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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과몰입의 시작, 코딩

adhd 아이 키우기

by 레이첼쌤

아이는 <퀴즈! 과학상식 황당 수학>이라는 학습만화를 즐겨 읽는다. 뭐, 즐겨 읽는 수준을 뛰어넘어서 과하게 많이 본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워낙 권수가 많은 전집이고, 새로운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기 때문에 한 번씩 서점에 가면 선물처럼 한 권씩 사주곤 한다. 각 권 별로 주제도 다양한데, 도형 수학, 요괴 수학, 마술 수학 등 수학과 과학을 주제로 정말 다양하게 연재되어 있다. 티브이나 유튜브 보느니 학습만화라도 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말리지는 않는 편이다.


이번에 새로 구매한 것은 <퀴즈 과학상식 엔트리 코딩>이었다. 아이는 코딩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흠뻑 빠진 듯했다. 그러더니 엔트리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회원 가입하고 직접 코딩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말리고 싶었다. 한 번 뭔가를 시작하면 끝도 없이 몰입할 것이 예상되었기에, 그것이 컴퓨터나 미디어에 관련된 거라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코딩 교육이 앞으로 사회적으로 대세가 될 것이고, 미래사회에서도 중요해지고 있으며 학교 교과목에도 편제될 것이라는 말도 들어본 것 같아서 미리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는 엔트리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추가해두고 <송 선생님의 엔트리 코딩 학교>라는 책까지 구매해서 혼자서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컴퓨터나 기계를 다루는데 능숙하지 않고 한글, 엑셀도 기본적인 기능만 사용하는 기계치 인간이기에 더더욱 코딩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분야였다. 아이가 혼자서 뭘 하든 말든 내버려 뒀다. 초1이지만 이제 막 타자 연습을 떼고 노트북 켜고 끄는 정도지, 키보드의 다양한 기능을 알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헤매는 부분도 많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면서 엔트리 사이트에 들어가 헤매고 있을 때에도 끝까지 모른 척했다. 이럴 때 나도 이런 미래 기술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고 능숙해서 같이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긴 했지만 도통 흥미가 없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 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코딩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해서 혼자서 이것저것 책을 따라서 만들어보더니, 코딩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근처에 초등학생을 위한 코딩 학원이 있나 검색해보았는데 마땅히 없었고, 봉선동에 얼마 전에 오픈한 괜찮아 보이는 코딩 학원이 하나 보였다. 봉선동은 가기에 너무 멀긴 하지만 토요일 수업이라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연락을 해보았고, 토요일 시간표가 있다기에 체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체험수업에는 8살 또래 아이와 7살 유치원생도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이미 몇 개월 같이 수업을 들어서인지 서로 친해져서 수업 내내 장난치고 웃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이는 아니나 다를까 집에서는 겨우 엄마의 허락을 받고 할 수 있는데 공식적으로 코딩을 할 수 있는 학원이란 곳에 와서 하게 되니 아주 도취된 듯했다.


첫 수업을 마치고 담당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의 피드백은 아이가 이미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서 또래 친구들과 수업을 듣기에는 수준이 맞지 않다고, 초4 아이랑 하는 창작 코딩반에서 수업을 듣는 게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아이가 코딩의 기본은 스스로 숙지한 상태고 좀 더 높은 수준의 반에서 수업을 수강하게 된 것은, 보통의 부모라면 마땅히 기뻐하고 반가워해야 할 일이다.




나는 이 사실이 좋으면서도 싫은 이중적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아이처럼 adhd가 있어서 주의력이 낮은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한 번 빠지면 과몰입하는 성향이 매우 강한데, 결정적으로 끈기와 인내심이 낮아서 금방 흥미를 잃어버린다.


7세 때 갑자기 한자에 꽂혀서 몇 달 동안 한자 공부만 하고 한자 이야기만 하다가 지금은 아예 손을 놔서 다 까먹은 상태다. 피아노도 맨 처음에 배우러 갔을 때는 너무나 재밌어하고 즐거워해서 집에 와서 매일 음표와 악보 등 학원에서 배운 음악 이론을 혼자 복습하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피아노 연습을 했다. 게다가 아이가 절대음감이라는 것까지 우연히 알게 되고 나서는 "혹시 내 아이가 미래의 임윤 찬?"이라는 김칫국물까지 마시며 예중, 예고 입시를 검색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피아노도 몇 달 다니고 나서는 흥미가 떨어져서 지금은 집에서 아예 연습도 하지 않고 피아노 학원조차 엄마 등살에 억지로 나가고 있다.

태권도도 마찬가지다. 품새를 통해 일정한 동작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태권도장에 다니고 나서는 한동안 집에서 매일 품새 연습을 하며 나에게까지 가르쳤다. 친구관계가 어려운 탓도 있지만 품새도 곧 흥미가 떨어졌는지 태권도도 다니고 싶지 않다고 거부했고, 지금은 손가락 골절로 아예 못 나가고 있다.



코딩도 결국 이런 식으로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져버리는 과몰입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코딩 학원에 다닌 지 이제 3주째인데, 언제 또 다니기 싫다는 말을 할지 모르겠다. 학원에 가지 않는 평일에도 매일 한 시간씩 혼자 이것저것 연습을 한다. 다니고 있는 코딩 학원 원장님은 자녀가 모두 과학영재고에 진학했다고 하는데, 설마 내 아이도 이 쪽으로 머리가 터서 과학 영재가 되는 건가 기대를 품다가, 또 이러다 말겠지 하는 자조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분야를 문어발식으로 이것저것 맛보기처럼 발만 담그고 나오는 것보다 하나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을 만큼, 전공은 아니더라도 성인이 되어서까지 취미활동으로 이어질 만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adhd아이에게는 그조차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아주대학교 신윤미 소아정신과 교수님이 쓴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잘하는 것 하나만 있어도 멘털이 흔들리지 않아요.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아직까지 공부를 가장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이들 세계에서는 운동 감각, 유머 감각, 깔끔함, 그리고 친절함 등이 인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꼭 이런 것들이 아니어도 피아노를 잘 친다는지, 그림을 잘 그린다든지, 과학 실험을 잘하는 아이들은 이 활동을 하는 시간이 되면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니 단 한 가지 만이라도 아이가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도록 미리 신경을 써주세요.
"난 이 시간만큼은 최고야"라는 자신감만 있어도 ADHD 증상으로 인한 자존감 손상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습니다.

<ADHD 우리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할까, 신윤미>


인기 있고 친해지고 싶은 사회성 좋은 아이까지는 내 욕심이라고 하더라도 내세울만한 잘하는 것 하나 정도만 있어도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다고 하니, 내 아이도 잘하는 것 하나는 갖춰주고 싶다.

운동 실력은 이미 뒤처진 것 같고, 그림, 피아노는 여자 친구들이 워낙 뛰어나니 내 아이는 코딩이라도 꾸준히 하고 실력을 갖춰서 인정받게 된다면 좋겠다.


이전에 수없이 반복했듯, 코딩이 단순히 과몰입의 대상으로, 순간의 호기심 해소용으로 지나가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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