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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an 28. 2024

병 안 나고 초등 방학을 견디는 법

삼시세끼 다 챙기지 마세요..

초등학생의 방학이란 곧 엄마의 고생길을 의미한다. 이는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시절에야 등원하지 않는 방학은 고작 일주일에서 길어야 열흘 정도였다. 그러나 초등학생 방학은 아니다. 여름방학은 그나마 좀 짧지, 겨울방학은 무려 두 달이다.


두 달의 방학 기간이 의미하는 바는, 두 달 동안 아이의 삼시 세 끼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현실이다. 처음엔 나도 별생각 없이 방학을 맞이했다. 평소에 뭐 아침, 저녁은 매일 챙겨다 바치는데 점심 한 끼 추가됐다고 뭐 얼마나 대수냐는 식이었다. 하루 종일 학원을 보내는 것도 아니라서 남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생산적으로 보내기 위해 같이 산책도 나가고 자전거도 타러 나가고 도서관도 다녔다.


뭐 대단한걸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애썼다. 더군다나 아이는 방학이라고 해서 따로 연락해서 만나서 놀 친구도 없었다. 오로지 내가 아이의 유일한 친구였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같이 놀이터에 나가고 같이 보드게임을 하고 책을 읽어주었다. 그러다가 방학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에서 신호가 왔다. 


작년 겨울방학은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어서 몇 년째 해오던 미라클모닝도 무너지고 말았다. 말이 좋아 미라클 모닝이지 6시쯤 일어나 다이어리 좀 쓰고, 스트레칭 짧게 하고 책을 잠깐 읽는 정도였다. 그래도 그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라 내 삶을 지탱해 주는 큰 힘이 되었다. 그런데 도저히 아침에 못 일어날 정도로 몸이 힘들었다. 결국 겨울방학 두 달 내내 아이랑 같이 늦잠을 퍼질러자버리는 게으름 그 자체의 삶을 살았다.


아이랑 늦게까지 자다가 겨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나서 나와 아침을 차려주고, 그날 하루의 일을 겨우 해치우면서 보내는, 자기 계발서 저자들이 보면 호통이 나올법한, 질질 끌려다니는 일상을 보냈다. 


그다음 해 여름방학에는 갑자기 온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났다. 며칠 동안 미칠듯한 가려움에 지옥을 다녀온듯한 경험을 했다. 약을 먹어도 그때뿐 또 무섭게 두드러기가 올라와서 주사와 수액을 맞고서야 겨우 나았다. 그때 피검사, 알레르기 검사까지 했지만 딱히 원인은 없었다. 그저 일시적인 면역력 이상 때문이라는 설명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애가 방학이라서 힘들어서 그런 건가..? 아이 방학을 맞이할 때마다 내 몸에는 어딘가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탈이 나서 견디기 힘들다는 신호 말이다. 약을 먹고 병원을 다니면서 겨우 좋아졌지만 컨디션은 당체 금방 좋아지지 않았다.


방학을 보내는 게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초등 아이의 방학은 생각보다 힘들다. 나만 힘든 건지 모르겠는데, 체력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영어, 수학 같은 학습학원은 보내지 않기에 해봐야 한 시간이면 끝나고 오는 학원을 다녀오고 나면 시간이 무한정 남는다.


애는 언어발달지연에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진단을 받았기에 그냥 방치하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나를 가만히 놓아두질 않는다. 유튜브에서 어떤 교육 전문가가 그랬는데 아이의 발달과 성장에 도움을 주려면 자연, 운동, 악기, 독서, 외국어 이 다섯 가지를 꾸준히 시켜주어야 한다고 그랬다. 다른 건 몰라도 독서, 자연, 운동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영역이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주고 싶었다.


자연이라고 해봐야 집 앞 공원, 천변 산책 정도지만 꼭 나가야 직성이 풀렸고,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를 붙잡고 책을 읽어주고 대근육 발달이 느리니 자전거라도 태워야 할 것 같아서 어르고 달래서 데리고 나갔다. 그러는 사이 나를 돌보지 못했고, 결국 그 끝은 병원행이었다. 물론 다행히도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방학을 이용해서 뭔가 아이의 발달을 한층 끌어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겨울방학은 덜 비장하게 시작하기로 했다. 남는 시간에 꼭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기 암시를 걸었다. 애 혼자 좀 놀게 내버려 둬도 된다고, 밥은 외식하면서 좀 사 먹여도 된다고 말이다.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다. 아이가 외식하고 싶다고 하면 점심은 단 둘이 나가서 사 먹는다. 웬만하면 원하는 메뉴로 사준다. 주중에는 돈도 절약하고 건강도 챙기기 위해 될 수 있으면 외식은 자제하는 편인데 방학 기간에는 예외를 두기로 한다.


남편 저녁 메뉴까지 챙기기는 힘드니 반찬은 맛있는 집을 찾아가서 사 온다. 대신 건강을 위한 야채샐러드나 간단한 국종류는 만들어준다. 원래도 요리를 즐겨하지는 못하는 주부지만 방학에는 더욱더 나에게 게으름을 허락한다.


아이도 하루 세끼 뭔가 만들어먹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한 끼 정도는 오뚜기 카레 레토르트를 데워서 해준다거나, 후리가케만 넣은 주먹밥으로 해서 먹인다. 남는 시간에는 굳이 싫다는 아이 데리고 나가서 자전거를 태우지도 않는다. 그냥 각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도 많다. 레고 조립하러 블럭방에 가고 싶다고 하면 기꺼이 데려다준다.


이래저래 많이 내려놓은 덕분인지 방학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나가는데 나는 아직 건재하다. 아침에 일어날 때 천근만근 몸이 무겁지도 않고, 갑작스러운 면역력 저하로 두드러기가 올라오지도 않았다. 하루 이틀로 끝날 방학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내려놓음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삶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아이도 소중하지만 그 소중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의 건강과 체력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나를 보살피고 지키기 위해서, 적당히 타협하면서 방학을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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