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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Sep 18. 2023

너 사회성 걱정이나 하세요

매일 아들 사회성 걱정만 하던 엄마의 고백

학부모 독서모임에 가입한 건 순전히 아이 때문이었다. 독서모임에 가입해서 함께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시각을 공유하면서 내 영혼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그런 발전적인 목적 따위 없었다. 독서모임이 한 달에 한번 아이가 다니는 학교 도서관에서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아이를 잠깐 만날 수 있다.


보통 저학년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오면 엄청 반가워한다. 맨날 집에서만 보던 엄마를 자신이 생활하는 영역에서 만난다는 게 신기한지 아이들은 독서회 모임 중인 엄마에게 짧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와서 꼭 붙어 있다 간다고 했다. 내 아이도 학교 생활을 무리 없이 잘 적응한다면 그런 학부모회 모임은 전혀 관심도 없었을 터이다.


쉬는 시간에 놀 친구도 없고, 먼저 다가가서 편하게 놀자고 말할 용기도 나지 않는지 아이는 늘 종합장에 그림만 가득 그린다. 하교 후에 가방을 확인해 보면 쉬는 시간에 그린 그림들이 여러 장 쏟아진다. 속상하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하루에 서너 번씩 아이가 혼자 보내야 하는 그 쉬는 시간에 엄마 만나러 온다는 명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엄마가 학교 도서관에서 학교에서 운영하는 공식적인 학부모회 모임에 있으니 만나러 오는 건 아이에게 쉬는 시간을 외롭지 않게 해 줄 매우 그럴싸한 핑곗거리다.


막상 독서회에 가입 신청을 해놓고도 해외여행, 개인 일정으로 겹쳐서 참여를 못했다. 초반에 두세 번 빠지고 나니 갑자기 들어가기가 좀 민망해졌다. 회장엄마에게 그냥 가입 취소를 하겠다고 했다. 회장님은 여러 번 빠졌어도 괜찮다며 언제든 들어와도 된다고 마음 바뀌면 연락 주라고 편하게 대해주었다.


독서회 활동하는 엄마들의 아이들도 그걸 계기로 더 친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의 학교에서의 생활이 궁금하기도 하고, 동네에서 만난 몇몇 엄마들이 왜 가입 취소했냐고 오라고 성화였다. 큰 마음먹고 가기로 했다.


책은 혼자 읽는 걸 좋아하고 나란 인간은 대학 때부터 동아리는커녕 나 스스로의 의지로 어떤 모임이나 동호회에 가입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사회에 나와서도 배드민턴, 등산, 와인 동호회에 활동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기존에 알던 사람들, 만나면 편한 친구들만 만나서 놀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모임이라는 것에 가입해서 들어가 본 건 이번이 처음인지라 적잖이 긴장이 되었다. 미리 소개할 책을 읽어오라는 공지를 보고, 괜찮은 자녀교육서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신중하게 골라서 읽고 요약했다. 그리고 발표할 내용을 다이어리에 정리했다. 가기 전날부터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고 긴장이 됐다.


옷도 평소에 동네 다닐 때보다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입고 책과 다이어리 그리고 볼펜을 챙겨 넣어 나갔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도서관은 처음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쾌적했다. 최근에 리모델링해서 더 깨끗해졌다고 한다.


모임엔 아는 얼굴도 몇몇 있어서 편하게 인사를 했다. 한두 명씩 들어올 때마다 서로 굉장히 반가워하면서 인사를 한다. 호칭도 이미 "OO언니~"라고 부르는 사이다. 이렇게 친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가 오가는 걸 들어보니 한 달에 한 번 독서회 모임에서만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다는 걸 눈치챘다. 그중에서도 친한 사람들끼리 따로 자주 만나기도 하고, 여름에는 애들까지 데리고 같이 물놀이도 갔다고 했다. 독서토론 말고도 학부모 관련 행사도 여러 번 주최하고 참여한 적도 있는 것 같다.


한 마디로 그들끼리 이미 엄청나게 친한 사이다. 나는 이곳에서 철저히 이방인 같다. 물론 그날 가입하고 처음 참석한 분도 있었지만, 그분은 굉장히 외향적이고 거리낄 것 없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았다. 금방 대화의 흐름에 합류해서 맞받아치고 웃고 떠드는 눈치다. 그에 반해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첫 만남에 너무 내 얘기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조용히 입 다물고 있기도 불편했다. 특히 이전에 만나서 함께 했던 이야기들이 나올 때마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도 내가 읽은 책 소개를 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서 임했다. 약간 긴장되기도 했지만 다들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공감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소개하는 책 내용도 흥미로웠다. 평소에 잘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을 소개했는데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나중에 따로 꼭 읽어봐야지 다짐했다.


아이들 쉬는 시간이 되자 회원 엄마들의 아이들이 조용히 도서관으로 엄마를 만나러 왔다. 내 아이도 나를 보고 말도 못 하게 반가워한다. 아이는 너무나 반가워서 되려 더 표현을 못하고 그냥 자꾸만 나를 안아준다. 별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안아주라고만 한다. 두 번의 쉬는 시간에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오늘 두 번의 쉬는 시간은 그래도 외롭게 보내지 않아서 다행이다.


