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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22. 2024

치료는 점점 늘어가고

엄마로서의 효용감은 바닥을 치고

아이 5세 때부터 센터 치료를 시작해서 여태 이어지고 있다. 중간에 코로나 사태로 1년 넘게 쉬어버린 때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센터에 다니고 있다. 참 우습게도 그때는 코로나가 극심하게 무서워서 센터치료조차 받는걸 굉장히 조심스럽게 여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결국 후에 코로나는 두 번이나 걸렸고 독한 감기 정도로 지나갔으니 그냥 위험을 감수하고 센터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후회되는 부분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사회성 그룹 치료만 주 1회 받고 있다. 언어치료나 심리치료를 더 받고 싶었지만 아이의 고집이 완강했다. 센터에 가면 자신이 취약한 영역에만 집중에서 지도해 준다는 걸 어느 순간 간파했는지, 처절하게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몇 번을 어르고 달래다가 나도 지레 포기하고 언어치료를 그냥 집에서 내가 책육아로 대체해 보기로 했다.


언어라는 게 구조화되고 정형화된 치료 상황에서 학습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취학 연령이 되니 언어 그 자체보다는 화용적인 영역에 도움이 필요했다. 어차피 그런 부분은 가정에서, 놀이터에서, 또래 친구나 가족들과 실제 대화를 하면서 늘려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날 치료 선생님과 앉아서 상황별 문장을 숙지해도 막상 실생활에서 적재적소에 쓰는 능력으로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길게 봐야 하기에 내가 좀 더 신경 써서 책도 많이 읽히고 다양한 경험을 채워주면서 언어치료 못지않게 채워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책육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억지로라도 일정시간의 독서를 루틴으로 만들었고 언어 검사를 받아보면 제 연령 수준으로 나오기는 하니 딱히 실패한 것 같지는 않다.


센터 엄마들은 사회성 그룹 수업만 받는 내 아이를 부러워했다. 다들 기본 주 2-3회는 다녀야 하는 형편이었고, 다른 발달센터도 다니는 분들이 있었다. 주 1회만 다니면 되는 아이라는 사실을 부러워한 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 증상이 경미하다는 데에 비중을 두고 바라보신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언어나 소통능력 그 자체보다는 심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늦게 발달하게 된 사회성만큼 아이는 자주 위축되고 움츠러드는 상황이 많았다. 그렇다고 아예 놀이터나 또래 아이들 있는고 곳을 차단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는 자꾸 부딪히면서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심리치료를 추가할까 고민도 됐는데 아이는 센터에 더 가기를 싫어했고 나도 그 의견에 순응하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에 사회성 수업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여러 번 수업을 더 추가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셨다. 그룹 수업에서 자꾸 아이의 사회적 스킬에 허점이 보이는데 학교 생활에서도 힘들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고 추가해 보자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막상 그런 대화를 나눌 때는 괜찮았는데 아이의 손을 붙잡고 집에 돌아오니 그때부터 이성의 끈을 놓았는지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데,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왜 자꾸 약물은 더 추가되고 치료도 추가되고. 아이의 상태는 더 망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간의 내 희생과 노력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또 걷잡을 수 없이 억울해져서, 감당이 안 되는 기분이 든다. 억울함은 발달이 남다른 아이를 키우는 내내 나를 옥죄어오던 감정이다. 애써 이 끝도 모를 억울함으로부터 많이 벗어났다고 느꼈는데, 괜찮아질 새도 없이 또 숨을 못 쉴 만큼 꽉꽉 차오르는 기분이다.


아이에게 센터 수업 한 번 더 가는 건 어떻냐고 의향을 물어보니 역시나 싫단다. 재미없어서 하기 싫은 눈치다. 그래, 애도 이렇게 싫어하고 거부하는데 억지로 데리고 가는 건 아니지.. 싶다가도 지금 아이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놓치고 있는 거라면? 아니 이미 너무 늦은 거라면?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싶다. 결단은 내가 내려야 한다.


책에서는 아이가 원하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것 위주로, 자발적인 동기가 있는 분야를 가르치고 경험시켜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느린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별 쓸모없는 외침인 것 같다. 아이가 거부하고 싫어하더라도 필요하다면 치료를 더 추가해야 할 수도 있다. 그 치료가 싫은 이유는 자신이 가장 취약한 부분을 건들기 때문인데, 그 마음을 받아주고 인정해 준답시고 부모도 같이 회피해 버리면 지나간 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남편은 그런 센터 수업 하나 더 추가한다고 뭐 얼마나 좋아지겠냐고 반문한다.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결정과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거 하나 더 추가한다고 애가 뭐 얼마나 달라지겠어, 그 시간에 다른 예체능 수업 하나 더 시키는 게 낫지, 책을 읽히던가.. 이런 마음이 우선 드는 것이다.


치료 수업 하나 추가하는 데에도 이렇게나 고민이 많고 억장이 무너지다니, 나는 아직 한참 갈 길이 멀었다.








새로 추가되는 수업은 심리 치료 위주로 다뤄줄 계획이다. 센터 원장님 수업은 대기가 항시 길어서 받기가 힘들었는데, 떼쓰고 조르다시피 해서 겨우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다른 어떤 역량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받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을 만져주기를 바란다. 내가 옆에 항상 같이 있어주면 아이의 불안함도 안정이 될 줄 알았는데, 애가 좀 크다 보니 의외로 엄마에게 숨기는 부분도 많고, 그냥 생각이 안 나서 말 안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엄마가 캐치하지 못한 아이의 심리 상태나 학교에서의 생활이나 작은 에피소드들을 원장님께서 자연스럽게 잘 이끌어내 주시고 해결방법도 같이 고민해 보는 등 도와주신다고 하기에 나도 믿고 시작해 보기로 했다.


수업 하나를 추가하게 되면 기존 스케줄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잘 배우고 있던 악기 레슨과 센터 원장님 수업이 딱 겹치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일단 심리 치료가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예체능을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배운 게 아깝기도 하고 한 번 시작한 건 되도록 오래 배워보자 하는 마인드인데 시간을 낼 수 없는 건 어찌하리.


아이 교육에 있어서도 어쩌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특히 발달이 남다른 아이에게는 더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뭔지, 가장 시급한 게 어떤 것인지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고 또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도 우유부단한 면이 있어서 제대로 못한 부분도 참 많다. 후회되고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작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지만 아이가 지금 보내는 사인을 놓치지 않고 센터에서도 그리고 나도 알아차리게 되었으니 어쩌면 이제라도 시작하게 되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시작이 반이니까 어머니, 늦었다고 너무 걱정 마시고 우리 OO 이를 믿고 해 보기로 해요.."


선생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울컥해진다.

약도 추가하고 치료도 추가하고 내 노력 대비 애는 자꾸만 이상해지는 것 같아서 우울했는데 한 줌의 위로를 받는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 것, 아이를 믿어줄 것.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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