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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17. 2022

남편을 노동의 굴레에서 구원시켜주고 싶다

결혼생활 이야기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 표정은 밝은 적이 거의 없다. 아니, 여태 전혀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장시간의 일로 인해 피로에 지쳐서 죽상이 된 얼굴로 나를 마주한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애도 있는데 좀 밝은 얼굴로 들어와 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육아서들에서 엄마도 마찬가지지만 퇴근하는 아빠들도 아무리 일에 치여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집에 들어올 때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가 만나는 아이에게만큼은 밝게 웃어주고 안아주라고 강조한다. 힘들고 피터 졌던 직장에서의 고통은 문 밖에 잠시 내버려 두고 귀가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내 남편은 그게 참 어려운가 보다. 상다리 휘어지도록 맛있는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릴 정도의 요리 실력과는 거리가 먼 나이지만 그래도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로 신경 써서 저녁 준비를 한참 하고 있던 나도 그런 남편의 얼굴을 보자면 나도 모르게 기운이 빠진다. 아이는 원래 아빠가 오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하던 일에만 집중하고 있기에 이런 아빠의 모습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어제는 "나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아. 사람들 얼굴도 다 꼴 보기 싫고, 친절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어."라고 한다. 가끔씩 유독 힘들고 지친 날에는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말을 한다.


아침부터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과 사람에 치여 12시간 가까이 일하고 나면 남는 에너지가 없을 것이다. 남편은 자기 사업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수년간 일요일과 공휴일 몇 번을 제외하고는 매일 같이 일한다. 휴가도 3일 이상 가져본 적 없고 우리 가족에게 여행이란 무조건 국내에 한하여 1박 2일뿐이다. 아직 싱글이거나 부부교사인 친구들이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니며 올라오는 SNS 사진을 보며 내 처지를 한탄했다. 20대에는 원할 때면 해외여행도 나가고 연수도 받아서 그런 건 언제든 할 수 있는 당연한 거라고 여겼는데, 결혼 이후로는 신혼여행을 마지막으로 나가보지를 못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어렸을 때에는 남편이 육아를 거의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 나는 자주 분노했고 독박 육아의 현실이 너무 싫어서 참 자주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일한 대가로 우리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서 더 넓고 좋은 아파트로 이사도 하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차도 사고, 웬만한 아이 교육 비용은 큰 부담 없이 지출하며 살만한 형편은 되었다. 굳이 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먹고살만하기에 사실 지금처럼 장기 휴직을 해도 씀씀이만 잘 조절하면 큰 경제적 부담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경제적 안정감을 누리고 살기 위한 남편의 희생이 너무나 크다. 나는 그게 안타깝다. 따로 운동이나 자기 계발을 할 시간적 여유도 거의 없고 주말은 온전히 발달이 느린 아이를 위해 여행도 가고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가족과 함께 보낸다. 삶에 빈틈이 없어 가엾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남편 대신 일할 페이 직원을 구해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보는 게 어떻냐고 몇 번 이야기해보았지만 자기 업장에 대한 책임감이 워낙 커서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일적인 스트레스를 술과 쇼핑으로 푸는 경향이 있다. 자주 술을 마시는 건 아니지만 가끔씩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자리가 있으면 감당이 안되게 마시고 만신창이가 되어 집에 들어온다. 그런 모습을 본 나는 너무 실망스럽고 꼴도 보기 싫어서 아이 앞에서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며 다툰다.


쇼핑도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번 살 때 가장 좋은걸 사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어서 큰 고민하지 않고 지르는 편이다. 아이 옷도 기왕이면 백화점에서 비싸고 좋은 걸로 사주고 싶어 하고 아내인 내가 하는 쇼핑에도 보통 남자들보다는 관대한 것 같다. 가성비 따지고 소비하는걸 극혐 하고 가성비 좋은 건 결국 오래 쓰지 못하고 순간만 좋은 싸구려라고 비난한다.


가끔 너무 스트레스받는 것 같으면 그냥 1년 동안 아예 일하지 않고 쉬면서 있는 돈으로 아껴서 생활해보자고 하면 발끈한다. 지금까지 자리 잡느라 얼마나 애쓰고 노력했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게 뻔하고, 1년 후에 다시 시작할 때 잘 안되면 책임질 거냐고 되묻는다. 막상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이 없으면 어떻게 될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현실감 없는 소리나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이내 그만두곤 했다.







얼마 전 채사장 작가의 <열한 계단>을 읽다가 지금의 이 현실을 정확히 묘사하는 글을 만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명의 개인에게 전문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영혼을 고려해서가 아니다. 효율성과 전체 생산량 증대.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의 전문성은 나를 한 명의 어른으로 사회 안에서 자립하게 하고, 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게 또 어디에 있겠는가. 누구나 떠나고 싶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지친 몸을 이끌고 우물가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비극이 시작된다. 그 비극은 부모로부터 아이에게로 전달된다. 소중한 가정을 위해 스스로 하나의 노동자로, 하나의 전문가로 살아가기를 결심한 부모는 결국 자녀의 가슴에 슬픔을 남긴다.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남편은 매일 고된 노동을 견뎌내고 있고 그렇게 지쳐가고 있다. 남편인들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현실이 비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며 늙어가는 부모를 보는 자식의 마음도 결코 편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어릴 적 친정아빠가 회식이 있는 날이면 술에 취해 집에 와서 자기가 가족을 위해 한평생 얼마나 희생을 하며 살고 있는지, 자기도 꿈이 많았던 사람이라며 신세 한탄을 할 때면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내가 나를 낳아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니고 나는 부모의 선택으로 인해서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인데, 이제 와서 나를 부양하고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고 있다며 한탄하고 후회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자면,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나는 뭔가. 아빠의 인생을 망치고 청춘을 갉아먹기 위해 태어난 존재란 말인가. 아빠는 스스로 희생한다고 표현했지만 막상 경제적인 것 말고는 정서적으로 자식들과 공감하며 고민을 들어주며 소통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저 무뚝뚝했고 먼저 다가가기 무서운 존재였다.



금수저로 태어난 소수의 축복받은 인생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평범한 서민이라고 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아빠를 포함한 내 주변 친척들 중 어느 누구도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풍요롭게 누리고 사는 대단한 부자는 없다. 어릴 적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똑똑해서 뛰어났던 친척들도 결국은 자본가의 부를 증대하는데 기여하는, 시간적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고연봉의 노동자로 살아간다.


끝 모를 노동으로 지쳐가는 남편을 구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구원이란 게 꼭 종교적 개념은 아니고 한 동안은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 생계 걱정 없이 마음 편히 푹 쉴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다. 그래야 내 아이도 매일 퇴근하는 아빠의 지친 얼굴을 마주하며 비극에 물들어가지 않고 함께 삶의 여유를 즐기고 삶이란 원래 항상 행복한 거라는게 마음속에 자라날 것 같다. 내가 복직해서 일해봤자 내 벌이는 남편보다 훨씬 적기에 제대로 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게 한탄스럽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남편을 구원해줄 수 있을까.

방법을 생각해보지만 묘수는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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