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결혼생활이란 존재하는가

결혼생활 이야기

by 레이첼쌤

몇 개월전 남편은 나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며, 자기도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하고 놀래서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앞으로 정말 조심할거라고 진지하게 약속했다. 아내와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더 노력하고 앞으로 실망시킬 일 절대 없을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 때 두 번의 사건으로 남편에게 크게 실망하고 배신감에 휩싸여서 고통의 나날을 보냈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이 보였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도 누가봐도 결혼 생활을 끝낼 정도로 최악의 잘못은 아니고 실수한 것 같으니 눈감아 주는게 나을것 같다고들 했다. 며칠간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나도 아내 역할을 완벽하게 한 건 아니고 인간은 언제든 실수하기 마련인 나약한 존재고 내 남편도 평범한 인간 중 하나일 뿐이라는 마음으로 용서하고 넘어갔다.


한 동안은 별 문제 없이 잘 지냈고, 남편은 나에게보다 아이에게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점차 신뢰를 회복하고 있었다. 나는 부부이기에 이런 시련도 겪나보다, 이렇게 서로의 밑바닥까지 보고 용서해주면서 더 단단해지나보다 느끼기까지 했다.


그런데 불과 육개월도 되지 않아 비슷한 실수를 또 저질렀다.

"아. 정말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구나."

얼마전부터 슬슬 일도 힘들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데 한 번쯤 풀어내고 싶다며 불쌍한 척 하더니, 결국 또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아이 앞에서 만큼은 절대 싸우지 말고 사이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로 약속했다. 저번에 대판 싸울 때 아이가 얼마나 불안해하면서 울고 힘들어했는지 확인했기에,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하고 있어 남들보다 더 예민한 아이라서 이런 부분은 극도로 조심해야한다는걸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또 보여주고 말았다. 아이 앞에서 남편에게 소리지르고 화내는 모습을.

등교 준비하던 아이는 울면서 엄마, 아빠 싸우지 말라고 말리다가, 나를 달래기도 하다가, 애교까지 부렸다.

그런 아이가 가엽고 또 하지 말아야할 실수를 아이 앞에서 해버렸다는 자괴감에 괴로웠다. 하필이면 왜 학교가는 아이 마음을 이렇게 속상하게 했을까. 기분 좋게 등교 시키는게 내 매일 아침 목표인데 이 날만은 지키지 못했다.


어디 하소연할데도 딱히 없어서 속마음 이야기할만한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우리 1박 잡고 남편 욕좀 하자 정말 꼴뵈기 싫어 죽겠어"


친구에게 이렇게 답장이 왔다.

"1박으로 되겠니? 남편이라면 나도 할 말 많은데."


두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인 친구는 출근해서 일하느라 바쁠텐데 아침부터 폭탄같은 내 문자에 답해준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공감까지 해주니 더없이 고맙고 위로가 됐다.

나를 포함해서 보통의 여자들은 보통 부부싸움을 하거나 살면서 화나는 일이 있으면 어디에든 이야기를 해야 조금 풀리는 것 같다. 혼자 담아두고 있으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 그래서 속마음 털어놓을 만한 친구나 지인에게 남편 욕을 하곤 하는데, 남편욕을 할만한 사람에 대한 기준도 나 스스로 정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혼초에는 남편이랑 다투거나 사이가 안 좋으면 철없이 엄마에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몇 번 해보니 이게 친정엄마에게 상처가 된다는걸 깨달았다. 장모 입장에서 사위가 딸에게 잘못한 일들을 지적할수도 없는 노릇인데 딸이 결혼생활 하면서 힘들어하는걸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엄마에게는 더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왠만하면 사소한 이야기 말고는 친정엄마에게도 부부싸움같은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그럼 시어머니는 어떨까. 남편과 나 서로 쌍방이 잘못해서 다퉜다면 시어머니에게 알릴 필요도 없겠지만, 보통 큰 다툼의 시발점은 남편의 실수로 인한 것이 더 많기에 싸우고 나면 시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다 쏟아내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그런데 내 주변에서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시어머니에게 일렀다가 본전도 못 찾은 경우를 많이 보았다. 어찌됐든 시어머니는 자기 아들 편이다. 아들이 어떠한 잘못을 해서 며느리를 힘들게 해도, 그것이 중범죄가 아닌 이상 아들 걱정이 우선이다. 처음에는 아들 욕을 함께 하는듯 하다가 결국에는 "그래도 본성은 착한 아이이니 너가 좀 이해하고 넘어가줘라."라는 결론을 듣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너가 어떻게 했길래 애가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집 밖으로 돌겠냐"며 대놓고 아들 편을 들기까지 할 수도 있다. 어찌됐든 시댁에 부부싸움 이야기 해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걸 깨달았고, 이 원칙은 나름 지키며 살아 왔는데 이 날은 철저히 무너져버렸다.


