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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Feb 20. 2024

남의 망한 집이야기가 왜 재밌어

잘된집 이야기는 재미가 없잖아

브런치에서 망한집 첫째 아들이라는 작가님 글이 눈에 띄었다. 단시간에 천명이 넘는 구독자수가 생길정도로 가히 몰입력도 좋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어릴적 집안 환경과 가족내의 갈등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풀어내서 그런지 아직 몇 개밖에 없는 글들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 글을 읽다보니 불현듯 명절 때 친정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마는 쫄딱 망해버린 두 집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는 아주 귀기울여 들었다.



한 집은 나 어려서부터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가족이다. 특히 엄마들끼리 친분이 있었고, 나는 그 분을 이모라고 불렀다. 그 이모는 말투도 사투리를 쓰지 않고 서울말을 쓰며 굉장히 친절하고 다정했다. 우리집에서는 평소에 잘 먹지 않는 구절판같은 듣도보도 못한, 조금 고급진한 느낌의 음식을 해서 가져다주곤 했다.


엄마는 그 이모를 부러워했다. 남편이 회사에서 잘 나가서 그 시절에 흔치 않은 외제차도 타고 남부럽지 않게 산다고 했다. 엄마의 말 속에서 그 이모를 향한 부러움과 질투심을 느꼈다.


할아버지 장례식에 찾아온 그 이모와 남편분을 봤을 때 굉장히 배운 사람 티도 나고 둘 다 잘 차려입어서 고급스러운 느낌도 났다. 이모는 늘 나에게 예쁜 말을 해주고, 당신의 딸과 다르게 모범생에 공부도 열심히 한다면서 칭찬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그 집이 망해버렸다고 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저씨가 회사에서 부정하게 돈을 빼돌리다 징계를 받은것 같다고 추정했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일반 회사원이 그 정도로 돈을 많이 벌리가 없는데, 어쩐지 뭔가 늘 이상했다고 엄마는 말했다.


이후로 그 이모는 작은 가게를 차려서 힘겹게 살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그 이모와 사이가 소원해지지 않았고 경조사를 챙기면서 친분을 유지했던 것 같다. 그런 엄마를 향해 다른 이웃분들은 왜 그렇게까지 챙기냐했지만, 아무리 망했다고 인연을 끊을 수 없지 않냐는 논리로 엄마는 자기대로 관계를 이어나갔다.


세월이 한창 흐르고 그 이모의 자녀들도 다 결혼을 했는데, 첫째 사위가 굉장히 돈을 잘 번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데 아무튼 엄청나게 부자여서 처가에 집도 사주고 장인, 장모 차도 외제차로 바꿔주었다고 했다. 다시 예전의 그 영광을 찾기라도 한듯, 그 이모의 돈자랑이 시작된것 같았다.


일부러 새차를 몰고 데리러온다든가, 바란적 없는 각종 선물을 해준다든가 하면서 부를 과시했다.


"그집 딸이 누구한테 시집갔는지는 몰라도, 사위가 엄청 처가에 잘한다더라. 차도 사주고."


그 말에 나도 괜히 주눅 들었다. 나는 그 정도로 시집을 잘 가지 못해서 집과 차를 사주는 사위는 이번 생에 못 나게 되셨으니, 그다지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그집 딸내미 공부 못한다고 걱정하더니 시집 잘 가서 좋겠네, 그 이모도 다시 팔자 펴서 다행이고,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잘만 사는 줄 알았던 그 이모는 또 다시 망했다고 한다. 이번엔 아주 쫄딱 망했다고.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한 직업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 첫째사위는 알고보니 무슨 전세사기 비슷한 부동산 투기같은 문제에 연루되어서 조사를 받는다고 했다. 돈세탁에 도움을 줬는지 그 일에 어떻게 연루되었는지 몰라도 그 이모도 밖에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고 숨어 다닌다고 했다.



"어쩐지, 그 집 사위 직업도 제대로 없는것 같던데 그렇게 돈을 많이 번다는게 수상했어.."



엄마는 내 말에 강하게 맞장구를 쳤다. 좋은 차며 집이며 사주면 뭐하냐고 결국 반사기꾼으로 드러나버렸는데 하면서 갑자기 당신 사위를 추켜세웠다. 김서방처럼 성실히 일 하는게 최고지, 그런 식으로 부정하게 돈 벌면 나중에 다 벌받는다며 계속 그 집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위 자랑을 하는 그 이모가 좀 불편했던 엄마에게서 일말의 통쾌함이 엿보였다.



금방 화제를 바꿔 다른 망한 집 이야기가 또 이어진다.

그 집은 진짜 90년대에 일하는 아줌마를 24시간 두고 살 정도로 부자였는데 어쩌다가 또 쫄딱 망해서 온 가족이 작은 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예쁘고 잘나가던 그 부잣집 사모님이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면서..

한참동안 예전 그 집이 얼마나 대단했고, 모두의 부러움을 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나도 모르게 또다른 망한 집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결론은 딱히 없다. 남의 집 이야기 끝에, 돈이란게 영원하지 않으니 그저 건강 주의하면서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며 사는게 최고다라는 결론 아닌 결론으로 엄마의 긴 이야기는 끝이 났다.


참. 좋은 일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살아도 모자른 판국에 남의 집 잘 안 된 이야기가 명절 밥상 화젯거리가 되다니. 남이 잘 된 것 보다 망한 이야기에 더 끌리는걸 보면 인간은 남보다 더 잘 살고자 하는 이기적 욕구를 쉽사리 극복하기 어려운 나약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좀 씁쓸하긴 한데 왠지 모르게 위안도 되고 욕심 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남들이 나보다 더 잘 나가고 잘 사는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좀 쓰라려도 덜 배아파하고, 너무 부러워 말고 적당히 축하해주면서 내 갈 길 묵묵히 가는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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