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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31. 2024

그녀의 배려는 왜 분노를 샀을까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

사람마다 식성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다. 서로 다른 음식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갈 식당을 정하는 일은 말로는 쉬워 보여도 상당히 복잡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두세 명도 아니고 어린이를 포함 어른까지 대여섯 명이 함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해야 한다면, 어떤 식당에 가서 어떤 메뉴를 먹을지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불러일으키는 '업무'라는 걸 몸소 알게 되었다. 함께 가는 상대가 '시'부모님일 때는 더더욱 그 스트레스가 배가 될 수도 있다.


친한 지인이 시부모님과 주말을 맞아 여느 때처럼 식당에 함께 갔다. 그 집은 거의 매 주말마다 으레 시부모님과 식사를 하는 게 관례가 되었다. 그날은 간단하게 점심 특선 메뉴로 먹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아무래도 지인은 일인당 점심 메뉴 하나만 시켜서는 조금 부족할 것처럼 느꼈다.


평소 소식을 하거나 일정량 이상의 식사는 하지 않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굳이 추가 메뉴를 시키지 않는데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러 식구들이 함께한 자리였고 성인 남자들도 있던 터라 비교적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고기메뉴를 추가할 수 있다기에 선뜻 주문했다고 한다. 평소 건강을 위해 식단 관리도 철저히 하시는 부모님인걸 알긴 했지만 성인 남자도 여럿 있으니 추가로 고기 정도는 먹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기왕 식당에서 먹는 거 조금은 푸짐하게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기도 했고, 혹시나 일인 특선 메뉴만 먹으면  

모자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지인 딴에는 '배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 배려에서 비롯된 그 행동이 분노의 화살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필이면 추가 주문한 고기 메뉴가 별로 맛도 없었고 질기고 양만 많아서 별로 손이 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고기는 남게 되었고 그때부터 싫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뭐 하려고 고기 메뉴를 추가해서 시켰니.."

"음식은 과하게 먹는 게 아니야, 딱 적당히 먹어야지.."

"이렇게 과식하는 습관이 들어서 어떡하니.."

"이래서 다들 살찌는 거야. 너희 가족도 다들 다이어트해야 되는데.."


그나마 시킨 메뉴가 맛이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상태도 맛도 별로다 보니 그 잔소리들을 오롯이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야말로 가시방석 같은 식사 자리였던 것이다. 하필 그날은 시부모님이 밥을 사주기로 한 날이라 더 눈치가 보였다.


점심 메뉴만 먹었다면 얼마 안 했을 밥값이 십만 원을 훌쩍 뛰어넘게 나와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어머님은 더 화가 나 보였지만 크게 내색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모자랄까 봐 추가로 시킨 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 며느리 입장에서는 참 억울하고 답답한 지경인 것이다. 하지만 어머님은 살이 쪄서 고지혈증, 당뇨 같은 성인병을 조심해야 하는 마당에 맛도 없는 고기를 양껏 시킨 행동이 미워 보였던 것 같다. 게다가 본인이 밥값까지 내기로 한 상황이라 더 열받은 건지 그 후로 한동안 냉랭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인은 또 그 입장에서 나름대로 억울할 것 같았다. 건강도 식단도 중요하다는 거 알고 있지만 부족하게 시켜서 아쉽게 먹느니 좀 푸짐하게 먹고 싶었던 것이고, 애나 어른이나 다들 고기는 좋아하니까 맛있게 먹을 줄 알고 시킨 건데 그것 때문에 화를 불러일으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다.


부모님을 배려한다고 상대방을 생각해서 한 행동이, 분노를 불러일으켜서 분위기까지 어색하게 만들게 돼버려서 상당히 민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관계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내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위한답시고 한 건데 상대방은 그걸 고마워하기는커녕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상황은 살면서 얼마든지 겪을 수 또 있다. 본의 아니게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남을 위한 배려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건가.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남의 입장을 고려해서 해야 하는 건데, 이 바쁘고 할 일 많은 세상에 그렇게까지 깊이 있게 배려하면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려할 때는 이게 정말 배려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몇 번은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다가올 어버이날을 맞아 양가 부모님과 식사를 하게 되면 메뉴 선정은 전적으로 부모님에게 맡길 것, 어떤 음식이 나오든 말없이 맛있게 먹어야겠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밥 한 번 먹는 데에도 참 고려해야 할게 많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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