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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an 22. 2024

아이 친구 초대, 나만 이렇게 스트레스인가요

사회성 키우기 진짜 힘들다

방학이라 시간이 널널해지고 여유가 늘었다. 늘어난 자유시간만큼 책도 좀 읽고, 도서관도 다니고 했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도통 관심이 없다. 아이가 최근에 꽂혀버린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랑 놀 시간만 손꼽아 기다린다. 사회성 발달이 늦어서 친구에게 말 한마디 걸기 힘들어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용 됐다 싶을 정도로 환골탈태 하긴 했지만, 그 친구관계란 그다지 평등하지 않다.


아이 친구 이름을 석구라고 하겠다. (실제로 그 친구 이름은 연예인 이름과 같다) 석구로 말할 것 같으면 거의 놀이터 죽돌이라고 해도 될 만큼 놀이터에서 최장시간 머무는 아이로, 다니는 학원이라고는 태권도뿐이다. 그래서 학원 오며 가며 시간적 여유가 되는 아이들과 돌아가면서 노는 게 일이다. 외향적인 데다가 처음 내가 가졌던 편견과 다르게 성격도 모나지 않은 편이라 대부분의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이렇게 친구가 많고 잘 놀줄 아는 사회성 좋은 아이(?)가 내 아이와 어울릴 일은 없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 우연찮게 석구랑 몇 번 어울리게 되었다.


석구는 키가 작고 체격도 동글동글한데 대근육이 어찌나 잘 발달되어 있는지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애들 놀이 중 가장 흔한 잡기 놀이를 할 때면 어찌나 날렵하고 빠른지 술래가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기는 아이였다. 그에 반해 내 아이는 술래가 되면 달리기가 느려서 한정 없이 혼자 술래를 도맡아 하다가 결국에 울고 화내면서 징징대니, 다른 남자아이들은 이런 내 아이를 보고 어이없어하면서 좀 이상한 애라는 눈빛을 발사한다. 그 눈빛들은 내 가슴을 참 저리게한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석구는 놀 친구들이 별로 없을 때 내 아이랑 나름 재미있게 어울렸고, 그 후로 아이는 석구의 매력에 푹 빠져서 매일 석구 타령이었다. 방학이어도 아침밥만 먹고 나면 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 하나 끌고 나와서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였다. 석구 엄마는 애를 방치하는 건지, 점심을 먹겠다고 따로 집에 가지도 않았고 집에서 연락이 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가끔 늦은 오후면 부모님께 집에 오라고 전화가 오는 걸 봐서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지 않은데 요즘 같은 세상에 좀 신기하다 싶긴 했다.


실제로 석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점심을 따로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도 않고, 만약 배고프면 애들이랑 편의점 가서 컵라면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내 아이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상이었다. 혼자 하루종일 밖에 내보내서 누구랑 어디서 밥을 해결하든지 아무 관심 없이 키울 수 있는 아이라니.. 세상에 이렇게 편하게 육아를 하는 부모도 있구나 싶어서 질투까지 났다. 물론 아이가 워낙 똘똘하기도 하고, 야무진 데다가 독립적이어서 혼자서도 알아서 잘 다니기 때문일 듯했다.


알고 보니 같이 어울려 노는 또래 중에는 이렇게 엄마가 서너 시간 정도는 밖에서 뭐 하고 놀든 그냥 두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약간 충격이었다. 나만 이렇게 애를 손에 끼고 다니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챙기고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 식모 노릇을 하나 싶었다. 애가 워낙 느리기도 했고, 혼자 나다니게 두기에는 아직 여러 가지로 마음에 걸려서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걔네들처럼 자유롭게 어울려 다닐 친구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어찌 됐든 그 밖에서 장시간 잘 노는 무리의 석구파 아이들과 한 두 번 어울리더니 아이는 그 매력에 홀딱 빠졌다. 날이 너무 추워서 밖에서 놀기 어려운 날이라 한 번은 그 녀석들을 우리 집으로 불러서 논 적이 있었다. 워낙 활달하고 몸을 쓰며 노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집에서도 시끌벅적하면서 까부는 분위기라 오래 데리고 있는 건 아니다 싶었다. 한두 시간 놀게 하다가 라면 끓여서 먹이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아이는 그 석구무리와 논게 너무나도 즐거웠는지, 그 친구들을 또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좀 불편했다. 그 아이들은 시쳇말로 초2학년에서도 일진이라 불릴만한 녀석들이었다. 운동도 잘하고 잘 까불기도 하고, 심한 장난을 치다가 선생님께 불려 가서 종종 혼나기도 하는 아이들 말이다. 지금은 아직 어려서 그런 게 드러나지 않지만 왠지 중2정도 되면 눈에 띄는 일진(?)이 되지 않을까 예상되는 분위기를 지녔다. 물론 일진이라고 해서 공부도 내팽개치고 까져서 놀기만 하는 건 아니고, 공부도 어느 정도 하면서도 또래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긍정적인 느낌의 일진이 될 가능성도 높다. 아직은 예단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런 아이들이다. 사회성이 매우 잘 발달되어서 내 아이랑은 비교도 불가한 정도다.


