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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02. 2024

책들이 역겨워졌다

성공포르노, 월천자동수익, 역행자, 초사고, 갓생, 퍼스널브랜딩..

몇 년 전에 우연히 자청이라는 인물의 블로그를 알게 되고 몇 가지 자극적이면서도 신선한 포스팅을 읽었다. 그가 추천한 심리학 책 몇 개도 읽었고, <역행자>는 사볼까 하다가 결국 블로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한풀 인기가 꺾인 뒤에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내가 그에게 홀려서 지불한 돈은 쥐뿔 재미도 감동도 없는 심리학 책 몇 권뿐이다. 읽으면 그대로 자동수익도 생기고 월천은 그냥 벌 것만 같은 비싼 전자책과 강의도 파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귀가 그 정도로 얇지는 않아서 관심만 뒀을 뿐 결제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번 논란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를 저격하는 유튜버들도 사실은 또 다른 구독자 몰이를 위한 영상 제작이 목적일 수 있기에 좀 더 자극적이고 과도한 내용도 적당히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무조건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자청이 주창한 독서와 글쓰기를 기반으로 한 22 전략이나 자의식 해체 등 인생을 살면서 득이 될 수 있는 전략들은 나쁘지 않았다. 그간 책도 꽤 읽고 사람들을 설득시킬만한 그만한 글을 쓸 정도면 그가 가진 내공은 대단하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비판받아 마땅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이별재회상담이나 마케팅 사이트 운영으로 이미 성공한 사업가라고 알고 있었지만, 초기에 블로그나 유튜브에 게시된 내용들의 제목이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그 당시 나는 내 밥벌이도 하고 있었고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도 있었지만, 그런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는 상태였음에도 그가 보여주는 제목들이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마치 본인이 추천하는 심리학 책 몇 권만 읽으면 바로 월천 자동수익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연봉 10억쯤은 쉽게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에 의심을 품으면 자의식 해체가 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하루 종일 내 시간과 자유를 팔아가면서 월 이삼백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건 하수의 삶이라는, 자신은 성공의 전략을 알고 항상 스스로 레벨 업할 줄 알기 때문에 사는 게 너무 쉽다는, 지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좀 허무맹랑한 주장들을 펼쳤다.


그의 이별재회사이트에는 검증받은, 명문대 출신의 고학력자 상담심리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 이 부분도 의문이 들었다. <4~7세보다 중요한 시기는 없습니다> 외 다수의 육아서와 자녀교육서를 집필한 이임숙 작가님이 책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업계에서는 굶어 죽으려면 상담심리를 전공하라는 말이 있다면서, 그만큼 상담심리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고학력자가 되어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가 어렵고 고액연봉을 받기란 더더욱 어려운 현실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바 있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상담학 쪽도 벌어먹고 살기 어려운 분야구나 어렴풋이 생각한 적이 있다.


이임숙 님은 아동청소년 상담심리전문가이자 종류별로 상담사 자격증도 여러 개이고 아동심리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나온 분이시다. 이렇게 장기간 상담 분야에 몸 담으면서 공부하고 연구하신 분도 돈벌이가 쉽지 않다고 말했는데, 하물며 상담심리 쪽 공부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전공도 아니고 아니면 그쪽 분야 사업을 시작한 후에라도 대학원 진학을 한 것도 아닌 그야말로 학력 사항으로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자청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상담 사업이 국내 업계 1위에 1년 연봉 10억을 만들어준다고 주장했으니, 그걸 믿는 사람이 순진한 거 아닌가.


단순히 심리학 책 좀 많이 읽었다고 해서 상담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고도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좀 신기하긴 했다. 그것도 본인은 대표직만 하지 직접 상담은 그 회사 소속 직원들이 하는데 직원들의 전공이 상담분야라는 건 어떻게 확인한단 말인가. 당시에는 나도 그렇게 주장하길래 그게 맞는구나 싶었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과장과 거짓이 교묘히 섞여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가장 충격받았던 글 중 하나는 철학을 포기하고 100억을 선택했다는 글이었는데, 왜 철학 전공이면서도 전공 공부를 포기하고 돈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내용 없는 평범한 글인데, 제목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었다. 마치 그가 한대로만 그. 대.로. 따라 한다면 백억 정도 버는 일은 우습다는 식이었다. 책만 읽고 글만 쓰면 백억을 쉽게 벌 수 있는데, 대중은 왜 그걸 모르는지 답답하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도 책을 좀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해봐야 한 달에 한두 권 정도밖에 읽지 않았던 내 독서량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름 안정된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그의 글에 굉장히 혹하게 되고, 빠지게 되었는데 뚜렷한 직장이 없는 취업준비생이나 대학생이나, 경력 단절된 주부 혹은 퇴사한 사람들, 박봉에 시달리는 월급쟁이나 공무원들은 그의 글에 얼마나 혹했을까? 내가 그렇게 간절한 입장이었다면 책만 사는 게 아니라 강의도 전자책도 다 결제해서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을 것 같다.


