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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an 10. 2024

여자친구한테 얻어맞고 다니는 아들

때리고 다니는것보단 나은건가

우여곡절 끝에 초2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2학년을 보낸 1년이라는 시간동안 아이에게는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기특하게도 큰 탈 없이 끝내게 되어 홀가분하기도 하고 흐뭇한 마음도 든다. 학기중에는 친하게 지내던 남자친구와 갈등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등교거부까지 이어진적이 있다. 그러나 그 친구 엄마는 나와 아이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건넸고, 자기 아이도 변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동안 힘들었지만, 내 아이에게도 사회적 갈등상황에서 문제해결력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들이기에 그 상황들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의 갈등도 종결되고, 나름 안정된 학교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학기말이 되니 새로운 복병이 생겼다. 여자친구에게 갑작스런 고백을 받고 얼떨결에 사귀었다가 열흘도 안되어서 헤어진 적이 있다. 처음에 아이는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개념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덥썩 고백을 받아들였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 애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매일 연락을 하고, 놀이터 등에서 따로 만나고 해야하는 일들이 귀찮게 느껴졌던 것 같다.


게다가 그 여자친구는 아이가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여자친구들은 따로 있었는데, 아담하고 작고 성격이 조용하고 온순한 성향의 아이들이었다. 아이에게 고백을 한 여자친구는 그와는 정반대로 굉장히 활달하고 외향적이며 키도 더 크고 자기 표현이 분명한 아이였다.


어떻게 헤어지자고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아이가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하니 그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나중에 말해줘서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그 여자친구가 며칠후에 다시 고백을 하면서 또 사귀자고 했단다. 아이는 거절했다고 했다. 그 후로 복수가 시작되었다.


둘이는 짝꿍이었는데 가운데 선을 그으면서 이 선 넘어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학용품같은 물건이든 몸이든 약간만 넘어가면 곧바로 응징이 들어왔다. 학교폭력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손목을 때린다든가하는 식의 벌을 준 것 같다. 그 여자친구는 형제가 많은 집의 둘째 아이여서 그런지 맷집도 굉장했다. 나랑 같이 보드게임을 하다가 내가 져서 손목을 맞게 되었는데, 왠만한 어른보다 손이 더 매웠다. 몇대 맞고 나니 내 손목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남자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내 아이가 힘도 더 약하고 무게도 훨씬 덜 나가는것 같고, 만약 둘이 힘으로 대결한다면 질게 뻔한 싸움이었다.


한 달간의 짝꿍 기간만 참으면 된다고 아이를 달랬다. 내 생각에 둘이 사귀다가 헤어져서 괜히 더 심술 부리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 같았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듯, 앉는 자리가 멀어지면 덜 부딪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음 달에는 짝꿍은 아니었지만 앞뒤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후로 그 여자친구는 아이를 상당히 자주 괴롭힌 것 같았다. 학폭이라할만큼 심각한 수준은 절대 아닌것 같고, 아이가 젠가같은 보드게임을 하고 있으면 엎어버린다든가, 아이의 노트에 낙서를 한다든가, 가위바위보해서 꿀밤맞기를 해서 아주 세게 때리는 식으로 말이다. 뭔가 선생님에게 이르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당하고 있자니 아이 입장에서는 억울한 정도의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아이가 그 날 당했던(?) 일들을 하교후에 나에게 바로바로 말해줬다면 나도 뭔가 대책을 마련하고 담임선생님께 상담요청이라도 했을 것 같은데 아이는 시일이 한참 지난 후에 이야기했다. 갑작스레 억울한 일이 떠오른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행인것은 그 여자친구가 괴롭히는 대상은 내 아이만은 아니었고 반의 거의 모든 남자친구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심한 장난을 걸고 다닌다고 했다. 내가 걔한테 손목을 맞을 때에도 너무 아팠는데, 그런 야무진 손으로 친구들을 괴롭히고 다닌다면 당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물론 나는 그 상황에 없었고, 아이 입을 한 번 거친 이야기라서 다분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게 사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여자아이 입장에서는 두 번째 고백을 했는데 거절을 당하니 나름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초2라고 해도 여자애들은 확실히 아무 생각없는(?) 남자애들과 다르게 남녀가 사귄다는 개념에 대해 더 정확히 알고 있고 상당히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았다.


방학 직전 마지막 주에는 아이가 거의 매일같이 학교 다녀오자마자 그 여자친구의 만행을 일렀는데, 그냥 참기로 했다. 이제 학기도 거의 끝난 마당에 선생님께 말해봤자 별로 득될것도 없어 보였다. 하루만 더 참자, 하루만 더 견뎌보자 아이를 달래고 있자니 문득 어이가 없다. 어쩌자고 아들녀석이 여자친구에게 맨날 당하기나 하고 이렇게 약해빠졌는지 속이 상한다.


아들은 그 친구를 혹시 아파트에서 지나가다 만나면 나더러 크게 혼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는데, 알겠다고 꼭 그러마라고 호언장담 해주는척 했다. 어른에게는 예의바르고 공손한 모습을 보이는 그 아이에게 다짜고짜 혼낸다는 것도 웃긴 일이 아닌가. 혹시나 우연히 마주치면 알아듣게 잘 설명해줘야지 마음은 먹었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심각한 폭력이 아닌 이상 다른 집 아이를 붙잡고 훈육하고 뭐라고 하는 것도 아동학대로 신고 당할까봐 조심스럽다.


다행히 학기가 종료되었고, 아이는 그 여자친구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더더욱 행복해했다. 나도 홀가분하다. 그리고 아이는 제발 내년에 그 애와 같은 반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열심히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중이다. 하느님께 아이의 기도가 가닿기를 나도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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