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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16. 2023

남의 불륜을 엿보는 심리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건 순전히 첫 문장이 주는 강한 마력 때문이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와우.. 이보다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결혼에 대한 진리가 또 어디 있을까? 첫 문장을 읽자마자 이 소설은 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 걸까 굉장히 궁금해졌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서 나온 안나 카레니나를 찾아보았을 땐 그 두께감에 압도되어서 이내 후회했다. 엄청난 두께의 책이 한 권도 아니고 세 권씩이나 됐다. 이걸 언제 다 읽는담. 그래도 궁금했다. 크게 심호흡하고 한 번 읽어보기로 한다.


안타깝게도 <안나 카레니나>는 단순히 자극적인 불륜만을 소재로 한 소설이 아니었다. 제정 러시아 사회, 경제, 문화, 관습, 역사 등을 톨스토이의 관점에서 방대하게 다루고 있다. 치명적인 매력의 안나와 젊고 잘생긴 백작 브론스키와의 불륜은 그 거대한 서사 속에 하나의 큰 축일뿐이다. 자극적인 불륜만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그래도 스토리 흐름이 흥미진진해서 결국 끝까지 읽어냈다.


완독 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 읽고 나니 영화까지 찾아보게 된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안나역을 맡은 버전을 봤다. 서로에게 너무나 강하게 끌려서 거부하지 못하고 빠져들고 마는 안나와 브론스키를 보고 있자니 불륜이라는 부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함께 있을 때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또 어리석다.


불륜이라는 소재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걸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에서도 "불륜"이라는 소재는 굉장히 핫하다. 올해는 조금 사그라든 것 같은데 작년에는 브런치북 랭킹 순위에도, 추천 글에도 여기저기에서 어렵지 않게 "남편의 상간녀"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제목을 보자면 나도 모르게 또 클릭해서 읽게 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작가에게 감정이입하면서, 불륜을 저지르고도 뻔뻔한 남편과 상간녀의 작태를 자세히 묘사한 글, 자녀가 있음에도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혼이라는 큰 거사를 치르는 과정들은 도저히 안 읽고는 못 배기겠다.


참 기이하게도 넷플릭스에서 최근에 본 영화도 불륜에 관한 것이었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었다. 상당히 수위가 높을 줄 모르고 본 건데 거침없는 장면들이 출몰해서 놀라움과 그에 수반하게 되는 집중력을 발휘해서 보게 되었다. 내용도 괜찮았고 영상미도 훌륭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았지만 불륜이 너무 미화되어서 조금 아쉬웠다. 정말 영화나 되니까 가능한 이야기였다.


몇 년 전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대기업 회장의 이혼과 동거인 이야기도 기사에 나올 때마다 꼭 클릭해 보게 된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들이 사는 세상 속 이야기지만, 재산분할이니 상속이니 혼외자니 하는 자극적인 주제들에 나도 모르게 이끌린다. 기자들은 정말 대중이 좋아하는 기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한 업인지도 모르겠다.


백 년도 더 전에 출간된 작품이지만 차라리 <안나 카레니나>는 불륜에 관해 사뭇 현실적이었다. 특히 나는 돌리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바람피우고 다니면서 아내를 기만하는 자유주의자 남편과 살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멋진 백작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안나를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현실에 순응하며 최선을 다해서 자녀들을 양육하며 생을 살아간다. 때로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가정 주부의 삶이지만 남편을 떠나고 브론스키와 화려한 집에서 살면서도 신경발작과 과민증에 시달리는 안나를 보면서 자기 삶의 의미를 새로이 깨닫게 된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불륜이라면 더더욱 모래성 위에 쌓은 집이나 다름없다는 것, 특히나 남자는 결국 한 여자에게 영원토록 설렘을 느끼지는 못한다는 것, 남편을 버리고 거기에 자식까지 버린 여자의 최후는 파멸뿐이라는 것. 아쉬운 점은, 수천 년간 그래왔듯 결혼한 남자의 불륜보다 아내의 불륜에 대한 대가가 더 혹독한 것 같다. 브론스키도 힘들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안나처럼 생을 포기하진 않았으니까.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는 여자인데, 전남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싫었어도 참고 살았다면 호위호식하면서 누릴 거 누리고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다. 그래봤자 소설 속 인물인데 감정이입이 좀 심했다. 워나 호흡이 긴 스토리를 보다 보니 등장인물이 정말 실존하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마법에 걸리고 말았다.


짜릿하고, 매혹적이고, 설레겠지만 그래도 불륜은 제삼자의 입장으로 관찰하는 정도로 간접경험하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고맙게도(?) 과거나 현대나 늘 불륜은 문학과 영화, 드라마의 끊임없는 단골 소재가 되어 나 같은 경증 관음증 환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궁금한 건, 단지 가상 속 세계의 그들을 엿보면서 내 마음속에 드는 감정들도 죄가 될 수 있을까이다. 가끔은 대담한 그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고, 또 연민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도 한다.


불륜을 실행한 자는 벌 받아야 하는 건 마땅하다 쳐도, 몰래 훔쳐보며 감히 현실에서 행해보지 못한 제도밖 사랑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도 단죄의 대상인가? 그렇다면 나도 처벌대상인데.. 뭐, 그렇게 치면 유부남이 포르노를 보는 것도 죄가 되는 거 아니겠는가. 결혼을 하기 전에는 결혼을 늘 꿈꾸고, 결혼을 하고 나면 사회적 제도 바깥의 세상으로의 일탈을 꿈꾸는 게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나는 안나처럼 짧고 강한 인생을 살고 훌쩍 떠나고 싶지 않다. 오래오래 길게 사는 게 내 꿈이다. 그러려면 남편이 아닌 브론스키 같은 젊고 잘생기고 부유한 남자와의 연애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그리고 꿈에서나 실컷 실현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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