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웩슬러 상위 0.1%, 솔직히 부럽지?

제 아이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by 레이첼쌤

내 아이와 또래인 친한 지인의 아이도 사회성 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집 아이도 내 아이와 겪는 어려움의 증상이 거의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내 아이는 언어발달지연이 두드러져서 먼저 인지해서 좀 더 이른 시기에 치료를 시작했고 그 집 아이는 6세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상호작용의 수준이 떨어지고, 한 가지 주제에 빠지면 과도하게 집착하는 등 거의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데, 그 집 아이는 언어발달이 눈에 띄게 늦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빨리 인지를 못했다. 따로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문자를 습득하고 책도 곧잘 읽었기에 별 문제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인 중에서 아이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되었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도 쉽고, 만나면 서로 어떤 치료를 받는지 정보 공유도 하고, 요즘 눈에 두드러지는 문제행동은 어떠한지, 기관 생활 적응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가끔씩 만나면 그저 좋았다. 애들끼리 좀 놀게 해 보려고 같이 만나도 이 녀석들은 함께 노는 법을 모르니 거의 따로국밥으로 놀아서 절망적이기도 했지만. 한 해 한 해 성장하면서 그래도 아예 서로 대화조차 나누지 않던 아이들이 한 두 마디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물개박수를 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둘 다 ADHD 약물을 복용 중이어서 비슷한 부작용도 겪고 있다. 서로 어떤 약을 얼마만큼 복용 중인지, 이번에 어떤 약으로 용량을 얼마큼 변경했는지 그에 따른 반응은 어떠한지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데도 한 시간은 족히 흐른다. 지금도 먼 거리에 사는 건 아니지만 아예 가까운 동네로 이사 가서 자주 만나면 좋겠다고 만날 때마다 아쉬워했다. 사회성 부족한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자주 만나며 부딪히게 하다 보면 서로에게 상승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 때문이다.


지이의 아이가 이번에 다시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첫 검사를 너무 어렸을 때 유치원 다니던 시기에 했던 터라 검사 결과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같고, 혹시 진단명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겸사겸사 여러 가지 이유에서 다시 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는 상당히 놀라웠다.


지능지수 IQ 140 이상으로 상위 0.1%가 나왔고, 아이의 ADHD증상, 즉 산만함 때문에 검사 과정에서 힘들어하고 주의집중이 떨어질 때가 많아서 정확한 검사 결과를 받기가 어려웠으므로 잠재적 지능은 그보다 훨씬 높을 수도 있다고 한다. 진단명은 Gifted ADHD라고 했다. gifted란.. 한마디로 영재라는 말이다.


이 아이가 영재라서 ADHD 증상이 동반되는 건지, 아니면 원래 ADHD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영재성이 동반되는 건지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지 수준이 워낙에 높기 때문에 부족한 사회성이나 또래관계는 결국 높은 인지능력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따라서 사회성 향상 기술을 위한 훈련과 수업을 꾸준히 받게 해 주라고 했단다. 머리가 너무 좋은 아이이니 어떤 것이든 습득력은 빠르지만 주변 상황과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게 문제라고 한다.


솔직히, 부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그 집 아이가 여태 보여주었던 행동 양상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영재의 심리학>에서 봤던 일정 수준 이상의 IQ를 가진, 정말 머리가 좋은 영재들이 보여줄 수 있는 부정적인 행동 패턴들을 그 아이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분야에 빠지면 무섭도록 몰입하고 방대한 양을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습득한다. 보통 사람들은 영재라고 하면 부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말 영재를 키우는 부모들은 남다른 양육기술이 필요하기에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내 아이의 웩슬러 검사 결과 점수가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응? 그 아이 아빠나 우리 아이 아빠나 공부 잘한 건 매한가지인데 왜 우리 아이는 그렇게 지능이 낮았을까? 혹시 나 때문인가. 그 집 엄마는 나보다 훨씬 학벌이 좋다. 그럼 설마 아빠 머리를 안 닮고 나를 닮아서 애가 지능이 낮은 건가? 하는 단순회로가 머릿속을 지배한다.


유아기에 처음 검사했을 땐 사실 기대도 했다. 혹시 애가 너무나 머리가 좋아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 혹시 지능만 너무 발달한 탓에 소근육이고 대근육이고 여타 다른 발달이 좀 느려진 것은 아닐까하는 부모의 헛댄 바람이었다.


똑같이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그 집 아이는 그래도 머리가 좋아 영재라서 그렇다는 보기 좋은 핑계라도 있는데 내 아이는 뭔가..라는 못난 생각이 자꾸 든다. 엄마로서, 부모로서 절대 하면 안 되는 생각인데 나는 이렇게나 속물스럽다. 아이가 발달장애라는 걸 안 순간부터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건강한 아이, 남들처럼 평범하게만 자라주기를 그렇게 기도하고 눈물 흘리며 애원해 놓고. 남의 아이 지능 높다는 건 왜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평범한 지능에 남들과 같은 사회성을 타고나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자라는 게 훨씬 낫긴 하다. 아니, 그게 정말 건강한 거고 내가 정말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하지만 기왕에 그런 자질이 결핍된 채로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IQ 높은 영재라서 그런다는 타이틀이라도 있다면. 훨씬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남들과 비교하면 안 되는데 또또 비교질이다. 너도 잘나지 않았으면서 왜 자꾸 네 아이를 남의 아이와 비교하느냐 말이다. 물론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표현하진 않아도 아이는 느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남편도 약간 놀라기도 하고 자극을 받았는지 우리 애도 검사 다시 한번 해볼까라고 했다. 하지만 검사 과정도 길고 힘들고 비슷한 종류의 검사를 자주 받는 것도 별로 유익할 게 없을 것 같다. 병원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확인하고자 재검사를 권하지 않은 이상, 그냥 하지 말자고 했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토록 많은 책을 읽고, 아이에 대해서 그리고 양육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배운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봐주라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실천하는 것 같지만 내 마음속 깊은곳까지도 과연 올곧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왜 내 아이는 증상도 비슷하고 겪는 어려움도 비슷하고 부모의 직업 수준도 비슷한데 아이큐가 낮게 나왔는지, 분석하려는 나를 마주한다.


부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어차피 비슷한 종류의 어려움을 겪는 거라면, 기왕이면 머리가 너무 좋아서 그렇다는 남들 보기에 허울 좋은 핑계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부러움이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가지고 있지만 내 아이는 없는 부족함에, 결핍에 집중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오늘도 다짐하고 또 연습하고 또 실천하자. 아이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봐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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