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Dec 14. 2023

학부모 모임 부적응기

feat. 한껏 쪼그라든 자존감

계속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정기 모임에 빠졌다. 딱 두 번 이 모임에 참여했고, 뭐 나쁘지 않았다. 처음 가본 독서모임에서 같은 책을 두고도 사람들마다 느끼는 점도 다르고, 감동받는 포인트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동네에 살며, 같은 학교를 보내는 공통분모가 많은 학부모들이지만 각자의 감정과 생각은 그 공통분모를 무색게 할 만큼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런데 나는 뭔가 불편했다. 새로운 자극을 얻어보겠다고 나간 이 모임이 왜 이렇게 불편했을까.

그 원인이 무엇인지 며칠간 골몰이 고민하는 중이다.


첫 번째 원인은, 내가 중간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처음 모임이 결성될 때인 학기 초는 놓쳤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 몇몇 분의 권유로 가입하게 되었다. 뒤늦게 들어간 만큼 그들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한 학기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미 친분이 형성되어 있었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언니, 동생의 사이로 불릴 만큼 그들은 가까워 보였다. 서로 반말을 하면서 대화가 오가는데, 처음 간 나는 다짜고짜 말을 놓을 수도 없고 나이를 확인하기도 그래서 계속 존댓말을 사용했다. 이미 그 부분에서 관계의 간극이 느껴졌다. 그나마 내가 중간에 들어가서 부적응했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외부적 요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진짜 원인이 이것이라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서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두 번째 원인은, 내가 내향적이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단순히 책만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두 시간의 모임 후엔 같이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는 등 아이들이 하교하기 직전까지도 그 모임은 이어졌다. 그야말로 아침부터 오후까지 하루종일 함께하는 거였는데, 이 또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 나는 그다지 편하지 않은 사람들과 반나절 이상 대여섯 시간을 함께하는 게 힘들었다. 기가 빨리는 느낌, 에너지가 소진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극 내향적인 사람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나는 내향과 외향을 왔다 갔다 하는 그야말로 애매모호한 영역에 자리 잡은 유형으로 나온다. 내향성, 외향성이라고 해봐야 50퍼센트를 겨우 넘는 정도로 결정되는 걸 보고 나는 상황에 따라 좀 유동적일 수 있는 성향이 아닐까 판단했다. 그래도 여태껏 살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크게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어느 집단을 가든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현재의 나는 친구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결혼식에 30명에 가까운 친구들이 온 걸로 봐선 한 때는 친구가 많았다. (물론 그중에 지금은 연락 안 하고 지내는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지만.) 그 모임에 좀처럼 적응하진 못하는 나 자신을 보고, 사회성 치료 수업을 받아야하는건 아이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 번째 원인은, 특히나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가장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터놓고 하는 순간은 바로 센터 대기실 엄마들과 함께할 때이다. 서로의 아이들 상태와 부족한 점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대화가 자연스럽다. 이 분들과도 처음부터 친했던 것은 아니다. 나이도, 직업도 다르고 성격도 별로 닮은 점이 없는데 우리가 가진 유일한 공통분모는 단 하나, 조금 남다른 아이를 키운다는 점이고 그 사실이 우리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강력한 동기 중 하나라고 본다.


나는 애가 한 명이지만 그분들은 두 명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래서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른 형제는 굉장히 똑똑하고 공부를 잘해서 영재원에 다니고 경시대회 준비에 늘 바쁘거나, 또 다른 아이는 언어 발달이 굉장히 빠르고 사회성이 뛰어나서 어딜 가든 뛰어난 친화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향이 다른 두 자녀를 키우는 분들이라 그런지 양육에 관한 관점에 대해서도 내가 은근히 듣고 배우는 게 많다.


그날의 그룹 수업에서 누가 더 뛰어난 수행을 보였는지, 누가 더 못했는지에 따라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나는 이 분들과 함께 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가장 지금의 나 자신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


물론 센터 학부모들 말고도 아이 어린이집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는 엄마들이 있다. 그런데 그 엄마들도 자세히는 아니지만 내 아이가 좀 느려서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은 초반에 이야기를 해서 알고 있다. 아주 가끔 만나는데, 대부분 그 이야기는 나에게 대놓고 물어보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좀 편하기도 하다. 그래도 다들 교육에 열정적이고 관심이 많은 엄마들이라 이질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이 엄청 불편하지는 않다.


왜 그 학부모 모임이 그렇게도 불편했을까, 되새겨 보면 그들은 내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고 (알 필요도 없고 오픈할 생각도 없기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3-40대의 학령기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만나서 하는 이야기 중에 80퍼센트 이상은 아이들 이야기가 차지한다. 자녀의 학교 생활, 사교육 스케줄, 교우 관계 등이 대화의 주된 주제가 되는데 나는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할 말이 없었다. 일반적인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심각하게 현타가 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른 원인을 꼽아보자면, 이미 그 학부모모임 내에서 아주 친하게 지내는 몇몇 무리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분들은 이 모임이 아니고서도 같은 필라테스 운동에 다니는 등 따로 자주 만나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보기에 그 사람들은 나 빼고 모두 외향적인 것 같고 그야말로 인싸의 성향을 지닌 듯 보였다. 딱히 그 사람들이 나에게 선을 그은 것도 아니고 냉대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저 나 혼자서 이질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어쩌다가 나는 이런 사교계 모임의 부적응자가 된 걸까. 조금 느린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자존감 저하가  내 사회성과 친화력까지 축소시킨 걸까.


마지막 결산 모임과 송년회가 또 있다는 공지를 받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 날짜에는 별다른 일정도 없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참석할 수 있다. 그런데 내키지 않았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동네 엄마들 사회생활에 도태되어 남편과 애만 바라보고 사는 인간이 될까 봐 조바심도 든다. 다들 운동도 하고 모임도 하고 커피 타임도 가지면서 잘 어울리고 모임에 소속되어 지내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답답하게 살고 있나. 그렇지만 내키지 않는 일을 굳이 하면서까지 그 모임에 소속되고 싶지 않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가입을 말던가)


결국 연말 모임엔 참석하지 않기로 하고 그 뜻을 전달했다. 마음은 한결 편하다. 그런데 실패감이 나를 옥죄어온다. 적응 못한 거구나. 넌 부적응자야. 넌 실패한 거야. 이런 목소리가 자꾸 내면에서 들려온다. 단순히 동네엄마들 모임은 아니다. 그랬다면 더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학부모회라 체계도 있고 나름대로 규칙도 있다.


모임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것도 실패라고 볼 수 있나? 그렇다면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나라는 인간을 별로 반기지 않는 집단도 있다는 사실을, 혹은 내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앞으로 독서는 어디 나가서 사람들과 할 생각 말고 혼자 하고 혼자 블로그에 끄적이는 걸로 만족하자. 끝났다. 문제 될 거 없다. 금전적 손해를 본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가 틀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속상하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 성격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든건지, 애초에 그들처럼 외향적이고 친화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내가, 그럴 노력도 열심히 하지 않고 조용히 도망치듯 모임을 나와버린 내가 한심해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사랑스러워 보이는 의외의 순간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