그 친구들을 또 불러서 집에서 놀고 싶다기에 나는 너무 내키지 않아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뤘다. 아이는 울면서 매달렸다. 만성 도파민 결핍이라 항상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ADHD 특징 탓인지, 한 번 꽂힌 일은 어떻게든 관철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그 자극이 다른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저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한 번쯤 어울리고 싶다는 것이니 계속 거부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고 마침 눈도 오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날이라 놀이터에서 놀기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 석구 무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아이는 한없이 신이 나서 행복해했다. 하지만 놀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답답했다. 아이와 석구 무리는 평등한 관계가 아닌 듯했다. 내 아이가 좀 만만하기도 하고, 말도 유창한 편이 아니고, 하는 행동도 좀 유아기스러운 특징이 있으니 금방 간파하고 무슨 놀이를 하든 은근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이끌고 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래도 본성이 아주 나쁘고 질이 안 좋은 녀석들은 아니기도 하고, 내가 있어서 눈치는 있는지 아예 아이를 무시한다거나 불리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작은 틈을 간파할 수 있었다.


하필 학원 스케줄도 가장 여유로운 데다가 바깥 날씨까지 좋지 않아서 한두 시간만 놀 줄 알았던 시간은 점점 늘어서 세 시간, 네 시간을 거의 넘어갔다. 점심밥까지 챙겨줘야 했다. 내가 드는 의문 중 한 가지는 그 석구 무리의 엄마들은 애가 밖에서 누구 친구 집에 가서 노는지,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보통 10살 아이들은 원래 이렇게 놀리는 건데, 내가 보통 아이를 안 키워봐서 모르는 건지 좀 헷갈렸다. 집에 있는 반찬에 떡갈비를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서 밥을 챙겨 먹였다. 그마저도 노는데 정신을 쏟느라 다들 다 먹지 않고 절반은 남겼다.


집에서 노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의 스트레스 지수도 점점 올라갔다. 이제 그만 놀고 다들 집에 좀 가주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집이 놀기 좋은지 숨바꼭질이며 베개싸움이며 아주 신나게 하면서 놀이가 멈출 줄 몰랐다.


내가 스탑 시킬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장 즐겁게 노는 애가 바로 내 아이였기 때문이다. 외동이기도 하고 자유 시간이 넘쳐나는 방학 동안 늘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애가 오래간만에 활달한 친구들이 집에 와서 왁자지껄하니 못 견디게 행복한 듯 시종일관 입이 귀에 걸려 웃고만 있었다. 은근히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좋다고 아이들이 이끄는 대로, 혹은 시키는 대로 성실히 놀이에 참여 중이었다.


그래, 오늘 하루만 참자. 기왕에 큰 마음먹고 초대했으니 오늘 하루만 참자고 계속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과하게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만 몇 번 제지하고 나머지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 노는 모습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갖게 된 나의 습관이다. 사회성이 느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또래 아이와 말을 섞고 상호작용 하는 장면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려는 습성을 나도 모르게 탑재하게 된다. 혹시라도 내 아이에게 너무 과하게 대하는 건 아닌지, 그럴 때면 나라도 개입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날 선 상태로 안 보는 척하면서 보고 있게 되는 것이다.


노는 시간이 무려 네 시간이 넘어가자 점점 더 견디기 힘들었다. 갑자기 애한테도 화가 났다. 어쩌자고 이런 아이들한테 꽂혀서, 그것도 집에 초대하게 만들어서 집안을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게 하는 건지 왜 나만 이런 희생을 참고 견뎌야 하는 건지, 언제까지 애 사회성 키우겠다는 명목으로 이런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건지.. 사회성 느린 내 아이 때문에 내가 참고 견뎌야 한다고, 이렇게나마 어울릴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자꾸 나를 다독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시간은 흘러서 드디어 다들 학원에 갈 시간이 되었고 폭발 직전(?)에 아이들을 내쫓을 수 있었다. 애들이 가자마자 나는 참고 있던 화를 아이에게 표현하고 말았다. 이제 만족하냐고, 석구무리들이 와서 집 난장판 만드니까 좋으냐고, 맨날 걔네들 초대해서 엄마 힘들게 할 거냐고, 이제부터 엄마 정리하고 쓸고 닦고 청소해야 한다고,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잘 놀고 한껏 업되어있었던 아이는 당황한 표정일 짓고 멍하니 서있다.


에고 그래, 네가 행복했으면 됐지.. 가장 좋아한 건 내 아이인데 내가 왜 이런 불평을 하고 있는지.. 어설프게라도 그 잘 나가는 친구들과 잠시나마 어울린다는 사실에 감사는 못할망정.. 급 반성을 하고 아이도 달래주며 마무리했다.


그래도 석구 무리는 당분간 초대하지 말아야겠다. 태생이 깔끔하지도 않고 매일 청소를 하는 것도 아닌 나는 웬일인지 다른 애들이 와서 집을 좀 어지르면 그게 못 견디게 싫다. 한시라도 빨리 내쫓고 정리를 해서 제 모습을 갖춰놓게 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내가 좀 강박증이 있는 건가? 다른 엄마들은 애 친구들이 놀러 와서 좀 어질러도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 같은데.. 다들 이러고 사는 건데 나만 좀 예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 사회성은 늘려야겠고, 나의 타고난 본성은 맞추기가 힘들고. 과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밸런스라더니, 밸런스 맞추기가 참 힘들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석구 무리가 내 아이를, 우리 집을 호구로 여기는 것만은 아니기를.. 추운 날 그냥 쉬어갈 수 있는 만만한 친구집이라고 여기지만 않았으면 한다는 점이다.

휴우..겨울 방학이 참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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