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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펠프스도 adhd였다

adhd 아이 키우기

by 레이첼쌤

아이를 데리고 처음 수영장에 간 건 6세 겨울이 시작하던 때쯤이었다.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여러 특수체육 운동 중에 수영이 도움이 된다는 글을 접하고 나서 고민 없이 결정했다. 보통 아이들에 비해서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요새는 5세 정도만 돼도 유아수영을 시작하는 엄마들도 많이 있다.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하기에 더더욱 내 아이에게는 수영을 가르치고 싶었다. 스키나 다른 여타의 운동은 포기하더라도 수영만큼은 생존을 위해서도, 여가 생활을 위해서라도 꼭 배워야 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주 1회로 시작했다. 주 2회로 한다면 실력 향상이 더 빨랐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아이가 수영장에 가는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어린이 수영장이라 투명창으로 수영 강습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아이가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그에 맞게 물 위에서 몸을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언어지연 진단을 받았기에 일반 수영장보다는 특수체육을 운영하는 센터에 가서 수영을 배워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도 됐다. 그러나 내가 사는 지역에서 특수체육을 전공한 선생님이 장애아를 위한 수영 강습을 하는 센터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어린이 수영장이 우리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이제 막 오픈해서 홍보를 하는 중이었다. 집 앞에 어린이 전용 수영장을 두고 어디 멀리 다닌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일단 등록해서 보내보고 수영강사도 도저히 못 가르치겠습니다, 하면서 포기하면 그때 고민해보자고 생각했다.


유아용 구명조끼를 입고 튜브 끼고 노는 수준이지만, 다행히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라 처음에는 물과 친해지기만 해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수영 선생님은 장난기 넘치는 고학년 아이들에게는 호랑이 얼굴을 하고 무섭게 다그치며 수업을 하다가도 아직 어린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다정한 얼굴로 "음~파.."를 연신 반복하며 열심히 가르쳐주셨다.


수영을 다닌 지 1년이 지나도 아이는 자유형을 마스터하지 못했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물과 친해지기만 해도 좋다는 생각이긴 했지만 이건 너무 길어진다 싶었다. 마침 같은 유치원 다니는 여자 친구도 7세 후반에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아이는 서너 번 강습받고 나니 내 아이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1년 넘게 다닌 내 아이가 참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타고난 운동 감각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아이들은 뭔가를 가르치면 스펀지처럼 이렇게 빠르게 흡수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였달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주 2회로 늘려볼까 했지만 피아노와 태권도를 다니다 보니 수영까지 있는 날에는 아이가 몹시 피곤해했다. 일단 체력이 받쳐줄 때까지 기다려보고 2회를 고려해보기로 하고 여태 주 1회로 다니고 있다.


<ADHD 아동>이라는 책을 읽다가 우연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8관왕의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도 ADHD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감정 기복이 심하고 어느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한 아이였고 7살에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이 증세가 더 심해져 더욱 난폭해지고 수업에도 방해가 됐다고 한다. 결국 ADHD 진단을 받게 되었고, 마이클의 어머니는 수영이 ad증상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마이클을 데리고 수영장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두려워했지만 물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고, 선수들의 고된 훈련을 소화할 만큼 집중력이 좋아져서 결국 천재적인 수영선수가 된 것이다.


물론 마이클 펠프스만큼의 성과는 감히 바라지도 않지만, 수영을 통해 산만함이 보완되고 집중력이 조금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는 결국 8세 여름쯤이 되어서야 자유형을 어설프게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담당 수영 선생님도 놀라고 감격했는지 물에서 자유형을 하는 아이의 영상을 찍어 보내주시면서 그동안 긴 시간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셨다. 아마 3년째 되어가니 선생님도 조바심이 나긴 했나 보다. 그래도 이렇게 오래 다녔는데 자유형 하나 제대로 마스터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가시적 성과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나는 인내심 있게 지도해준 선생님 공이 더 크다고 답했다.


ADHD는 뇌에서 조절력과 계획을 관장하는 부위인 전전두엽과 감정과 운동을 관장하는 부위인 기저핵과 소뇌 사이의 신경회로에 이상이 있어서 과잉 행동과 충동성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adhd 아이들은 감각발달과 운동신경 발달이 또래에 비해 미숙한 편이라 줄넘기가 자전거를 배울 때에도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감각통합치료를 많이 받기도 한다. 이 아이들에게 팔과 다리를 각각 움직이면서 물 밖으로 호흡까지 하며 추진력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수영의 기본인 자유형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재미있는 건 자유형을 배우고 나면 배영은 생각보다 쉽게 터득한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자유형과 배영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는 늘 수영장에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몇 년을 해도 늘지 않는 실력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려고 해도 몸이 마음대로 말을 듣질 않으니 하기 싫은 것도 당연했을지 모른다. 뭔가 실력도 늘고 재미도 느껴져야 배우는 맛이 있는 법인데 아이의 수영 실력은 장기간 정체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손가락 골절까지 돼서 한 달간 수영을 쉬고 저번 주부터 다시 나가게 되었는데, 이번 주에 수영장에 갈 때는 아이는 믿기 힘든 말을 했다.



엄마, 수영장 빨리 가고 싶어.



매번 수영장 가는 날마다 어르고 달래서 데리고 가는 게 일상이었다. 오가면서 킨더 조이 초콜릿을 손에 쥐어주거나 수영장 가면 좋아하는 과자를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겨우 데리고 갔다. 그랬던 아이가 웬일인지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다.

간만에 아이의 입에서 나온 뭔가를 하고 싶다는 긍정의 말이 이토록 꿀처럼 달콤하게 들리다니.


자유형과 배영을 어느 정도 하게 되니 이제 조금은 재미를 느꼈나 보다.

그저 감사하다. 남들보다 훨씬 느리고 어려운 길이라 오래 걸리지만 그래도 결국 해내 준 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자유형은커녕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나지만 아이의 성공 경험이 내 성공인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다.


그래. 마이클 펠프스도 adhd였다는데, 내 아이도 못할게 뭐 있어.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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