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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14. 2024

당근마켓에 중독된 아들

ADHD 특유의 과몰입 증상인데

당근마켓은 가입한지 어언 몇 년이 됐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았다. 정말 아주 가끔 처분하고 싶은데 버리기에는 아까운, 돈 좀 들인 육아용품을 정리하고 싶을 때 한번씩 판매하는게 전부였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구매를 해본적은 더더욱 없다.


당근마켓의 중고물품 거래 취지 자체는 정말 의미가 있고 재활용도 가능하다는 면에서 환경에도 좋고 여러 면에서 훌륭한 앱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따로 만난다는게 세상 귀찮은 일이었다. 더욱이 내가 물건을 사서 그 집 근처까지 가야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내가 사는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아니라서 거래를 하자면 우리 동네 뿐만 아니라 옆동네까지도 가야하는 일이 많다. 그러자면 더더욱 귀찮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쁜 현대사회에 약속을 잡고 그 시간에 맞춰 일정을 조율하는 일도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아무튼 나의 이런 극한 귀차니즘으로 인해 당근은 아주 가끔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앱이었다.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친구도 집에 있는 아이책을 한꺼번에 정리하다가 엄두가 안 나서 중고거래는 할 생각도 안 들어서 왠만한건 다 재활용으로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 당근마켓을 매우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내 의지가 아닌 철저히 아이의 의지 때문이다. 당근앱을 어쩌다 알게되고 앱에 들어가 이것 저것 구경을 하더니 뭔가 아주 재미있어 보였나보다. 자꾸 우리집에서 안쓰는 물품들을 올려서 팔자고 성화다. 처음에는 몇 번 응해주었다. 어차피 처분해야할 전집도 좀 있어서 아이 장단에 맞추어서 몇 개 판매 거래를 했더니, 아이는 더더욱 당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모든 물품을 다 한번씩 만져보면서 '이것도 당근에 팔자, 이것도 당근에 올려볼까? 엄마 나 이거 안 쓰는데 팔아버리는게 어때? 얼마에 팔지?' 하면서 틈만 나면 당근타령인 것이다.


갈수록 그 빈도수와 언급이 잦아지자 나도 짜증이 났다.


"당근은 이제 제발 그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과 만나서 약속잡고 거래하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정말 필요할 때만 쓰는 앱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아이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겉으로는 이해하는척 하면서도 심심하면 당근앱에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물건을 올리는지, 그 사람의 매너온도는 어떠한지 구경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웠던 것 같다. 물건을 팔고, 상대방으로부터 매너점수를 받으면 온도가 올라가는 시스템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는지 엄마 매너온도도 빨리 더 올려야한다고 성화였다.



그까짓 매너온도 관심도 없고 올릴 의지도 없다고 여러번 말했지만, 어떤 사람은 매너 온도가 90도가 넘어간다면서 엄마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어떻게 올려야할지 걱정까지 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물건을 올리고 판매하기를 요구하는 아들녀석 덕분에 본의아니게 이 물건 저 물건 올려서 팔게 되었다. 심지어 나도 같이 당근앱을 보고 있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올리는 기상천외한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느끼게 되었다.



한창 보다보면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건가 현타도 왔지만, 요즘엔 당근에서 집과 중고차까지 거래하는 걸 보면서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애는 우리집도 부동산 사무실 거치지 말고 당근에 올려서 팔자고 제안했다. 허 참.. 어이가 없어서.



덕분에 유아기때부터 사모은 전집과 학습만화책들을 많이 처분하긴 했다. 다시 볼것 같아서, 왠지 지금 처분하기는 애매해서 가지고 있던 책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아이 의사도 물어봤는데 본인도 쿨하게 다시는 안 볼거같다며 다 팔아버리라고 했다. 그렇게 책들만 대여섯번 중고거래를 하고 나니 책장도 한결 가벼워져서 뭔가 시원한 느낌이 든다. 이번 주말에는 마법천자문 전집을 팔자면서, 얼마에 올려야할지 고심하는 아이를 보자니 웃음이 나온다.


요즘 아이의 소망 중 하나는 얼른 어른이 되서 자기도 엄마처럼 당근앱 깔아서 필요없는 중고물품 거래를 하고 싶단다. 열심히 해서 매너온도 90도까지 꼭 달성하고 싶다나.. 그래, 그래 그게 소원이면 그렇게 하려무나..근데 이제 엄마는 너무 귀찮아서 당분간 당근거래는 좀 쉬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조금 이따 흔한남매 1권부터 15권까지 일괄거래 약속이 있어서 시간에 맞춰 나가야한다. 아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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