월 천만 원을 버는 일은, 그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동수익으로 벌어들이는 일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주변에서 그만한 돈을 버는 사람들은 그만한 학벌을 갖춘 고소득 전문직과 시간과 에너지를 다 바쳐가며 가족을 돌볼 새도 없이 자기만의 사업장을 이끄는 사람들뿐이다. 물론 온라인에서 쇼핑몰이나 인플루언서가 되어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간접적으로 알뿐 직접 본 적은 없다.


차라리 그가 독서와 글쓰기를 주창하면서 월천이니, 자동수익타령보다는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할 수 있고 자기 직업분야에서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도구로 자기계발하는데 이만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면 이렇게까지 배신감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자기만 따라 하면, 본인이 제공하는 고가의 PDF책과 강의에서 전수하는 방법만 한토시도 빼놓지 말고 똑같이 따라만 한다면 누. 구. 나. 자동수익 월천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건 너무 달콤한 유혹이라서 월천을 벌지 못하는 일반 직장인이라면, 설사 월천을 벌더라도 시간과 에너지를 다 바쳐가며 일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흔들리고도 남을만하다. 그의 마케팅 방식은 불법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욕망과 심리를 자극하면서 돈을 결제하게 만드고야 마는 저열하고 비겁한 방식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를 저격하는 여러 유튜브 영상 중에서도 <동기부여뒤집기>라는 영상이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신사적으로 보였다. 다 자세히 본건 아니지만 구미에 당기는 것 몇 개 골라서 보니 지금껏 내가 너무 여기저기 난무하는 자기 계발 서적들에 놀아나는 건 아닌가 싶다.



<역행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한창 잘 나갈 때에는, 마음속에 한 줌의 반발심이 일기는 했지만 블로그에 리뷰를 남길 때에도 부정적인 면은 한 두줄만 언급하고 말았다. 그의 논리에 반박하기에는 그 책의 출판사는 업계 최고의 회사였고 그래서 더 출판사의 권위에 굴복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유명하고 대단한 출판사에서 검증받은 작가에게서 검증받은 내용으로 출판한 책인데, 나 따위가 뭐라고 토를 달겠어..라는 마음도 들었다. 그 책의 권위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이외에도 자기 계발계에서 이름만 대도 유명한 사람들 책은 거의 다 읽었지만 또 다른 성공포르노, 성공학을 가장한 자기 계발서에 지나지 않다는 주장을 보게 되고 나는 심각한 현타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간 내가 즐겨봤던, 아니 자꾸 추천영상으로 떠서 한 번쯤은 클릭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수많은 자기 계발 영상들이 죄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성공팔이에 지나지 않았다니. 그 책들과 영상을 보면서 나 자신을 다그치고, 왜 저 사람들처럼 계속 노력하고 발전하면서 레벨 업하지 못하냐고, 그래서 네가 지금 월천도 벌지 못하는 찌꺼기 같은 인생을 살고 있지 않느냐는 다그침을 스스로에게 하게 됐다.


유명한 성공학, 자기 계발서들이 많이 팔리고 잘 된 데에는 그들이 허무맹랑한 소리만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들도 많고, 합리적이고 배울만한 부분도 상당히 싣고 있다. 진실 반 과장 반 거짓 반으로 적당히 버무려져 있는 그들의 주장에 놀아나기란 너무 쉬웠던 것이다. 비판의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내 탓이 가장 크겠지만, 돈과 명예와 성공이라는 단어 앞에서 사람의 심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온갖 주장과 비현실적인 소리들을 접하면서도 나는 한줄기 희망을 갖고 싶었다. 내가 엄청나게 노력하면, 나 자신만 계속 채찍질하고 더 노력만 하면 발달장애인 아이도 어느 순간 정상발달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날이 언젠가 오고 말 거라는 꿈을 꿨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매일 백번씩 꿈을 필사하면서 쓰지 않아서 아이가 정상발달이 못 된 것일까? 그 꿈을 백번씩 천 번씩 쓰고 씹어 먹을 정도로 독한 마음을 가져야 이룰까 말까 한다는데..


