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로블록스 때문에 오열하는 초1

adhd 아이 키우기

by 레이첼쌤

adhd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는 과몰입이다.

좋아하는 것에 한 번 꽂히면 끝을 모르고 파고드는 경향이 있고 흥미가 떨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해진다. 나는 아이의 이런 성향을 몇 년간 몸소 경험하는 중이며, 그간 과몰입의 대상들을 나열하자면 무수히 많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같은 반에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들이 절반 이상이고, 남자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의 용도란 부모님과의 연락보다는 게임에 더 치중되어 있다.


아이도 자연스럽게 이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지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울고 떼쓰며 애원했지만 나의 입장은 아직 강경하다. 스마트폰은 시각적 자극이 취약한 adhd 아이에게는 너무나 중독되기 쉬운 놀잇감이다. 보통의 정상 발달 아이들도 스마트폰에 쉽게 중독되고 빠지기 쉬운데, 안 그래도 과몰입 증상을 가진 녀석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날에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될 것만 같았다.

대신 아빠 핸드폰에 게임 앱을 받아서 시간을 정해두고 할 수 있게 하거나, 가끔 사촌 형아들이랑 여행 갈 때는 형아들 폰으로 맘껏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무한의 계단>에 꽂혀서 한참 하더니 어느 순간 <로블록스>를 꼭 해보고 싶다며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으려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잠깐씩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본격적으로 pc에 게임을 깔고 하겠다니, 너무나 내키지 않았지만 울고 불며 사정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한 발 양보하기로 하고 대신 토, 일 주말에만 정해진 시간에 하기로 약속했다.


초반에는 잘 지키는 듯하더니, 역시나 어제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더니 대뜸 로블록스가 하고 싶다고 시켜달라는 것이다. 평일에는 안되는 거 뻔히 아는데도 애교를 부렸다가, 울다가, 떼를 쓰다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조금만 하면 안 되냐고 말이 안 통할 정도로 진이 빠지게 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달래 봤다가, 설득해보았다가, 감정코칭 흉내 내며 "게임이 그렇게 하고 싶었어? 아들"하면서 공감 대화를 시도해봤다가, 화도 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30분 넘게 실랑이가 오갔고 남편에게 이 상황을 전했더니 너무나 간단한 답장이 왔다. "그럼 조금만 시켜줘." 이걸 보더니 아이는 흥분해서 "아빠도 시켜주라고 하잖아!!" 하면서 더 오열하기 시작했다. 역시 남편에게 무슨 도움을 받겠다고. 남편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낸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아이를 어르고 달래 보았다.


나라고 게임 조금 시켜주기 싫어서 이러는 건가. 어차피 "조금만"한다고 시작해봤자 정해진 시간이 다 되어서 끄라고 하면 "조금밖에 못했는데." 하면서 또 울고 불고 난리 칠게 뻔했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울고 똑같은 결괏값을 얻을 바에는 아예 안 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울었다가, 나아졌다가, 떼썼다가를 반복했을까. 둘 다 진이 빠질대로 빠져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스케치북에다가 뭔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들고 와서 보여준다.




아이 스스로도 평일에는 게임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마음과 그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다 보니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것이다. 미숙한 감정 처리로 인해서 하고 싶은 걸 안 시켜주는 엄마가 미우면서도 엄마도 스트레스받고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니 본인도 속상하다. 나도 육아서와 발달 관련 책을 꾸준히 읽으며 수시로 마음을 다잡고 웬만한 아이의 감정은 다 받아주자고 다짐하지만 이럴 때는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고,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마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후회한다.


쓰라고 한 적도 없는데 자발적으로 써서 보여주는 이 반성문을 보니 나에게 휘몰아치던 부정적인 감정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 든다.


초콜릿 과자와 주스를 먹이면서 마음을 좀 안정시키고 나니, 상황은 조금 일단락됐고 다행히 스케줄대로 학원에 갔다.






나는 가끔 소름 끼칠 정도로 책에서 현재 나의 고민과 걱정거리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하고 감탄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이가 조금 진정되고 나서 읽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는데, adhd와 게임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도 책에 언급된 게임은 문제의 로. 블. 록. 스.


2020년대를 살고 있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빠질 수 없는 이슈가 바로 게임입니다.
특히 ADHD 아이들에게 게임은 오감을 자극하는 백화점입니다. 가상세계에서는 단기간에 영웅이 될 수 있고, 레벨업이 될 때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 욕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게임이 소통 수단으로 작용하고 소극적이던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또래 집단에 받아들여지는 겁니다.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는 것은 결코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발달이 느려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말재주나 유머감각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었던 어떤 adhd 아이는 체구도 왜소해서 운동에도 소질이 없었는데, 게임에서 실력을 발휘해서 친구들의 엄청난 반응을 받고 게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로블록스(Roblox)는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세계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메타버스(Metaverse) 게임 플랫폼으로 초통령 게임이라 불릴 만큼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아이들은 가상 세계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다른 이들과 친교를 나누고 경제활동을 하는 등 현실 세계에서와 같은 상호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아이는 부모님조차 잘 모르는 메타버스에 발을 들여놓고 있던 거예요.

<ADHD 우리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주대 신윤미 교수>



가상세계인 메타버스가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고 이런 기술은 미리 알고 배워둬서 나쁠 건 없을 것이고, 오히려 더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요즘 시대가 이러하니, 게임은 아이의 학습을 방해할 뿐이니 무조건 근절해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만 내세우기보다 허용은 하되 명확한 원칙을 가져야겠다. 게임 시간을 초과하면 다음 날 허용 시간을 줄이던지, 심하면 폰을 압수할 수도 있다고는 하는데 사춘기일 경우 이건 정말 최후의 보루로 사용하라고 한다. 아이가 혹시 대들면 평소에 일상생활을 잘하려면 자제력 훈련을 하기 위한 거라고 설명해준다. 아이가 납득해줄지 모르겠지만.


소아정신과 대학교수님이 쓴 책이라 딱딱하고 원칙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실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나름 현실에서 적용하고 실천할만한 지침들이 많아서 도움이 됐다. 특히나 로블록스 때문에 한 시간이나 울고 떼쓴 아이와 씨름하고 나서 게임 중독에 대처하는 방법이 나오니 어찌나 반갑던지.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행복해. 하루만 더 참으면 로블록스 할 수 있어서."라고 말하는 아들.

이런 너를 어쩌면 좋니.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 거 다 시켜주고 싶은 한없이 천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게임 때문에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아마 이번 생에서는 틀린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