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자식도 나를 힘들게 할 때
며칠간 남편과 말도 섞지 않고 있다. 물론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한 집에 살지만 서로 타인을 대하듯, 아니 투명인간 취급하며 지낸다. 원인은 남편이 먼저 제공했지만 이제는 그저 얄팍한 자존심만 남은듯한 싸움이 지속된다. 일상은 별문제 없이 그대로 이어가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허하고 괴로운 건 사실이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마저 나를 힘들게 한다. 웬일인지 이 날은 평소보다 더 예민하고 감정 조절이 안되는지 또래며 엄마들이며 사람들 북적한 놀이터에서 마치 서너 살 아기처럼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고 집에 가자는 나를 때리고 밀친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집으로 억지로 울고 불며 떼쓰는 아이를 데리고 오는데도 계속 억지를 쓰고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울먹인다.
집으로 오는 길에 참고 참았던 나의 분노와 화가 현관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이내 터져버린다. 아들을 향해 제발 이제 그만하라고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냐고 아이처럼 소리 지르며 엉엉 울어버렸다. 감정이 도저히 컨트롤되지 않는 상태였다.
나는 결국 내 감정에 지배당하는 저급한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더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매일 아침 다이어리에 반복해서 쓰는 나를 위한 확언들, 다짐들, 감사일기들이 떠오르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며 부질없는 짓거리인가 싶다. 우울증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 구겨질 대로 구겨져버린 내 자존감을 회복하고 조금이라도 지켜보려고 노력했던 일들이 다 허사였구나 싶다.
남편과 아이가 동시에 벼랑 끝으로 자꾸만 몰고 가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인생을 사랑하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 거라는 내 확언 일기 속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렇게까지 괴롭히는데 네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견뎌내나 한 번 보자 하는 것 같았다.
순간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새벽마다 일어나서 운동하고, 감사일기를 쓰고, 확언을 하고, 명상을 하고 노력해봤자 인생은 어차피 달라지지 않는다는 확고한 명제가 내 온몸을 휘감았다.
아이에게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고 옷을 대충 챙겨 입히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예전에 지인의 직장동료가 바닷가 부두에서 차를 그래도 직진하고 돌진해서 바다에 빠져 생을 마감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내가 가장 고통 없이, 깔끔하게,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연예인들은 자살하는 방법을 어디서 어떻게 알아보고 실행했는지 궁금해졌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향하자 아이는 어디로 가는 거냐며 자꾸 묻는다.
퇴근한 남편에게 전화가 계속 온다.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받았다.
"나 이대로는 못 살 것 같아. 그냥 내가 사라져 줄게. 그래야만 이 고통과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어. 남편도 자식도 나는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말을 이어갔고, 남편은 벌컥 화를 내며 빨리 집으로 오라고 아이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다며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친다.
아이는 죽기 싫다고 옆에서 엉엉 운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몰라도, 끝낼 거면 나 혼자만 끝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내 새끼는 그래도 살아야만 한다.
내가 이 아이를 낳았지만, 생명을 끝낼 권리는 없다는 생각이 다행히 들었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이를 집 앞에 내려주고 엄마 바람 쐬러 다녀온다고 말하고 다시 어디론가를 향해 운전을 했다.
어디 구석진 길가에 차를 대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남편과 싸우고 몇 번 밤에 혼자 나와본 적은 있는데, 그때마다 따로 갈 곳도, 당장 만나서 억울한 내 마음 풀 사람도 없다는 걸 확인하곤 했다.
핸드폰에서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아주 어렸을 적 찍어두었던 동영상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못나고 부족한 엄마일지언정, 이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 없이 살게 할 권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엄마가 필요한 나이에 그 옆에 있어주는 게 최소한의 내 의무라고 생각하니 아까 들었던 몹쓸 생각이 점차 사라져 간다.
아이에게 나는 꼭 필요한 존재라지만, 그렇다면 남편은?
남편 꼴 보기 싫어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엄마 어디냐고 얼른 집에 오라고 자꾸 전화하는 아이 목소리에 한 시간도 채 못돼서 결국 집으로 들어가 어질러진 거실을 정리하고 하다만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안고 잠자리에 든다.
남편은 그런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나의 급작스런 행동에 화가 난 건지, 연민의 마음은 눈곱만치라도 들긴 했는지 모르겠다.
아이도 나도 부둥켜안고 조용히 울다가 잠들었다.
초저녁부터 너무 울었더니 피곤함이 이내 우리를 엄습하고 정신없이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다시 현실이다.
나는 내 기분을 관리할 줄 알고, 나는 우울증 따위는 걸리지 않는 씩씩한 사람이 될 거라고 늘 다짐했는데 결국 나도 인생이 주는 시련 앞에서는 무력하고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우울증 초기 증상을 검색해보았다.
현재 내 상황은 생각보다 체크리스트를 모두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제는 현실에서 오는 극단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순간 정신줄을 놓아버린 거라고 생각하자.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끝까지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