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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12. 2024

열 살도 3월은 힘들어

새 학기 증후군일까요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여기저기서 엄마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방학이 너무 길어서 병나겠다는 엄마들이 많았다. 나 역시 이번 방학에는 욕심부리지 않고 최대한 게으르고 늘어져서 보내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체력의 바닥을 몇 번 확인했고, 면역력 저하 동반질환으로 병원행도 수차례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나는 두 가지 양가감정의 혼란에 휩싸였다.

하나는, 기나긴 방학이 끝나서 홀가분하고 행복하다는 것. 등교시켜 놓고 길지 않은 몇 시간의 자유를 누릴 생각에 설레기까지 하다는 것.

또 다른 감정은, 학교 생활에 스트레스받을 아이가 걱정돼서 불안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계속 방학이라면 이렇게 하루에 한 두 개 학원만 다니면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 텐데.. 부족한 사회성과 눈치, 소통능력으로 학교에 있는 시간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를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약해진다.


살면서 단체 생활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니 부모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이제 저 스스로 적응하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홈스쿨링 하면서 끼고 있을 거 아니면 마음을 확 내려놓아야 하는데, 작년에는 특히나 학기 중에 등교거부 증상에 시달렸기에 더욱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개학 며칠 전부터 학교 가기 싫다고 계속 방학이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애써 못 들은 척하면서 새 학기에 새로운 선생님이 어떤 분 일지, 어떤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될지 한껏 기대되는 척하면서 긍정적인 이야기만 해주려고 신경 썼다.


정말 감사하게도 새로운 담임선생님에 대한 아이의 인상은 좋았다. 아무리 자세히 선생님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물어봐도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우리 선생님 친절하신 것 같다고 딱 한 마디 해주었는데, 그 말 한마디만 들었는데도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3학년이 되니 저학년 때보다 하교 시간도 은근히 늦어지고, 자연히 학원 스케줄을 다 소화하기가 좀 벅찼다. 어차피 학원이나 센터수업이라고 해봐야 워낙 느슨하게 짜두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여유 있는 편이다. 그런데도 작년 같은 경우에는 집에서 한두 시간 빈둥댈 여유가 있었는데 이제는 확실히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다.


다행히 아이는 일주일간 등교 거부도 하지 않고, 방과 후 스케줄도 다 소화했다. 주말에 자기 생일파티가 예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새 학기라 힘들긴 하지만 설레는 감정으로 주말을 기다렸다.


센터친구들과 엄마들만 불러서 간단하게 생일파티를 해주었다. 생일파티는 공짜로 하는 건 줄 아는지, 당연히 매년 파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를 붙잡고 친구들 불러서 하는 파티는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내년부터는 가족끼리만 간소하게 할 거라고 여러 번 다짐을 받아냈다.


아무리 배달음식 몇 가지만 시켜서 간소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친구들과 엄마들을 불러서 세팅하고 대접하는 일은 굉장히 기 빨리는 일이었다. 엄마는 귀찮고 힘들지만 아이는 굉장히 행복해했다. 간소하게 한다는 명목하에 케이크도 생략하고 초코파이를 쌓아서 케이크를 만들어주고 초를 불렀는데도 못 견디게 행복에 겨워하는 아이 모습에 웃음이 났다.



주말 일정을 마치고 집에 와서 다 정리하고 나서 아이 입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입술이 건조해져서 부루 터져있었고 약간 피도 맺혀있었다. 입술이 언제 이렇게 다 터버렸는지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입술을 가까이 보려고 가까이서 살펴보니 입안에 구내염까지 나 있었다. 몇 군데가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이 정도면 신경 쓰이고 음식 먹을 때 불편했을 텐데 아프다는 말도 없었다.



어라? 어린아이도 구내염이 생기는구나.. 입술 안쪽 잇몸에 구멍이 송송 뚫려서 파여있는 상태를 보니 새삼 놀랍다. 여태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질병을 겪어왔지만 구내염은 또 처음이다. 이게 웬만큼 피곤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병으로 알고 있는데.



개학 첫 주.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 사이에서 저도 적응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썼나 보다. 사교육 스케줄 비교적 널널한 어린이도 이렇게 피곤한데, 더 고학년에 학원도 밤늦게까지 빡빡하게 다니는 K-초중고생들은 얼마나 힘들까.



3월은 휴일도 없고 꽃샘추위로 날도 아직 차가워서 이래저래 혹독하고 시간이 안 가는 느낌이 드는 달이다. 이상하게 날이 좀 따사로워지고 4월이 되면, 시간도 더 빨리 가고 아이들도 점점 일상에 적응해 간다. 그러는 사이 금세 또 여름방학이 찾아온다.


아이 입속에 한 번 생긴 구내염이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걱정스럽다. 물도 자주 먹이고 잠도 많이 재우려고 하는데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새로운 시작의 설렘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난관도 많은 3월이 무사히, 그리고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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