길다면 길었던 두 시간이 금세 흐르고 마칠 시간이 되었다. 휴우 드디어 해방이다! 낯 가리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집에 가서 쉬어도 되겠다! 그런데 갑자기 점심 메뉴를 의논하는 분위기다. 으레 그랬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자주 가던 곳에 누군가 능숙하게 예약을 하고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이미 두 시간여 동안 처음 참석한 불편한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예의 갖춘 가식적인 미소와 적정선의 리액션으로 내가 가진 사회성 스킬을 다 써버린 상태였다. 이제 벗어나서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 명이라도 빠진다고 했으면 저도 일이 있어서 하면서 그 자리를 나왔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백 퍼센트 다 점심식사로 향하는 분위기였다. 혼자 집에 가겠다는 용기가 나지 않고, 어차피 집에 가봤자 점심은 또 따로 내가 차려서 때워야 하기에 일단 따라나섰다.


열댓 명을 위한 테이블 세 개가 예약석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누구랑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는가도 상당히 신경 쓰였다. 제발 나랑 친분 있는 분들만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기를 바랐다. 다행히 한 분은 그래도 친분이 있었고, 한 분은 얼굴은 친숙하지만 말은 섞어본 적 없는 엄마였다. 두 분 다 워낙 말주변도 좋고 분위기를 유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어서 나는 적당히 대답만 하면서 열심히 밥 먹는 데에 집중했다. 나머지 두 분은 아이들 교육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밥도 천천히 먹는데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서인지 금방 한 그릇을 먹어치워 버렸다.


특히 아이가 요새 누구누구와 어울린다더라, 어느 반은 누가 인기가 있고, 벌써 커플도 생겼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더 나설 수가 없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내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이슈에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나에게 말해준 적도 없다. 그저, 초2 보통의 아이들은 벌써 이런 수준이고라는 것만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점심 식사가 드디어 끝나고 이제 자리를 뜰 시간이 되었다. 오예! 이제 집에 갈 수 있겠다. 그러나 안도도 잠시, 다들 자연스럽게 또 2차로 카페를 찾아 나서는 분위기다. 또 빠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 분들이 왜 이러지? 매번 독서회 모임할 때마다 이렇게 우르르 점심과 후식까지 함께 한다고? 오전 일찍 만나서 거의 네다섯 시간을 같이 보낸다니.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는 점점 기가 빨리는 기분인데.


머릿속의 생각과 달리 나도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카페까지 동석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카페 테이블에서는 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분들 사이에서 둘러싸이게 되었다. 내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자기들끼리 이미 친한 테이블 반대쪽은 화기애애하면서 즐겁게 대화가 이어지는데, 내 쪽은 자꾸만 대화가 끊기는 기분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영어학원 이야기를 해보았다가, 요즘 시키는 악기 레슨 이야기도 했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 내 아이가 받는 사교육에 대해서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도 편하지 않았다. 왜 아직 영어 학원은 보내지 않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 쪽 분위기가 약간 침체되어 있는 사이 어쩔 수 없이 내가 없는 화기애애한 쪽의 대화에 귀 기울여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학업과 미래 진로에 관한 이야기였다. 요즘 세상에 의대를 입학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정말 아이가 뛰어나서 입학한다고 해도 등록금도 우리 때랑 다르게 정말 비싸고, 생활비랑 용돈까지 하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내용이었다. 명품 시계와 액세서리 그리고 옆의자에 우아하게 명품 가방을 둔 엄마가 의대 한 학기 등록금이 이천만 원이 넘는데, 너무 비싸서 감당하겠냐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저 엄마가 하고 있는 액세서리랑 가방 다 팔면 이천만 원도 훌쩍 넘겠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나도 진지하게 듣는척했다.


적당히 분위기에 맞추다가 아이 하교할 시간이 되었다는 구실 좋은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다들 오늘 반가웠다면 다음 달에 또 보자고 친절하게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왠지 내가 나가고 나면 약간 불편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처음 온 나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그들만의 가십거리나 집안 가족 이야기들을 나누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일단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행복했다.


불현듯 집에 오면서 깨달은 바 한 가지. 나도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나도 참 사회성 없구나.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처음 본 사람들이 더 많은 자리에서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자꾸 생각은 맴도는데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만 있던 내 모습이 자꾸 내 아들과 오버랩된다. 내 아이도 센터 친구 들아나 친척형아들과 있으면 편해 보이고 거리낌 없이 자기주장도 하고 다툼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그러나 보통의 아이들과, 일대일이 아닌 여러 명이 있을 때에는 어떻게 놀아야 할지 무슨 놀이를 하자고 해야 할지 종잡지 못하고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도 힘들어해서 종종 나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속상하고 도대체 언제 좋아질는지 한숨만 푹푹 나왔다.


생각해 보니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내 아이는 친숙한 아이들이라도 편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더 소심해지긴 하지만 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반겨주는 분위기였고, 내가 이야기할 때는 귀 기울여 들어주려고 했고 모두 친절했다. 그런데도 시종일관 마음속은 불편하기 그지없었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으니. 내 사회성 걱정이나 해야 하는 건가?


내가 내향형 인간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대여섯 시간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게 기 빨린다. 편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고 스트레스도 풀려서 일상에 꼭 필요한 이벤트이긴 하지만 길어야 두세 시간 정도면 만족스럽다. 그 이상이 넘어가면 괴롭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상당히 수다스러워서 외향적인 인간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향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다음 달에 또 있을 독서회 모임이 벌써부터 걱정되고 긴장된다. 내가 가서 잘할 수 있을까. 괜히 그들끼리 좋은 분위기로 잘하고 있는데 내가 가서 초치는 건 아닐까. 속으로 다들 나를 반기지 않는 건 아닐까. 아이 사회성 부족하다고 나무랄 것 없다. 다 나 닮은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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