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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17. 2024

훌륭한 사람 되야지,라는 말

저만 불편한가요

아이의 등교거부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때였다. 지금도 뭐 학교를 즐겁게 가는건 아니지만 한창때보다는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아무튼 아이만큼 나도 힘들어서 괴로워하던 때에 양가 부모님도 함께 걱정해주셨다. 친정아빠가 운동하다가 손주 생각에 갑자기 위염이 도져서 통증에 시달렸다고 하니, 아이 걱정은 나만하는게 아니라는 한줌 위로를 받기는 했다.


그런데 또래관계가 무서워 학교에 가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를 타이른답시고 양가 부모님께서 토시하나 틀리지않고 아이에게 하는 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훌륭한 사람 되려면 학교에 가야지."였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구마 백개 먹은냥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제발 그 말은 하지 말아주기를 바랬는데, 어김없이 만날 때마다 아이에게 학교를 매일 다녀야한다는 사실을 역설하면서 타이르듯 덧붙인 말은 훌륭한 사람 타령이었다.



너무 듣기 불편했다.

내 심사가 뒤틀려서, 내가 꼬여 있어서 그런가?



왜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그럼 당신들은 자식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웠다는 말인가.

왜 우리는 커서 꼭 무언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말인지, 아무것도 안 되면 큰 일이라도 나는가.



학교에 가야하는 이유를 초등 저학년 아이의 머리와 가슴이로 이해할 수 있게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나도 몇 년째 납득이 갈만한 이유를 설명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학교에 꼭 등교해야하는 이유는 그냥 국가가 그렇게 정해놨으니까, 그게 의무니까, 초등 교육은 안 받으면 안되니까, 사람은 배워야 하니까.. 최악의 경우에는 너가 학교 안가면 엄마,아빠가 감옥가야 하니까 등.



내가 말해놓고도 아이 입장에서 별 납득도 어려울 것 같고 가뜩이나 느린 인지력으로는 이해하기 더 힘들것 같았다. 나만 겪는 고충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육아 전문가이신 조선미 박사님도 책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매일 해야만 하는 일들은 아이에게 굳이 길고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이유 없이도 해야만 하는거다, 특히 양치같은 위생에 관련된 일은.



학교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나는 뭐 어렸을적에 학교 가는 이유를 알고 다녔나. 그냥 엄마가 시키는대로, 다른 친구들도 다 다니니까 아무 생각없이 다닌거지. 아이에게 일일이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설명할 필요는 굳이 없는 것이다.



장애 등록을 할 수 있을만큼 중증의 어려움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정상아동들 사이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기에는 약간 부족한 우리 아이같은 경계성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지옥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안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의무교육과정이기도 하지만 정규교육기관인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대체 뭘 하고 지낸단 말인가.



매일 아침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나서 몸을 깨끗이 단장하고, 밥을 먹고, 어디론가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그 과정 자체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하는 일이라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초중고를 나와 대학을 가고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대체로 어딘가에 소속되어 규칙적인 생활을 반강제적으로라도 할 수 밖에 없었던 나는, 아이를 낳고 집에 들어앉아 키우면서, 또 발달문제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몇 년간 못 나가게 되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지겹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과 장소들이 그간의 나를 살게 만들었던 소중한 삶은 원동력이었다는것을.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면 살림하고 청소하는 일 그리고 아이 걱정 이외에는 특별히 할 일도 어디서 나를 불러줄 일도 없다보니 더욱 절절이 느끼는 것이다. 매일 아침 어딘가로 등교 혹은 출근할 수 있다는건 더없이 소중한 일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뭐 이런 진실을 사십년이나 살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는데 이제 10년 인생도 살지 않은 아이가 이런걸 깨달을리는 없고 당장 또래관계 문제로 등교를 힘들어하니 그렇다고 학교를 때려치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답답한 노릇이다.



문득 내 친정엄마, 아빠는 얼마나 편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 다니는 내내 아플 때 빼고는 학교 가기 싫다는 말 한번 하지 않고 군소리 없고 초,중,고를 성실히 다녔으니 그것만으로도 부모님은 복 받은거다. 그 때야 먹고 살기 바빠서 내가 무슨 문제가 있거나 정서가 불안정했다고 해도 따로 신경써주지도 않았겠지만.



"훌륭한 사람 되려면 학교를 가야돼.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 되어야지.. 응?!"



할머니의 간절한 당부가 아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네,하고 대답은 하지만 전혀 마음 속 깊이 와닿지 않는 허공속 외침처럼 공허하다.



훌륭한 사람이 대체 뭐길래,

친정엄마에게 그리고 시부모님께 진정으로 묻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훌륭한게 뭔지 아느냐고, 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하느냐고.



나에게, 손주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제발 강요하지 말라고..

훌륭한 사람 되는건 뭐 그리 쉬운 일인줄 아느냐고.



지금 내 마음 같아서는 아이가 그냥 뭔가 되어야한다, (그말인즉슨 거의 직업에 관한걸 의미하는 것 같은데)하는 강박관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무엇이 되지 않으면 어떠한가. 그저 매일 학교를 다니고 제 할 일 하면서 성실하게 살아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인생 아닐까.



무언가 대단한 직업을 혹은 자격증을 가지지 않아도 되니까 십대가 되고, 이십대가 되고, 삼십대가 되어서 그저 매일 아침 어디론가 나갈 일이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학교가 되었든 직장이 되었든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되었든 어딘가에 소속되어 규칙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일할 때는 놀고 싶고, 돈 많은 백수나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막상 아무도 불러줄데도 없고 아무도 갈데도 없는 삶이란 행복할지 모르겠다. 돈이 천문학적으로 많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런 삶은 평범한 우리네 인생에서 흔하지 않기에.



훌륭한 사람은 안되어도 상관없으니 아이가 매일 아침 어딘가로 나갈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남다른 아이를 키우는 덕분에 나는 여러가지 면에서 정말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내려놓으면서 인생을 배우는 느낌이랄까. 육아는 사람을 강제로 성숙하게 하는 일임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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