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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an 20. 2024

결국 항생제에 굴복하게 될것을

병원 데리고 갔더니 축농증, 후두염, 중이염이라고요

겨울이 시작되고 날이 쌀쌀해지면서 아이의 콧물과의 전쟁도 시작되었다. 만성비염 앞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코세척기를 사서 매일 아침 양쪽 코에서 한 바가지씩 콧물을 뽑아냈다. 이 작은 코에 이렇게나 많은 콧물이 생성된다는 사실에 매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일종의 쾌감도 느끼면서 코세척을 시켰다.


원적외선으로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치료 가능한다는 가정용 비염 치료기도 사서 하루 세번 부지런히 해주었다. 가습기도 좀 오래된것 같아 큰 마음 먹고 새걸로 장만해서 매일 세척하면서 깨끗하게 관리해주고 있다. 영양제도 부지런히 챙겨 먹인다. 방학이 시작되면서 외식이 좀 늘어나긴 했지만 나름대로 집밥을 해서 먹이려고 신경쓰는 편이다.


그런데도 아이의 비염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고, 좀 소강되었다가 심해졌다가를 사이클 돌듯했다. 우리 동네 이비인후과는 진료를 잘 봐주시지만 일단 갔다하면 무조건 항생제가 처방된다. ADHD 약물 복용에 관해 공부하다보면 감기약의 일종인 항히스타민제가 ADHD 대표적 치료 약물인 중추신경자극제를 함께 복용하면 맥박이 빨라지거나 혈압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과잉행동을 유발하기도 하니 조심해서 복용시켜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ADHD 약물이 뇌에 작용하는건데 감기약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어서 두 종류의 약을 동시에 복용시킨다면.. 아이의 몸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극히 확률이 낮은 부작용이라고해도 그 대상이 내 아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후로 왠만하면 감기약을 먹이지 않으려고, 특히 항생제 복용을 피해가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민간요법이든 전반적인 건강관리든 내가 할 수 있는건 다 해서 아이를 콧물로부터, 비염으로부터, 감기로부터 지켜보려고 했다. 결정적으로 마스크 착용이 조금 느슨해지긴 했지만 실내 공간에 다른 사람들과 많이 접촉하는 학원같은데 갈 때는 착용시키려고 했다. 물론 백퍼센트 지키지는 못했다.


최근 며칠동안 아이의 콧물은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고 나는 더욱 부지런히 코세척을 시켰다. 코세척을 많이 하면서 코를 많이 풀게하면 중이염이 올 수도 있다고는 했는데, 일단 코가 너무 막혀서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면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기침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제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하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가봤자 어차피 또 항생제 복용을 하게 될텐데.. 내키지 않았다.


잘못된 편견 혹은 믿음일지도 모르지만 가끔씩 발달장애 책을 보다보면 영유아기에 지나친 항생제 복용으로 발달지연문제를 겪은 사례들이 아주 가끔 나와 있었다. 어떤 학자들은 항생제를 자폐 스펙트럼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정확한 연구결과는 아니지만 읽다보면 아주 말이 안되는 소리는 아닌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도 어려서 아파서 병원에 갈 때마다 어김없이 항생제를 처방 받았고,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성실하게 먹여왔다. 항생제 때문에 아이 발달 문제가 생긴게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왠지 모를 두려움이 생긴건 사실이다. 그래서 왠만하면 항생제 없이 가벼운 시럽약으로 먹이면서 감기를 이겨내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제밤부터 아이의 증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코막힘은 코세척으로도 되돌릴 수 없을만큼 심해져서 한쪽코가 꽉 막혀서 숨쉬기 힘들어했고, 기침의 횟수도 더 잦아졌다. 밤에 잘 때는 폐병환자처럼 기침을 너무나 심하게 하는 바람에 나는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잠을 설칠정도로 심하게 하는 아이의 기침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괴로워졌다. 지역맘카페에 기침, 폐렴, 유행바이러스, 아동병원입원 등을 검색해보느라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후회됐다. 그냥 적당히 아플 때 병원에 데리고 갈걸.. 뭐한다고 애를 항생제 좀 안 먹여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다가 이 지경으로 만든건지. 이 정도로 심한 기침이면 폐렴일지도 모르는데, 아이 병을 키운 무식하고 못난 엄마가 된 패배자의 기분이 나를 지배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비인후과로 애를 데리고 달려가리라 다짐하면서 잠들었다. 아이의 기침 소리와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주 기분 나쁜 이상한 꿈이 뒤섞인 상태로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8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우리 동네 이비인후과는 8시 반에 가도 이미 대기중인 사람으로 인산인해인데 큰 일 났다. 늦잠을 자버렸으니. 씻지도 않은채 대충 옷만 갈아입고, 기침하다 자느라 지친 아이를 깨워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병원에는 아픈 환자로 북적북적하다.


원장선생님은 아이 코와 귀와 목을 자세히 보시더니, 후두염에 축농증에 중이염까지 있다고 하신다. 어린 아이들은 이런 증상이 같이 동반하는 경우가 흔하다고는 하시면서 능숙하게 약을 처방해주셨다. 집에 오자마자 밥을 먹이고 약봉투에 쓰인 용량에 맞춰 약을 먹였다. 물론 항생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 결국 이렇게 먹이고 말것을.. 뭐가 잘났다고 병원에 바로 안가고 미적대다가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린건지.. 나 참 못난 엄마다. 속상하기도 하고, 그 동안의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간거 같아서 괴롭다.


미세먼지 탓일수도, 추운 날씨 탓일수도 있다. 이건 내 탓이 아니다. 환경 탓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남탓으로 돌려보기도 하는데, 그리 위로는 되지 않는다. 워낙에 유리멘탈이라 그런지 아이가 아파서 힘들어하면 다 내 잘못인것같아서 힘들다. 집에 있는 화분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해서 멀쩡한 식물을 여럿 죽여놓고, 무슨 배짱으로 아이를 낳아서 키울 생각을 한건지. 나는 애초에 남을 양육할 수 있는 엄마의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처방 나온 일수만큼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열심히 약을 먹여야겠다. 더 큰 병으로 키우지 말고, 열심히 약이나 먹이자. 니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안되는 것도 있는거다. 그냥 포기하고 병원 부지런히 데리고 다니고 열심히 약 먹여서 병이나 키우지 말아라.. 나 자신에게 주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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