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현실 인정은 지능순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다. 정말 별 기대 없이 읽은 책인데 엄청난 영감과 위로를 받았다.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나에게 감동을 준건 단 한 챕터였다. 다른 부분들은 이해되지 않기도 하고 별 감흥 없었지만 챕터 하나, 몇 페이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속 되뇌고 곱씹었다.
요즘 나오는 거의 모든 자기 계발서나 심리 관련 책에서는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고, 낙관적인 자세를 가지는 게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하나같이 강조한다. 육아서에서도 아이에게 심어줄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가 긍정적인 자세라며 이를 증명하는 유명한 미국 대학 교수의 실험 등을 예로 들며 주장을 펼친다.
나도 이런 이론을 당연하게 떠받들며 나의 상황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앞으로 모든 게 다 잘될 거라고 핑크빛 미래를 그려보자고 다짐하고 글로 쓰고 확언을 힘주어 쓰곤 했다.
하지만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는 이러한 무한긍정의 태도를 비판한다. 때로는 삶이 엉망진창이 라는게 사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건전한 일은 그저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한결같은 긍정은 일종의 회피일 뿐 삶의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습관이 들면 삶에는 문제가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 그리고 문제를 부정하면, 문제를 풀어 행복을 얻을 기회를 잃게 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무릎을 탁 쳤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로운 깨달음과 울림을 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여태 모든 상황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애를 쓰면서, 내 아이가 언젠가는
정상발달의 수준에 올라서게 될 거라고, 사회성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눈부시게 발달할 거라고 끝없이
자기 최면을 걸고, 글로 쓰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매일 아침 다이어리에 반복해서 쓰기 바빴을까. 현실을 아예 부정하고 산건 아니지만 나는 부단히 도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과하게 노력했다.
내가 노력을 통해 이룬 것들. 예를 들면 단순히 공부릉 해서 성적을 높이고,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을 얻은 것처럼 내 아이도 내가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노력하고 아이한테 죽도록 올인하면 언젠가는 다 좋아질 거라고 여겼고 그렇게 되어주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내가 애쓰는 만큼 아이가 따라오지 않을 때, 변화의 신호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때는 실망하고 절망에 휩싸이며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되새겼다.
친정식구에게는 울면서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주어진 일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나름대로 착하게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찾아오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며 엉엉 운 적도 있다.
그만큼 나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데에 서툴렀다. 아이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내가 뭐 얼마나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나는 건강한 사람이지만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그건 그냥 가능성의 영역, 아니면 유전자 혹은 운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내 아이보다 더 어려운 처지로 태어난 아기들도 많고 어린이병동 생활을 하며 학교에 다니는 게 소원인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단순하다. 건강한 아이가 있는 만큼 건강하지 못한 아이도 있을 수 있고, 내가 낳은 아이가 후자일 수 있는 문제다.
이 사실을 접하고 처음엔 충격일 수 있겠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무작정 잘 될 거라는 무한 긍정을 꿈꾸기보다 아이와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지를 알아보고 실천하며 실패하기도 하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또다시 새로운 시도해 보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기대감 정도는 가지는 게 좋지만 터무니없이 정상발달이라는 기준에 사로잡혀서 맹목적으로 그것에 집착하면 안 된다. 만약 이렇게 노력했는데 그 기준에 닿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또 무너지고 자책하며 과연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탄할 것인가.
정상발달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아이는 그 나름대로 자신의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한 면도 있고 천천히 성장하고 있는데 그런 긍정적인 면을 놓치게 될 때도 많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을 해내고 있을 때도 많으니 말이다. 예를 들면 대화다운 대화를 주고받는 것, 나에게 말대답을 하는 것, 친구에게 말 한마디 거는 것 등이다.
인생은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고 나에게는 그것이 아이의 발달장애일 뿐이다. 모든 삶은 의미를 가질 자격이 있다.
유전적인 결함을 물려주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 책임이다. 나쁜 일이라도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내 마음에 달려 있다.
생각해 보면 아이 치료를 시작하면서 만나게 된 좋은 인연들도 있고, 남편과는 더 동지애가 생겨나 끈끈해졌으며, 나 스스로 인간적인 성장을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이가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나는 이토록 치열하게 책을 읽지도 않았을 것이고, 글쓰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겸손의 미덕을 쌓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살던 대로 살기에 바빴을 것 같다. 겪지 않았다면 더 좋을 일이지만 겪게 되었다고 해서 더 나빠진 일도 아니다. 더 좋은 일도 많다.
나 스스로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이제 막 아이가 발달장애나 기타 다른 종류의 진단을 받게 된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인생에서 언제든 만날지 모르는 어려움, 난관 혹은 문제에 맞닿드리게 된 것뿐이라고. 주어진 문제를 최선의 방식으로 잘 풀어가면 된다고. 아마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 어떤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아이의 지금 상태가 마이너스인 것 마냥 플러스를 향해 달려가기보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좀 더 편해지도록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임하라고.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들고 낯설고 괴로우면 인생이 이렇게나 힘들고 X 같을 수 있다는 거, 착하게만 산 나에게 이런 뜻하지 않은 불행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 그것만 인정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아마 인정하는 게 가장 힘들겠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직시하는 일이다.
아이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기만 해도 이미 엄청난 발전을 이룬 거나 다름없다. 왜냐면 인정하지 않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일단 부모 마음이 편해지고 안정이 되면 문제 해결을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볼 여유가 생긴다.
나도 이제부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왜 하필 완벽하게 태어나야만 할 내 자식에게 이런 일이 따위 생각은 접기로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해야 행복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