끌어당김의 법칙이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하면, 내가 아무리 아이돌 가수가 된 모습을 상상하고 그리고 필사를 하고 댄스 연습을 한다한들, 이 나이에 이 외모로 아이돌 가수가 될 수 있을까? 재벌 2세 같은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수천번 수만 번 한다한들 그 시간에 돈 만원이라도 벌 수 있을까?


끌어당김도 내가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영역에서 적용해야 한다. 특정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면, 고득점으로 시험에 합격하는 모습, 이번 중간고사에서 저번에 60점이었다면 이번에는 70점 이상 맞는 모습, 아이가 발달이 느리다면 또래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아이의 한 달 전 발달 상태보다 더 나아진 모습 등 현실성을 바탕으로 상상하고 끌어당겨야 하는 것이다.


유튜브를 켜기만 하면 특정 인플루언서 저격 영상들이 계속 올라왔다. 자극적이고 재미있었지만 볼수록 피로감이 쌓였다. 대놓고 범법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경계가 불분명한 과장과 허위로 성공과 부를 일궜다면 이제 와서 뭘 어떻게 바꾼단 말인가.


중요한 건 내가 더 이상 그런 달콤함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고 좀 더 비판적이고 견실한 시각을 장착하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저번주에도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 늘 도서관에 가면 신간도서, 추천 도서들 앞에서 서성였다. 읽고 싶은 책들이 넘쳐났다. 제목도 매력적이고 저자 약력도 그럴싸한 책들이 즐비했다. 나를 유혹하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어느 책을 골라야 할지 한참을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빌려오는 책들 가운데에는 나도 모르게 자기 계발서가 한 두 권씩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도서관에 갔을 때에는 자기 계발서와 재테크, 심리학 서적 앞에 서 있는데 문득 속에서 역겨움이 올라왔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들이 저마다 남들보다 더 튀기 위해서, 더 잘나 보이기 위해서, 더 자극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걸로만 보였다.


박탈감만 느끼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 확인시켜 주는 자기 계발서 따위의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렇게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고 마음의 양식을 쌓고 있으니 다른 인간들보다 더 고매하고 우아한 인간이라고 느꼈던 나 자신은 얼마나 추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40년을 살아놓고 자본주의의 본질도 모르는 내가, 운동과 독서를 매일 해야 한다는 걸 여태 모르고 살았던 내가,  신생아시기에, 유치원 시기에, 초1시기에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양육을 하는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못난 인간인지 분야별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책들이 외치는 듯했다.


그동안 당연한 진실이라고 믿었던 권위와 주장들이 허위와 과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충격의 크기가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읽고 싶은 게 단 한 권도 없었다. 다 사기 같고 헛소리로 가득한 종이덩어리로 보였다. 지금껏 도서관과 서점에 다니면서 늘 사고 싶은 책들이 넘쳐나서 고민하느라 바빴는데,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정말 처음이었다.


아이 책 좀 골라주고 나서, 그래도 내 책을 한 권이라도 빌려야겠는데 도통 무엇을 골라 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책들이 다 꼴 보기 싫었던 것이다.


소설 쪽으로 넘어가 보았다. 자청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문학을 읽어야지, 소설 따위를 읽고 있으면 발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껏 내가 어설픈 독서가로 살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상당한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비록 허구의 인물이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 속에 살아있는 그들이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나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어려운 인생의 위기와 고난 앞에 놓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때면 삶의 더없이 큰 위로가 되었다. 특히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이나 일제강점기 소설들을 읽을 때 마음이 정화되고 안정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왜 내 독서 취향을 그동안 무시하려고 했을까. 한가하게 소설 따위나 읽고 있으면 발전이 없을까 봐, 그대로 도태되는 인생을 살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 책이란 게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위안이 되면 족하지,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까. 물론 책을 통해서 지식을 추구하고 전문 영역에 내공을 쌓는 걸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거기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소설이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도서관에 갔을 때에는 조앤롤링의 <해리포터>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빌려왔다. 너무 긴 시리즈물이라서 시도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큰 마음먹고 한 번 시작해 보기로 했다.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게 아니니까. 마음 편히 읽고 싶다. 해리포터는 영화를 먼저 본 게 땅을 치고 후회하고 싶을 정도로 책으로 읽는 게 진짜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책을 가까이하면서 산지 3년째가 되어서야 내 독서 취향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진정으로 내가 원하고 읽고 싶은 책을 찾게 돼서 다행이다. 성공포르노만 외쳐대는 지독한 출판시장에서 한시라도 일찍 벗어나게 돼서 더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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