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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an 17. 2024

친정엄마가 사생활침해하는 것 같다

모녀 사이 거리가 필요한 때

언제부터였을까. 엄마의 잦은 연락이 부담스러워진 것은.

나 빼고 내 주변 친구들 포함해서 모두 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니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친정엄마와 더 한 배를 탄 것처럼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다. 인정도 많고 같은 동네에서 수십 년 사시면서 덕도 많이 쌓은 편이라 주변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평판도 좋으신 편이다. 그리고 나도 안다. 엄마가 나를 위해서 많은 걸 희생했고 헌신하면서 사셨다는 걸. 그런데 왜 나는 엄마에 대한 감정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걸까.


보살핌을 받아야 할 자녀 위치에서 벗어나 내 밥벌이를 하며 경제적 독립을 하면서 나는 어느 정도 해방감도 느꼈다. 내가 스스로 돈을 버니까 부모님 앞에서도 왠지 더 떳떳해졌다.


나름대로 당당하던 이십 대를 지나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갑자기 나는 다시 부모님이 보살핌이 필요한 약자가 되고 말았다. 육아는 오롯이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이 아쉬울 때가 꽤 있었지만 그에 비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친정엄마에게 서운한 적도 적지 않다.


이제 결혼한 지 십 년이 지났고 사십 대를 관통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나에게 집착하는 것 같다. 자신이 살아내지 못했던 삶의 방식을 나는 멋지게 해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워킹맘으로 직장 생활도 해내면서 육아도 척척 해내고, 남편 내조까지 잘 해내서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 하는데, 여태까지는 어찌어찌 대충 그 기준에 맞춘 딸이었는데, 손주 때문에 커리어도 포기하고 집에서 발달이 느린 아이를 돌보며 집에 있는 나 때문에 괴로우신 것 같다. 대놓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으시다. 그저 내 느낌이고 추측일 뿐이다.


하루에도 열 번이 넘게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내 폰으로는 아니고 집 전화로 전화가 온다.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라 가끔 필요할 것 같아서 집전화를 설치했다. 아이 전용으로 쓰게 하면서 폰을 가지지 못하는 욕구를 조금이나마 채워줄 요량으로 집전화를 쓰도록 했다. 아이의 외할머니이자, 나의 친정엄마는 애가 하교할 시간이 되면 그때부터 계속 전화를 한다. 아이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전화통화를 하면 자꾸 대화를 시도한다. 오늘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누구랑 놀았는지, 친구랑 대화는 했는지, 재미있는 일은 있었는지 아이에게 물어본다. 물론 아주 친절하고 다정한 말투로 여느 할머니가 손주와 대화하듯 한다. 그런데 그 빈도수가 좀 과하다. 하루에 한두 번이면 족해 보이는데, 정말 한 시간에 한 번씩 할 때도 있다. 오후 내내 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학원을 가거나 학습지 선생님이 오실 때도 있다는 거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주 하신다.


마치 할머니가 자꾸 그렇게 전화를 대서 대화를 시도하면 아이가 진단받은 "사회적 의사소통장애"가 좋아지기라도 할 것처럼,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끝없이 대화 시도를 하신다. 덕분에 아이 정서에 도움이 된 측면도 없지 않다. 아이는 할머니의 과한 사랑 표현에 훈련되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부담스럽다.


평일이야 그렇다 쳐도 주말에까지 전화해서 하루종일 엄마, 아빠랑 뭐 했는지, 어디 갔는지, 저녁 식사 메뉴는 뭐였는지 꼬치꼬치 캐묻는데, 이 정도면 사생활침해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사는 사십 넣은 딸의 사생활을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는 거 아닌가.. 애초에 친정엄마와 딸 사이에는 사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건데, 내가 오버하는 건가?


아이도 처음에는 자기만의 집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한다는 걸 재미있어했는데, 이제 별로 달가워하는 눈치가 아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어차피 또 할머니 전화가 뻔하다는 반응이다. 가끔 게임을 하거나 패드를 보고 있을 때면 귀찮으니까 받기 싫다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어차피 새로운 일도 없고 늘 하는 대화, 늘 하는 말의 패턴일 게 뻔하니 아이도 귀찮음을 느낄 법 하다.


