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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Sep 05. 2023

그대여, 죽지 말아요

누가 교사를 자살로 내모는가

현직에 있지 않은 나는 교직 분위기를 현장에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재량휴업일지 지정됐다는 몇몇 학교 소식에 혹시나 애가 다니는 학교도 휴업일이 될까봐 걱정했다. 학교를 보내야만 이유가 더 뚜렷한 학부모 입장이 되버린 것이다.


운 좋게도 여태 악성민원이라 칭할 수준의 학부모님을 만난적은 없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지켜본 적은 여러번 있다. 자기 아들만 벌 준다고 문신을 드러낸 깡패처럼 보이는 사람들 대동하고 학교에 와서 담임선생님만 나왔더니 학년부장도 같이 나오라고 소리치는 분, 자기 아이만 고의적으로 수업시간에 발표를 안 시켜준다고 영어 선생님을 고소하겠는다는 분들을 본 적은 있다.


포털 사이트를 켤 때마다 또다른 교사들의 자살을 택했다는 기사가 업데이트된다. 서이초 교사가 시발점이 된건지, 그 전에도 꾸준히 있었는데 이제서야 재조명 되는건지는 알 수 없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너무 자주, 쉴틈없이 교사의 자살 사건이 발생하니 그전만큼 놀라지도 않는 무뎌진 나를 발견하고 또 한번 놀란다.


공교육 멈춤의 날. 일부 교원단체가 주최한게 아닌, 일반적인 교사 집단 전체가 이토록 크게 들고 일어선 적이 있었나. 학부모 입장에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당할수도 있는 대규모 집회가 달갑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것 같아서, 이럴 수 밖에 없는게 아닐까.


그런 말을 들은적이 있다. 교사들은 대체로 착하다고. 학교 다닐 적에는 모범생들이었고, 학교와 가정에서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정해진 규율과 바운더리 내에서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산다. 그래서 퇴직하면 사기도 많이 당한다고.


학교 근무를 해보면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순종적이다.(지극히 주관적) 교감의 지시에, 교장의 명령에, 교육청의 지침에 따른다. 불평, 불만이 터져나올지언정 혼자 삼키거나, 주변 동료와 공유하며 서로 위로하는 정도에 그친다. 걔중에 목소리가 크고 관리자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하는 선생님들이 간혹 있는데, 나는 그런 성향이 늘 부러웠다. 교장, 교감은 고사하고 부장 교사 앞에서도 눈치를 보는 나는 언제쯤 저렇게 할 말 하면서 직장생활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관리자 눈치에, 학부모 민원에, 학생들 관리에, 담당 업무 처리에,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래도 참아내야만할 이유가 너무 많다. 교사는 직업이기에 밥벌이이자 생계 수단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집안의 자랑거리다. 의치한약수만큼은 아니어도 쉽지만은 않은 교대, 사대 입시를 통과해서 임용고사까지 패스하기는 어려운 과정이다. 내가 너무 힘들고 지쳐도 그만둘 수가 없다. 요즘 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평생 직장에 그래도 적지않은 연금까지 보장되는 직업을 어디가서 찾을 수 있겠는가.


가끔 너무 힘들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만약 교사를 그만둔다면 나 자신보다도 부모님과 가족의 실망이 더 클 것같아서 두렵다. 어떻게 해서 합격해서 들어간 자리인데, 니가 배가 불렀다, 제도권 밖으로 나와서 고생해봐야 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의 반응이 뻔히 상상된다.


외람되지만 이번에 유명을 달리한 서이초의 새파랗게 어리디 어린 교사도 그런 무게감이 있지 않았을까. 어렵게 교대에 들어가서 서울시 교육청 소속 교사가 되었는데, 이제 막 교직 일이년 해보고 힘들다고 그만둔다고 했으면 가족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악성 민원과 학교 업무에서 오는 압박감과 더불어 그만두고 싶어도 가족들이 실망할까봐 차마 그만둘 수 없다는 압박감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혹자는 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느냐고, 교대 입학해서 임용고사 합격할 정도로 똑똑한 머리면 학교 때려치고 사회 나와도 뭘 해먹고 살아도 할 수 있을텐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목숨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글을 보았다. 그 의견에 십분 동의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으면 그만둘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하는데, 감히 그런 용기를 낼 수 없었을지 모른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한다. 죽음을 생각할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이까짓거 때려치고 내가 못할 일이 뭐가 있어, 연금이고 공무원 신분이고 뭐고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교장선생님, 나 그만둘랍니다!"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돈을 좀 못 벌어도, 정년 보장을 못 받아도, 당장 가족들을 실망시키게 되더라도, 패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보단 살아내는게 백번, 천번 더 낫다. 목숨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대들의 아까운 생을 부디 내쳐버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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