너무 화가 나서 아침부터 어머니께 전화드려서 아들의 만행을 말씀드리고, 제가 아무리 말해도 안되니 어머님이 나서서 한 마디 따끔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하지만 어머님은 걔가 언제 내 말 듣는거 봤니 하시면서 한 발 물러서셨다. 다른 일에는 적극적이신 어머님인데 이런 일에서는 그냥 모른척 하는게 낫겠다 싶으셨나보다. 원칙을 깨고 시어머님께 아들이 잘못해서 다툰 일을 일러바친것에 대해서 후회 되지 않는다. 어머님도 상처받으실텐데, 나중에 후회할걸 감수하고 전화드린건데, 의외로 속이 시원하기만 하다.


아무리 어머님 아들이라고 해도 이제 나와 결혼해서 살 부대끼며 산 세월이 10년이 다 되어가고 어머니 입장에서 아들이야 가끔 안부 묻고 얼굴보는게 다인지라 남편은 어쩌면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할 사람인지도 모른다. 중년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는 클대로 다 큰 아들을 혼내고 화를 내봐야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일러바친 것에 대해서 나는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남편과는 며칠째 말을 섞지 않고 있고, 우리의 결혼 생활이라는 배가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이럴땐 이삼십년씩 이혼하지 않고 오랫동안 사이좋게 사는 부부들이 존경스럽고, 살면서 이혼 생각 한 번 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이 있을까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자식이 없었다면 모든게 더 쉬웠을까.


친정엄마는 평생 나에게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산다."는 말을 입에 댈고 살았는데, 그 말이 나는 참 싫었다. 내가 젊었을 적 청춘 시절의 엄마, 아빠에게 제발 둘이 결혼해서 나 좀 낳아달라고 사정한것도 아니고, 실수였다할지라도 둘이 좋은 감정으로 시작해서 자식들까지 낳았으면 저런 무책임한 소리는 하지 않는게 자식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 절대 자식에게 저렇게 상처 주는 소리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결혼 생활을 하면서 살고보니, 결국 나도 비슷한 처지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 남편은 원래 애증의 대상이라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애정보다는 증오와 미움의 마음만 가득차서 도저히 견딜수 없는 지경이다. 그나마 나에게 웃음을 주고, 위로가 되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존재는 우리 아이밖에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식도 다 커서 제 갈 길 가면 결국 내 곁에 남는건 배우자뿐이라는데,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다.





속상한 마음에 결혼이란게 대체 뭔지, 부부라는게 뭐길래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생활>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작가도 자신의 경험과 결혼생활을 바탕으로 쓴 글이기에, 그의 결혼 생활과 남편과의 갈등 따위가 나의 그것들과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많아 시종일관 무릎 탁 치며 공감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몇 문구가 내 마음에 쏙 들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결혼은 참으로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하다.
결혼한 상태에선 상대를 사랑하고 위할수록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좌절과 열등감을 안겨주고, 나를 가장 잘 알기에 가장 아프게 상처 주는 방법을 꿰고 있다.천국과 지옥은 이토록 한 끗 차이다.



결혼이란 뭘까, 부부란 뭘까, 행복이란 뭘까 같은 것들을 정색하고 헤아리려고 골몰한다거나, 100퍼센트의 진심이나 진실 따위를 지금 당장 서로에게 에누리없이 부딪쳐서 어떤 결론을 얻으려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대개 실패할 것이다.




대놓고 독자를 위로하고 토닥여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이 문구들이 결혼 생활로 힘든 지금의 나에게 단비같은 위로가 된다. 눈물 쏙 빼며 구구절절 감동을 주는 글은 아닌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리되는 기분이다.

결혼에 대해, 부부에 대해, 자식에 대해, 그리고 남편이라는 인간에 대해 너무 정색하고 뭔가 답을 얻고 진리를 얻어보고자 노력하지 말 것.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내가 인생을 살면서 선택한 것들의 결과들이 지금의 현재이므로 결국에 모든 문제는 다시 나 자신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너무 분노하지도, 우울해하지도 말고, 끝낼것이 아니라면 조용히 물 흐르듯이 적당히 모른체하고 넘어가고 나에게 고통을 주는 기억은 의도적으로라도 잊고 사는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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