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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16. 2024

17대 3의 싸움

스마트폰 예끼 이눔아

요즘 우리 집 아이의 특징 중 하나는 밤에 자려고 누우면 감정이 격앙된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추가한 불안약 탓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근에 두드러지는 행동양상이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꼭 울다가 잠이 든다. 우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주로 학교 가기 싫어서, 학교 생활이 적응이 안돼서, 친구들이 안 놀아줘서 등의 이유로 울곤 하는데 이번에는 또 색다른 이유를 댔다.


바로 스마트폰이 너무 갖고 싶어서다.


아이에게 여태 스마트폰을 안 사주는, 아니 못 사주는 이유를 대자면 수십 가지이지만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ADHD 주증상을 더욱 자극해서 악화될까 봐 우려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보통 아이들보다 태생적으로 주의집중력이 약해서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면서 치료 중인데 스마트폰을 그 꼬물이 같은 두 손에 쥐어줬다가는.. 안 봐도 비디오인 상황이 내 눈앞에 너무나 선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도저히 사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나를 두고 시부모님은 하고 싶은 거 좀 시켜주지 '너무 애를 잡는다'라고 표현하셨지만 내 입장을 하나하나 설명하다 지칠 것 같아 긴 말 하지 않았다.


서너 살 때 한창 밥도 잘 안 먹고 외식해서도 가만히 앉아있지도 않고 말이 도통 들어먹지 않을 때 유튜브를 보여주곤 했다. 그렇다고 하루에 두세 시간씩 넋 놓고 노출시킨 것도 아니다. 한 번에 길면 15분 정도였고 하루에 노출량을 다 합쳐도 한 시간이 되지 않게 늘 신경을 썼다. 주변에 보면 다른 아이들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정도는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영향력이 내 아이에게만큼은 엄청난 대가가 따르리라는 사실은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물론 스마트폰을 백 퍼센트 차단하고 키웠어도 본래 가지고 있는 adhd 증상은 숨길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증상을 자극하는 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언어발달지연도 좀 더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이러한 종류의 발달장애도 스펙트럼 위에서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쳤느냐 아니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조금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게 내 짐작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너무나 갖고 싶은 아이의 순수한 욕구와 일방적 떼씀, 불쌍한 척 호소 등등을 애써 모른척해왔다. 아이는 어느 순간 포기한 듯싶다가도 한 번씩 자기만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이 세상 서러운 듯 울기도 했는데 그 날밤엔 유독 더 심했다.


한 번도 반에서 몇 명이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친절하게도 아이가 먼저 알려줬다.

한 반에 20명인데 그중 키즈폰이든 스마트폰이든 어떤 형태로든 핸드폰을 가진 아이들이 17명이고 없는 아이는 3명이라고 했다. 자기는 3명에 속하기 때문에 너무 속상하지만 그래서 핸드폰이 없어도 괜찮다고 참으려고 노력하는데 가끔씩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나마 폰이 없는 3명의 친구들도 아이들 사이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 학교 생활은 그럭저럭 잘하지만 호감 가는 성격의 친구들은 아닌 듯했다.


어차피 학교에서 스마트폰 쓰는 거 금지되지 않았냐고 했는데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안 계시거나 종례 직전 등 틈나는 시간들이 있는데 그때 무음모드로 해놓고 다들 폰을 본다고 했다. 그 짧은 시간에 아이는 폰을 갖고 노는 친구들이 엄청나게 부러웠나 보다.


핸드폰이 없는 대신에 스마트기기는 아낌없이 쓰도록 허용을 하고 있다. 집에 있는 노트북도, 아이패드도 되도록 자유롭게 쓰게 하는 편이고 하교하고 나면 내 핸드폰을 자기 것 마냥 이 앱 저 앱 깔면서 놀기도 하고 심지어 최근에는 애플워치까지 사줬다. 별 기능은 없지만 그런대로 스마트폰 느낌도 나고 핸드폰 없는 서러움을 반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그걸로라도 채우라는 심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저만 스마트폰이 없어서 서러운 거다.


20명 중에 17명이 있고 3명은 없다.


숫자로 접한 적은 없는데 막상 비율을 머릿속에 떠올리니 아이가 짠하다는 마음도 든다.


네가 아무 문제없었다면, 정상 발달이었다면, 약물치료까지 받지 않는 처지라면 나도 모르는 척 눈감고 스마트폰을 사줬을 텐데. 애가 자기 조절능력이 남만큼 따라줬다면, 사용제한앱을 이용하면서 적당히 풀어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 현상태에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게 나에게는 공포에 가까울 만큼 무서운 일이 돼버린 현실이다.


17대 3의 싸움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속으로 내 아이 제외한 나머지 두 명 아이의 엄마가 제발 핸드폰을 사주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때가 되면 내년에는 사주게 되더라도 올해까지만이라도 같이 견뎌주기를. 그 엄마들은 특히 위에 형제자매까지 키우는 사람들인데 스마트폰의 폐해를 어느 정도 겪어봤기에 일부러 사주지 않고 있는 걸로 생각된다. 좀 더 견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학부모 카페에 들어가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다. 다들 자녀들과 스마트폰 때문에 전쟁 중인 듯했다. 초등 때는 그나마 부모의 관리가 먹혀들어가는 편인데 특히 사춘기를 맞은 중학교 때부터는 도저히 통제가 어려줘 져서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들이 정말 많아 보였다. 게 중에 중학생인데도 스마트폰을 안 사줬다는 부모님도 한 두 명 보였다. 나도 모르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산인데, 어차피 사주게 될 거라는 예감은 드는데, 정말 견딜 때까지 견디다가 사주고 싶다. 그제밤에는 너무나 서럽게 울면서 참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친구들이 너무 부럽다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버렸다. 이렇게까지 원하는데..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생각이 맞는 게 아닐 수도 있는데 너무 대세 흐름을 외면하려는 건 아닌지, 이러다 정말 더 친구 사귀기도 어려워지고 사회성에 더 나쁜 영향을 주는 건 아닌지 오만 생각이 다 든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올해까지만 견뎌보자 아가야. 갖고 싶어도 좀만 더 참아라. 사주기 전에도 이렇게 전쟁 같은데 사주고 나면 더 지독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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