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Feb 17. 2024

자식 걱정은 관에 들어가야 끝난다

정말 그러하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식 걱정을 달고 살게 된다. 신생아 때는 혹시라도 애가 나의 부주의와 무지함으로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건 걱정보다 더 무서운 두려움에 가까웠다. 신생아 시기를 시작으로 해서 여태 단 한순간도 자식 걱정을 안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조금 발달이 느리고 남다른 문제를 안고 있기에 다른 평범한 엄마들보다 더 근심걱정도 많고 더 슬퍼해야 할 일도 많고 조마조마해야 할 일도 많고, 아무튼 남들보다 더 괴로운 삶을 사는 게 내 숙명이라 생각했다. 이걸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피해의식이다. 


하지만 평범하고 정상발달인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과도 대화를 해보면, 항상 나의 걱정과는 비교가 안된다면서 속으로 무시하기 일쑤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걱정거리가 많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중에 하나는 키와 몸무게에 관한 것이다. 

키성장에 대해서 이토록 관심이 지대한지 잘 몰랐다. 친가 쪽이 키가 좀 작은 편이라 나도 은근 걱정은 되었다. 게다가 adhd 약물 복용을 시작했을 시기에는 부작용 목록 중에 성장저하라는 말을 보고 엄청나게 절망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성장 현황을 보면, 다행히(?) 키와 체형은 정상범주에 있다. 뭐, 180 이상의 장신이 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170 이하의 단신은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따로 키 성장 검사를 받고 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만나보면 정말 공통적인 주 관심사 중에 하나가 바로 키에 관한 것이다. 키가 너무 큰 것보다는 남들보다 작아서 문제일 때가 많다. 비단 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래보다 눈에 띄게 작은 여자친구들은 성조숙증 관련해서 따로 검사를 받으러 다니는 걸 봤다. 


내 아이에 관한 걱정 목록 중에 키는 없어서 다행인가 싶었다. 아니, 감사해야 하나 싶었다. 수많은 걱정거리 중에 하나를 덜어주었으니 그 점은 감사하자고 생각하기로 했다. 유명하다는 키 성장 전문 의사를 찾아가서 미래 잠정적 키를 예측해 보고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힐까 고민하는 부모들도 상당히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비용도 과정도 쉽지 않기에 부모에게 작은 일은 아니다. 


친구는 아이가 항상 뚱뚱해서 걱정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딱 적당히 보기 좋을 정도로 통통한데, 자꾸 뚱뚱해서 큰 일이라고 다이어트를 시켜야 하는데 아이가 먹성이 너무 좋아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한다. 


그에 관해서는 나는 또 별로 해줄 말이 없다. 내 아이는 반대로 저체중이고 먹는 것에 비해서 살이 너무 안 쪄서 고민이기 때문이다. 비만이 될까 봐 걱정하는 엄마에게 살이 안 쪄서 걱정이라는 소리를 하는 건 좀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예 입을 닫고 대신 들어주려고만 하는 편이다. 



나에게는 전혀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 일을 걱정하고 있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아, 지금까지 내가 아이 발달 문제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면서 토로했을 때 이 친구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겠구나." 


아무리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당장 본인의 아이에게서 발달 문제가 없고 그에 관해 관심도 아는 바도 없다면 뭐라 해줄 말이 없었을 것이다. 친구는 항상 나에게 점점 좋아질 거라고,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비슷한 말을 해주었다.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너무 아이에 관한 걱정을 늘어놓지 않기로 했다. 


아이 발달 문제 이야기는 발달센터 대기실에서 만나는 엄마들과 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가족 같은 사이라고 해도 본인이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면 같이 걱정해 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남의 자식 걱정에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도 상당히 고민되는 부분이다. 


다니는 한의원은 키성장 치료가 대표적인 진료 영역 중 하나다. 가끔 앉아서 보고 있으면 부모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게 보인다. 다들 하나같이 엄청나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의 식단과 건강상태, 성장 환경 등에 대해서 간호사에게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가 정신적, 인지적으로 발달이 정상이라면 키 좀 작은 게 무슨 대수라고. 차라리 키는 좀 작아도 좋으니 또래처럼 대화도 되고 소통도 됐으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안일한 생각을 내가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자녀의 키가 삶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가 황소 수학 학원 레벨테스트에서 탈락한 게 세상이 끝날만큼 슬픈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걱정과 좌절 크기가 내 걱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거라고, 대수롭지 않은 거라고 대체 누가 무슨 기준으로 판단한단 말인가. 내 사고가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이었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걱정거리가 있다. 더군다나 자식에 관해서는 정상발달이든 아니든 간에 키우면서 다양한 문제와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고, 밤잠 설쳐가며 걱정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내가 가장 큰 짐을 지고 있다고,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힘들 거고, 나만큼 힘든 사람은 없을 거라는 피해의식은 이제 좀 버리자.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장성해서 시집, 장가보낸 사십넘은 자식들 걱정에 또 그 손주들 걱정까지 하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이 걱정이란 모든 부모가 삶을 끝내는 순간까지 안고 가야 하는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자식일 앞에 쿨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부단히 연습하고 노력하면서 자식 걱정 앞에서 초연하기 위해 나를 단련시키고 더 단단해지는 수밖에 없다. 남의 걱정을 비하하지도 말고, 내 걱정을 너무 부풀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말 자식은 등골브레이커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