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이 키우기
자식 키우는 거, 정말 못해먹겠다.
그룹 치료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아이는 친구들과 더 놀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유치원에서 만나는 또래 친구는 물론이고 센터 친구들조차 함께 어울리기 어려워했는데 그룹 수업 2년 차가 되니 이 아이들끼리도 나름 우정이 생겨서 같이 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날은 친구 엄마도 갑자기 다쳐서 몸이 안 좋았고 해가 짧아진 탓에 날도 어두워서 놀이터에 가기도 애매했는데도 아이는 친구 집에 놀러 가고 싶다면서 계속 놀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안 되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릴 때만큼 난감하고 당황스러울 때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아무리 내가 합리적으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하려고 해도 이미 답정너의 자세라 엄마 말은 귀담아듣지를 않는다. 어떤 말을 해도 자기만의 엉뚱한 논리로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키려고 한다.
친구 집에 미리 약속도 하지 않고, 초대받지도 않았는데 가는 건 아니라고 한창 이야기하는 와중에 아이는 감정이 더 격해지는 듯하더니 나에게 욕을 했다.
"아. 씨발."
...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내 귀를 의심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금 이 말이 내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얘가 미쳐버렸나? 왜 이러는 거지?
이제 겨우 8살이고 초1인데, 엄마한테 이런 쌍욕을 하다니 얘가 제정신이야?
내가 애를 잘못 키웠나?
내가 이런 쌍시옷 욕을 듣자고 자식을 낳아 기른 건가?
adhd 증상으로 인한 충동성이 이런 욕까지 서슴없이 하도록 만든 건가?
약 용량이 부족한가? 더 센 약을 더 많이 먹여야 하나?
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그 adhd라는 뇌 발달지연으로 인한 아이의 미숙한 말과 행동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꼴을 보자고 휴직까지 하고 발달장애 책과 육아서를 읽으며 더 좋은 엄마가 되보겠다고 발악을 한 건가?
여태 이 아이를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철저히 희생하고 헌신했는데 돌아오는 결과가 욕이라니?
안 그래도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가 어설프게 욕까지 배워서 혹시라도 학교 친구들에게 사용한다면 더욱 소외되고 고립될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초1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거나 자기들끼리 있다 싶을 때는 욕을 사용하는걸 심심치 않게 듣기는 했다. 자주 들어본 건 "왔더 퍽" "에이씨" 정도다. 물론 이보다 더 심한 욕도 사용한다. 요새는 유튜브를 통해서 노출되는 비율도 높기도 하지만 원래 언어를 배울 때에 사람은 욕을 더 쉽게 빠르게 습득하고 사용한다. 원래 인간은 부정적이고 나쁜 것들을 더 쉽게 학습하도록 설계되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근무할 때도 학생들에게 항상 욕 사용을 줄일 것, 친구들에게 욕 하지 말 것, 자기가 내뱉는 말이 자신의 인성이라는 걸 기억하라고 지도하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욕은 그렇다 치더라도, 교사나 어른들 앞에서 사용하는 건 한 인간으로서 인성의 문제이니 스스로 조심하고 자기 입단 속해야 한다고 늘 말했다.
욕에 대한 이런 강경한 입장이 바뀌게 된 건 오은영 박사님의 책과 다른 육아서들을 읽고 나서이다.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지킬 정도로는 사나울 필요도 있다고 봐요.
거친 말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원래 착해야 합니다. 그러나 착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대립이 생겼을 때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착함을 강요받고 자란 아이들은 누군가와 대립할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 사납게 구는 것을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라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좀 담대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 나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비난하면 "감히 나에게 이 따위로 대해?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도둑 누명을 씌워?"라고 대응하게 만드는 것이 자존감입니다.
<오은영 박사가 전하는 금쪽이 들의 진짜 마음속>
오은영 박사님은 청소년들이 누가 자신을 공격하거나 별 이유 없이 욕을 했을 때 "인마,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 대해 이 나쁜 자식아." 하면서 받아치면서 자신을 방어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초등 고학년, 중학생인데 살면서 단 한 번도 욕을 해보지 않았다는 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짚어보아야 할 필요도 있다고 말이다.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욕은 별 뜻이 없고 그 시기에 가장 중요한 또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고 사춘기가 지나고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자제하게 된다고 한다.
욕에 대해서는 그래도 자제시켜야 하지만 비속어나 은어 같은 경우에는 아주대 신윤미 교수님은 언어능력이 부족한 adhd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일부러 가르쳐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래들끼리 공유하는 줄임말이나 비꼬는 말을 들었을 때 받아칠 정도는 돼야 재미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함께 놀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웃자고 한 말에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정색하면 어울리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욕이나 비속어에 관해서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친구가 먼저 아이를 공격하거나 욕을 했을 때는 너도 비슷한 말로 받아쳐주라고 이야기해주려고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무래도 유치원에 다닐 때보다는 학교에 오가며 마주치는 고학년 아이들도 많고 태권도나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만나는 상급생들도 있어 욕에 노출될 기회가 많아지긴 했다. 가끔 아이는 어떤 형아가 심한 욕을 했다며 이르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욕은 나쁜 거고 사용하면 안 되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심지어 나는 아이의 말투가 아직은 또래만큼 유창하지 않고 미숙한 면도 있어서 비속어조차 아예 못할까 봐 걱정되기까지 했다. 어렸을 때 심했던 로봇 같은 기계적인 말투는 상당히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책을 읽는 듯한 문어체적인 말투 습관은 남아있다. 게다가 스스로 완벽주의에 강박 증상도 있어서 "욕은 정말 나쁜 거라서 평생 사용하면 안 된다"는 너무 경직된 생각을 할까 봐 조금 염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랬던 아이가 처음 사용한 욕이 "씨발"이라니, 그것도 다른 이도 아닌 "엄마"를 향해하다니.
너무 충격적이어서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아이도 나의 반응에 놀랐는지 계속 잘못했다고 사과했지만 충격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더 쉬운 거 아닌가. 게다가 아이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을 때 그것을 처리하는 법을 굉장히 어려워해서 충동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 주의력결핍 우세형의 조용한 ad이긴 하지만 충동적인 행동을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 빈도수가 적고 미디어에서 비치는 경악스러운 충동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매일 마주하는 그런 상황들을 대처할 때마다 어렵고 힘들다.
교육자라는 사람이, 아이 잘 키워보겠다고 휴직하고 육아에 올인하고 있는 사람이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8살 아이 입에서 욕이 나오도록 내버려 둔 거야.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엄마다. 엄마를 할 자격도 자질도 안 되는 사람이다. 자꾸 자책하게 되고 끝도 모를 자괴감이 밀려온다.
남편은 애들한테 들은 말을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사용한 것 같다고 잘 달래주고 이해시켜주라고 한다. 본인이 똑같은 상황에서 아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어도 저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반응하려나 싶다. 충격에 휩싸인 나에게 실수하고 놀란 아이 마음 먼저 어루 만주어 주라는 소리를 하다니.
누구보다 순수한 얼굴에 또래보다 어눌한 말투를 쓰는 내 아이의 입에서 욕이 나오는 그 찰나의 순간이 쉽사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부모 책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의 내 아이 모습만큼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다하고 있다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잘못 꼬여버린 전두엽이라는 뇌 발달까지는 내가 어찌할 수가 없다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아무나 붙잡고 항변하고 싶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자식이 아님을, 세상에서 자식 키우는 게 가장 힘든 일임을, 또 한 번 절실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