또 한 가지 친정엄마에게 불편한 점은, 아이의 상태를 자꾸 부정하려는 것이다. 도움반에 합격할 정도의 어려움은 아니더라도, 아이는 분명히 발달장애진단을 받았고 일반학교 일반반을 다니고 있다고 해도 치료를 병행하며 겨우 적응해가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꾸 아니라고 주장한다. 내가 애가 아직 어떤 점이 부족해서 치료를 추가한다라는 말을 한다든가, 어떤 점 때문에 힘들다는 표현을 하면, 우리 손주가 어디가 문제냐면서 똑똑하기만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사서 걱정을 한다면서 되려 정색하고 화를 낸다. 티브이 보니까 연예인 누구 아들도 어릴 때 ADHD 진단받았는데 약 좀 먹고 하니까 다 좋아져서 잘만 컸다더라 하면서 자꾸 상황을 축소시키고 문제를 회피하려고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가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니까 나는 좀 답답하다. 대화가 안 통하는 느낌이다. 애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직장을 포기하면서 집에서 애만 바라보고 있겠느냐고.. 게다가 이제 애도 좀 좋아졌으니 슬슬 복직해야 되지 않느냐는 말까지 했을 때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물론 속으로 화가 났지만 참았다. 어떤 말을 해봤자 싸움만 될 거고 서로의 감정만 상할 것 같아서다. 나도 차라리 출근하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일하느라 바쁘면 이렇게 자주 연락을 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딸이라서 더 편하게 대한다는 느낌말이다. 똑같은 자식이지만 친정오빠네에게는 이렇게까지 자주 연락을 하지 않는다. 며느리에게는 먼저 하기보다 보통은 오는 연락을 받는 편이고, 친정오빠는 아들이라 그런지 더 조심한다는 게 느껴진다. 자주 연락하지도 않는데 가끔 오빠에게 먼저 연락이 오기라도 하면 기뻐하시면서 나에게 자랑까지 한다. 좀 어이가 없다. 오빠네는 그렇게까지 자주 연락도 하지 않고 되려 기다리면서, 우리 집에는 한계를 정해두지 않고 끝도 없이 연락한다는 게. 나와 내 아이 일상이라 해봐야 특별히 숨길 것도 없는 평범 그 자체라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일일이 다 엄마에게 보고하고 싶지는 않다.


남편에게 이런 불만들을 하소연했다. 사위에게야 늘 다정하고 싫은 소리 하지 않으시는 장모님이니 같이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물론 이럴 때 남편까지 엄마를 비난한다면 더 속상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며, 그런 건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내가 대놓고 정확하게 표현을 해야 엄마도 인지하고 그만두던지 줄던지 할 거라고 하는데, 나도 그 말에 십분 동의했다. 동의는 하지만 막상 못하겠다. 그로 인해 발생할 갈등이라던지, 엄청나게 서운해할걸 생각하면 그 감정적 소모가 벌써부터 더 피곤하게 느껴져서 하고 싶지 않다. 사실 엄마도 이런 나의 감정을 약간은 눈치챘는지 내 폰으로는 전처럼 자주 연락하지는 않는다.


막상 친정집에 가서 엄마를 만나면 나도 마음이 약해진다. 늘 챙겨주려고 하고, 맛있는 거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하고, 사위와 손주에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엄마에 대한 이런 이중적 감정이 나조차도 낯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나를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가끔 만났을 때 보여주시는 사랑만으로도 충분하다. 매일, 매번 내가 살아내는 일상 모두를 사사건건 알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배은망덕한 나쁜 딸인 건가?


이렇게 자주 연락을 하고 손주의 목소리 한 번 더 듣고, 대화 한 번 더 나누려고 하는 것도 다 좋은 의도에서 나온거라는것을 잘 안다. 본인의 의도가 아무리 좋다한들 상대방과 주변 가족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면 좀 멈춰도 좋을텐데 몇 번이나 간접적으로 눈치를 줬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한 것 같다. 끊임없는 전화통화가 애를 더 좋아지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은데 또 상처로 받아들일까봐 그게 또 걱정이다.


어느 책에서 보니 어설프게 살 거면 차라리 이기적인 인간이 되라고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식의 이기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최우선적으로 돌보는 이기심 말이다. 스스로를 가장 아끼고, 정성 들여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내가 있어야 남이 있다고. 엄마는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긴하지만 결코 나 자신보다 소중하진 않다. 내 건강과 기분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어야 남을 돌보든 말든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말이다. 친정엄마의 감정보다, 나의 감정을 더 우선시하고 나 스스로를 더 돌보는데 에너지를 써야겠다.


전에 한 번 친정엄마에 대한 글을 썼다가 악플(?) 아닌 악플을 받은 적이 있어서 다시는 쓰지 않으려 했는데 또 이렇게 토해내고 말았다. 엄마, 미안하지만 우리 거리 좀 두자..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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