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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Oct 12. 2023

압구정은 영어가 공용어인가요

지방러 시골쥐는 궁금합니다

이번에 서울에 갔을 때는 숙소가 압구정 쪽이라서 어쩌다 보니 내내 그쪽에만 있다가 왔다. 서울에 자주 놀러 가는 편이기는 하지만 애 낳고 나서는 주로 아이 볼거리 위주로 다니다 보니 압구정이나 청담동은 가 볼일이 거의 없었다. 롯데타워와 롯데월드 위주로 잠실에서 놀거나 국립박물관이나 과학관 혹은 호캉스를 위한 5성급 호텔을 주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롯이 압구정과 청담동 안에서만 있다가 왔는데 나는 좀 특이한 걸 느꼈다.


압구정과 도산공원 근처는 온갖 맛집과 카페가 즐비했다. 요새 유행하는 버터크림라테 종류의 시그니처 커피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이름난 카페도 갈 수 있었다. 아이도 이제 나이가 좀 먹었는지(?) 이런 엄마의 취향을 존중해 주었다. 예전 같으면 밥 먹고 카페에 간다고 하면 그 재미없는 데를 왜 가냐고 징징댔는데 이제는 반포기 상태로 따라와 준다. 나도 뭐 아이랑 오붓이 앉아 가족 간의 대화를 나누는 카페에서의 시간 따위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머물지는 않는다.


그렇게 압구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숙소도 그쪽에서 지냈는데 내 귀에 계속 꽂히는 건 바로, 영어였다. 일단 외국인이 굉장히 많았다. 이태원도 아닌데 이렇게 외국인이 많은 것도 신기했다. 물론 영어가 모국어인 것 같은 외국인도 많았지만 일본, 중국 관광객들도 꽤 많이 보였다. 그들도 관광 안내를 받거나 대화를 할 때 영어를 사용하는 걸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더 신기한 건 우리나라 사람인 것 같은데 영어와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다. 유창한 영어 대화가 들리길래 돌아보면 인상착의로 봐서는 우리나라 사람이었고 곧 우리말도 사용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강남 사람들은 다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몇 년씩 다녀와서 다 영어를 잘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눈에 띈 건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이 일부러 더 자녀들에게 영어로 대화하려고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사실 최근에 엄마표영어 인플루언서가 쓴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에게 영어로 말을 걸고 쉬운 대화를 반복하면서 귀를 트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눈에 띄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과하게 영어 소리 노출이라는 목적으로 인풋을 주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영어 소리 노출을 3년 5년 꾸준히 해도 아웃풋이 나올까 말까라면서 모국어 습득방식과 이론적으로 비교하면서 외국어 학습법에 대해 꽤 그럴듯한 설명을 해놓았다.


어차피 내 아이는 우리말도 느려서 언어발달지연 소견을 받았는데 영어는 언감생심이라는 마음이었다. 다른 또래 친구들 엄마들은 다 어학원이다 원어민과외다, 하다못해 윤선생 영어교실이라도 보내는 판국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무소의 뿔처럼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있었다. 센터에 다니며 언어치료를 받는 엄마들조차 하나 둘 영어를 시키기 시작했다. 나도 뒤늦게 파닉스 교재 한 두권 사서 가볍게 풀리려다가 애랑 사이만 나빠지는 것 같아 포기하고 이제는 그저 넷플릭스 영어 영상만 보여주는 중이다.


어느 경제 블로거가 강남은 한국어와 더불어 영어 공용구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글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 사람이 한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구나 싶었다. 강남에 거주하거나 일하는 외국인이 많기도 하고 관광객도 많고 업무상 영어를 사용하는 한국인들도 넘쳐나다 보니 그런 필요성을 실제로 느끼나 보다. 나는 압구정에 거주해 본 적도 없고 자주 가본데도 아닌데 이 정도로 느껴지는데 막상 살면 정말 이렇게 자주 영어를 길거리에서 쉽게 듣게 되는 걸까. 아니면 내 전공이라서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눈에 띄는 걸까.


압구정에서 놀면서 뜻밖에 수확 중 하나는 외국 여행을 간 것도 아닌데 아이가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조금은 얻었다는 사실이다.


"엄마, 우리나라인데 외국인이 진짜 많아."

"엄마, 영어말 쓰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엄마, 저 사람도 영어 쓴다."


아이의 귀에도 영어가 자주 들렸는지 내내 이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아이에게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서울은 원래 이렇게 영어 사용자가 많은 거라고, 그러니까 너도 영어 공부 게을리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주창했는데 아이는 내 말을 별로 귀담아듣지는 않는 모양새였다.


굳이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데 비싼 돈 주고 해외여행 갈 필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남이나 이태원만 가도 이렇게 외국인이 많고 실생활에서 자주 들리게 되니 "아 영어 쓰는 사람 많구나"라는 것만 아이 스스로 깨달아도 큰 수확일 듯하다.


집에 돌아와서 나도 한 번 실천해 보자는 마음에 엄마표 영어 베스트셀러를 다시 찾아 읽고, 아이에게 짧은 리더스북 읽고 녹음도 시켜보았다. 그리고 영어로 대화도 시도했다. 전공이라고 해도 유학파도 아니고 일상에서 거의 써본 적이 없으니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양치하자, 잠잘 시간이야, 숙제는 했니 정도는 짧고 간단하게 할 수 있으니까. 아이에게 큰 목소리와 나름 정확한 발음으로 "엄마 영어 잘하지?" 하는 눈빛을 발사하며 영어로 말을 걸었다.


아이는 뛰어와서 내 입을 두 손으로 쥐어 틀어막는다.


"엄마, 영어말 쓰지 마. 제발 한국말로 해줘."


엄마표 영어는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언젠가는 압구정에서 본 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그리고 폼나게(?) 아이와 영어로 간단한 대화는 나눠보고 싶다. 그러니 제발 협조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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