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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an 23. 2024

나는 너의 걱정을 먹고살지

평생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함

아이가 언어발달지연 소견을 받았던 유아기 시절, 내 자식과의 소통다운 소통은 제대로 해 본 기억이 없다. 유의미한 상호작용이니 의사소통이니 하는 것들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해서 나는 애 키우는 재미가 뭔지도 느끼기 어려웠다. 사실 아이 키우는 재미를 가장 크게 느낄 때는 애가 점점 말이 늘어나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말들을 늘어놓으면 엄마, 아빠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쭈글쭈글한 꼬물이로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랑 사람다운 대화가 가능해질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런 재미를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채 아이는 점점 커갔다.


그래도 언어치료를 받고 각고의 노력 끝에 발달도 조금 올라오면서 어설프게 소통이 가능해졌을 때, 뒤늦게나마 아이랑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할 수 있어서 기뻤다. 한창 대화가 안 되던 시절에는 자폐스펙트럼을 강하게 의심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아이의 공감능력이 제로였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거나, 몸이 안 좋아 아파서 누워있어서 엄마 아프다고 좀 오버스럽게 엄살을 부려도 아이는 도통 반응이 없었다. 자폐스펙트럼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데에는 사실 언어발달능력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볼 수 있는 공감능력의 부재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 아이에게는 언어적인 소통뿐만 아니라 감정이 오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최근에는 언어능력도 많이 좋아지고 감정의 소통도 그만큼 좋아졌다. 그걸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내가 아플 때 보이는 아이의 반응이다. 8살 초반까지만 해도 엄마가 아프다고 할 때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지속적인 치료와 교육 덕분에 인지적으로 걱정해야 할 상황인 건 아는지, 걱정된다고 말은 했지만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당히 달라졌다. 내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가야 된다거나, 두드러기가 나거나, 심하게 기침을 하느라 힘들어할 때면 가장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은 바로 내 새끼다.


어젯밤에도 급성 부비동염으로 자다가 구토가 나올 정도로 기침이 끊임없이 나왔다. 혹시 기침하다가 토라도 쏟아낼까 봐 변기를 붙잡고 콧물을 질질 흘리며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아이가 옆에 와서 어깨도 주물러주고 엄마 많이 아프냐고 계속 물어봐주고, 눈물까지 흘려준다. 남편도 와서 나를 봐주긴 하지만 뭐 엄청나게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다. 기침이 좀 심한가 보다, 정도의 반응일 뿐인데 내 새끼는 울면서 계속 안절부절이다. 엄마 아프면 안 되는데 어떡하냐고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 준다. 이러려고 내가 자식을 낳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든다.


내가 가진 유아기적 퇴행증상 중 하나라면 남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게 너무 좋다는 사실이다. 거의 행복을 느낄 지경으로 좋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나 자신이 아닌 이상 부모님도 남편도 자식도 엄밀히 보자면 남은 남이다. 내 몸이 힘들고, 내가 아프면 남편도 자식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고, 오로지 얼른 나아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특히 아플 때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충만해지는 마법을 경험한다. 혼밥, 혼영 등 나 혼자만의 자유를 즐기는 게 대세인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과의 연결을 갈망하고 추구한다.


병원에 가서 내가 치료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주사실에서 주사를 맞고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간호사선생님께 우리 엄마 괜찮냐고, 우리 엄마 주사 아프게 놓을 거냐고 물어본다. 주사실에 누워있는데 아이를 달래주는 간호사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 새끼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순간이 말로 표현 못할 만큼 흐뭇하고 만족감을 느낀다. 실상 아이는 불안하고 두려워서 그런 것인데, 그러든 말든 나를 생각해 주는 누군가의 감정적 소모가 반갑다. 그 힘을 받아서 금방 나을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집에 돌아와서도 멀쩡히 노는 아이를 붙잡고 "엄마 너무 아팠어. 주사 맞을 때 너무너무 아파서 죽는 줄 알아쏘." 짧은 혀소리를 내며 아이에게 엄살을 잔뜩 부린다. 그러면 또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이 되어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엄마 아프면 안 돼라고 말해주는데, 그 모습이 자꾸 보고 싶어서 자꾸만 애를 자극하게 된다. 나는 변태인가.. 나를 향한 진심 어린 걱정이, 그 마음 써줌이 고맙기도 하고 계속 보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사실은 그게 커다란 삶의 동기가 되고 자극제가 되는것 같다. 얼른 약 잘 챙겨 먹고 나아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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