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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27. 2024

야구 없이는 못 살아

그 멘탈로 야구 선수를 하겠다고?

야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지 3년째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듯, 야구에 야짜도 몰랐던 나는 자식이 뭐라고, 순전히 자식 덕분에 야구라는 종목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유독 동네 엄마들 중에 골수 야구팬들이 많은 것도 한 몫했고 그 아이들과 같이 놀 기회를 마련해 주고자 잔디밭이 잘 구비된 외야석에 관람하러 갈 때마다 나도 빠지지 않고 끼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그곳에서 같이 어울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같이 노는 듯, 안 노는 듯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아이는 무리에 끼어 놀기도 했다.


초반에 다닐 때는 아이가 잘 노는지 챙기느라 경기에는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야구 룰도 몰랐고 선수들에 대한 정보도 전무했다. 남편은 야구에 빠삭했지만 나에게 설명하려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답답해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유격수가 뭔지도 몰랐고 볼, 스트라이크의 의미도 몰랐으니 말 다한 거다. 소기의 목적은 또래 아이들과 좀 어울리기를 바라는 것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모임은 지속되지 않았다. 내 아이는 점점 겉돌게 되었고, 나름대로 친절하고 순한 성향의 아이들이었지만 끝내 무리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비록 그 모임 친구들과의 적응에서는 실패했으나, 야구라는 운동 자체에는 엄청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다 잃었다고 볼 수는 없겠다. 어려서 갔을 때는 경기가 너무 길기도 하고 규칙도 복잡하고 특히 거리가 먼 관객석에 앉아서 보니 더 규칙을 이해하기도 힘들어했고, 끝까지 집중하지도 않았다. 어렵게 티켓을 끊어서 가도 중간중간에 지루해하는 아이 때문에 과자를 몽땅 사 먹이든지, 게임을 시켜주든지 해야만 했다. 그도 안되면 9회까지 보지도 않고 중간에 나온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나갈수록 아이의 경기에 대한 이해도와 집중도도 몰라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야구장에 나 혼자 데리고 가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아이는 경기에 집중한다. 아빠 덕분에 각 선수들의 강점과 약점, 특징도 파악했고 상대팀 선수에게까지 관심을 보일 정도니 경기 보는 게 상당히 재미있어진 것 같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신기한 건 옆에서 따라만 다니던 나도 야구룰을 모르는 것 빼고 다 알게 되었다. 처음에 갔을 때만 해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고 경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까막눈이었다.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환호성에 깜짝깜짝 놀라며, 이게 지금 이기고 있는 건지 지고 있는 건지 분간도 못하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저 한 목소리로 응원하는 열기가 좋았고, 연예인 뺨치게 어여쁜 치어리더들 바라보는 게 좋았고, 안타나 홈런을 칠 때 그 짜릿함이 좋았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싶었다. 매일 아이 걱정에 찌들어가는 내 일상에 잠시나마 오로지 경기의 승패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현실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었다고나 할까.


독재정권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막기 위해, 우매한 국민을 만들기 위해 3S 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를 육성시켰다고 배웠다. 역사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스포츠 따위에는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스포츠에 푹 빠져서 그것에만 매몰되는 삶을 사는 건 자기 소외를 일으킨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굳이 스포츠에 빠지지 않아도 현재 나는 삶이 주는 시련에 허덕이느라 정치적인 관심을 쏟기에는 그 역량이 한참 모자라고 부족하다. 주어진 삶을 최대한으로 살아내는 게 나에게 쥐어진 가장 큰 임무인 것 같은데 그러자면 내 기분을 관리하고 스트레스를 조절해야만 한다.


야구를 보고 집중하는 그 시간에 머릿속에 잡념은 사라지고 오로지 승패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잠시나마 도피처 역할을 해주는데, 이게 나에게는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아이도 야구에 조금 과몰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처음에는 좀 걱정이 되었는데, 어차피 이런 과몰입 증상은 약물 치료로도 완전히 막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아이는 야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야구공과 배트, 글러브를 사서 아빠랑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대근육, 소근육 발달이 지체되어서 글러브를 잡고 손에 힘을 주는 것조차 어려운 아이다. 공의 움직임을 보면서 주의집중하고 던지고 잡는 행위조차도 신체 감각 능력이 떨어지는 ADHD 아이에게는 난관이 된다. 그런데도 아이는 상당히 진지하게 연습에 임한다. 공을 계속 놓치고 주우러 다니는 게 거의 전부인데도.


야구를 오로지 보기만 한다면 별 효용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스스로 연습해 보고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나쁘게만 바라볼 것은 아닌 것 같다.


가끔은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실책을 반복하거나 안타깝게 역전을 당한다거나 중간계투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점수를 계속 내줄 때가 있다. 프로의 세계는 어찌나 냉정한지, 홈런 치고 안타 치는 선수들도 카메라로 오랫동안 잡아주지만 실책을 하는 선수도 상당히 오랫동안 그 동선을 따라다니면서 카메라로 비춰준다.


공을 못 던지고 싶어서 못 던진 것도 아닐 텐데, 홈런을 맞고 싶어서 맞은 것도 아닐 텐데 점수를 내주고 교체되는 투수의 무기력한 뒷모습과 더그아웃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선수의 표정이 라이브 방송에 오랫동안 나오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이는 우리 팀이 이길 줄 알았는데 저 투수 때문에 다 망했다면서 울기 시작했다. 아니, 야구 선수 되고 싶다는 애가 경기 보면서 우리 팀이 진다고 울어버리면 어쩌란 말이야. 막상 네가 선수가 돼서 경기를 하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데 그럼 질 때마다 이렇게 울어버릴 건지.


"OO아, 지금 네가 울 때가 아니야. 지금 누구보다 속상하고 울고 싶은 선수는 바로 저 투수야.

저 선수가 홈런 맞고 싶어서 맞았겠어? 얼마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겠어.

감독이 기회를 줘서 나갔는데 스트라이크 계속 던져서 삼진아웃 시키고 싶은 게 투수 마음인데, 그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까..

지금 얼마나 힘들고 속상하겠어. 그런다고 저 선수가 울지는 않잖아..?!

마음속으로는 지금 엄청 울고 있을지도 몰라.."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용조망능력이 아직 느리게 발달하는 아이는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서툴다. 그래도 최대한 아이 눈높이에서 쉽고 자세히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지금 누구보다 속상한 사람은 팀을 위기로 몰고 간 저 투수라는 사실을.


"너, 야구선수 되고 싶다면서 그럼 경기 질 때마다 이렇게 울 거야? 선수가 경기하다가 울어버리면 관중들이랑 다 너무 당황하겠다. 프로는 절대 울면 안 돼. 실력으로 보여줘야지.."


어느 정도 이해를 하긴 한 건지 울음은 그쳤다. 이제는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져도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다. 야구라는 운동은 체력과 실력을 겸비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탄탄한 멘탈이 받쳐줘야 하는 종목인 것 같다. 위기가 찾아와도 무너지지 않는 정신력이 바탕이 되어야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운동 신경이 받쳐주지 않는 건 물론이요, 마음도 이렇게 유리멘탈이라서 미래의 야구선수가 되기에는 글렀지만 그래도 꿈은 꿈이니 겉으로는 응원해주고 있다.

순위에 상관없이, 승패에 집착하지 말고 우리 함께 이 아름다운 계절의 야구 시즌을 흠뻑 즐겨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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