째 등교거부를 하고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 이유를 물을 때마다 "담임선생님이 너무 무섭다"라는 말만 해서 더 속상했다. 가끔 친구들이 괴롭힌다는 말도 했지만, 담임선생님 핑계를 댈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각과는 다르게, 1학기 행동발달 및 특성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은 굉장히 호의적이셨다. 보통의 아이들에게도 그러하겠지만, 인성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칭찬해 주셨고 이 정도면 아이를 예뻐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냥 단순히 학교 가기 싫어서 담임선생님이 무섭다는 핑계를 드는 게 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대할 때 자주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화를 내거나, 혼을 내는 횟수가 잦은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나쁜가? 그렇지 않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 분은 아이들의 행동을 끊임없이 교정하고, 가르치고,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분이다.


요즘 세상에 학생들의 행동에 화가 나서 혼내면서 지도하고 언성 높이는 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학생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교사들이다. 아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이렇게 해서라도 행동을 좀 고쳐주고 싶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학교에서라도 가르쳐주고 싶은 욕구가 강한 분들이다. 너무 힘들고 피곤하면 혼내는 것조차 귀찮고 그럴 에너지도 바닥난다.


우리 선생님은 그래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자꾸 혼내시는 거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다정하고 친절한 말투로 지도할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런 성인의 경지에 다다른 분들은 대단한 종교인이거나 박애주의자 수준은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여러 번 주의를 주어도 말을 안 듣고 계속 잘못된 행동을 하면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이쁜 말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선생님이 혼낼 때 말투가 좀 딱딱하고 무섭게 느껴질 수 있는데, 약물 치료 때문에 청각 주의력이 예민하게 올라온 상태의 아이는 보통 애들보다 그 목소리가 두 배, 세 배 더 크고 무섭게 들리는 탓이 크다. 그렇다고 화가 나든 기분이 좋든 늘 조용하고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해 줄 수도 없고,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다.


내 아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지인의 아이는 작년 담임선생님에게 늘 따로 남아서 지도를 받고 왔다고 했다. 말이 좋아 지도지, 이렇게 행동해라, 그건 아니다, 안 된다 하면서 종례 후에 따로 남겨 혼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것도 아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아니고, 같은 반 야무진 여자친구들의 제보로 이 엄마가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엄마에게 자주 전화해서 아이에 대해서 상담도 하고, 지도상의 어려움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담임선생님이 정말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아이를 지도해 주셨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는 내 아이만 자꾸 혼내는 것 같고, 따로 남겨서까지 애를 잡아둘 일인가 싶었는데 지금 담임선생님은 그와는 정반대라고 한다. 그 엄마가 봤을 때는 학교 생활, 교우관계에서 고쳐야 할 것도, 문제점도 많다는 걸 알고 있는데 무조건 "잘하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아이가 좀 좋아져서 정말 잘하는 건가 싶었는데 아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선생님은 수업 태도는 괜찮은 편이고 나머지는 크게 손이 가지 않으니 아이에 대해서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점이 되려 더 서운하기도 하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작년 선생님은 아이에 대한 애정이 참 컸구나라는 걸 깨닫는다고.


우리 아이의 옆 반 선생님은 듣기로 아이들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방식으로 지도하신다. 그래서 유독 옆 반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너무 많이 뛰어다니기도 하고 교실 내에서 놀 때도 텐션이 너무 올라가면 걷잡을 수 없이 흥분의 도가니가 된다고 한다. 뭐, 그 반만의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아이들은 행복할 수도 있지만, 바로 이런 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내 아이 같은 경우는 너무 자유롭게 풀어주는 분위기에서 더 적응을 어려워할지도 모른다. 뭔가 질서 정연하고 구조화된 분위기에서 선생님이 제시한 규칙대로 움직일 때 아이는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다. 너무 자유가 따르면, 아이는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더 우왕좌왕할 테고 누구랑 뭐 하고 놀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 같다. 센터 선생님과 함께하는 그룹 사회성 수업에서는 아이는 나름대로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며 강점을 발휘하지만, 아무런 룰 없이 아는 친구 몇 명끼리 놀아야 하는 놀이터에서는 제대로 놀지를 못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적응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력이 떨어지는 성향이다 보니, 지금의 담임 선생님의 지도 성향이 아이에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교육 방식과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느낌과는 별개로 우리 담임선생님은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것 같다. 자신만의 교육 철학과 지도 방향 그리고 개인의 성격 등 여러 요소들이 버무려진 상태로 임하실 뿐이다.


결정적으로 2학기 상담에서는 1학기 때와 달리 아이의 긍정적인 점을 많이 강조해 주시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내가 우려하고 걱정했던 부분도 나름 시원하게 긁어주듯 구체적으로 아이의 행동양상을 설명해 주어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아이의 약물 복용에 따른 부작용과 어려운 점도 심정적으로 이해해 주시려는 느낌도 들었다. 상담 내용 그 자체보다 전화기 너머 느껴지는 선생님의 아이에 대한 시각이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아, 남은 학기 동안 내 아이 선생님께 마음 놓고 맡겨도 되겠구나.


"늘 걱정되는 부분도 참 많은데요. 선생님께 먼저 연락 오시기 전까진 아이가 학교 생활 잘하고 있다고 믿고 먼저 연락드리지 않을게요.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셔요."


아이에 대해서 걱정되는 부분도, 학교 생활에서 궁금한 점도 너무 많아서 전화해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굴뚝같지만 이 말로 상담을 마무리했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그러마라고 대답해 주셨다.


지금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 아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너무 휘둘리지 말고 일단 반대로 생각해 보자. 나와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점이 다른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는 장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연애할 적 애인의 장점이라 여겼던 점이 막상 결혼해서 살고 보니 치명적 단점이 되듯, 별로라고 느껴지는 점도 어느 순간 좋은 결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구관이 명관이라고 내년이 되면 차라리 작년 담임선생님이 나았다고 말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이 키우고 학교 보내며 학부모로 살아보니 배우게 되는 점도 참 많은 것 같다. 굳이 이렇게 뼈저리게 경험해 가며 하나하나씩 배워나가지 않아도 됐을 일들이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조금은 성장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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